쿠팡서 대출, 은행 앱서 배달..빅테크-금융 '하나될 결심'

정인선 2022. 8. 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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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지는 업종 경계 '양날의 칼'

금융 서비스 시작한 IT 기업
쿠팡, 입점 사업자 신용 평가해
아마존·알리바바처럼 대출 추진
이통사들도 개인신용평가 사업

IT 서비스 진출하는 금융사
신한은행, 음식 배달앱 '땡겨요'
우리은행 택배·NH농협 꽃배달
KB국민·토스는 알뜰폰 사업

금융 포용성–정보 독과점 엇갈려
저신용자 대출 문턱 낮아지지만
빅테크가 재무정보까지 낱낱이
정부 '금산분리 완화'도 도마에

빅테크 기업과 금융사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결제, 송금뿐 아니라 신용평가와 대출 등 금융 서비스에 손을 뻗고, 정부도 금산분리를 완화해 은행 등 금융사의 정보기술 산업 진출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통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이들에 대한 ‘금융 포용성’이 높아질 거란 기대가 나오는 한편,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의 재정·재무 상태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데 따른 우려도 나온다.

■전자상거래 기업서 금융회사로…도약 꿈꾸는 쿠팡

쿠팡은 올해 초 쿠팡페이의 자회사 ‘시에프시(CFC)준비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사명을 ‘쿠팡파이낸셜’로 바꾸고, 지난 5일 여신금융전문업 등록 승인을 받았다. 업계에선 쿠팡파이낸셜이 쿠팡에 입점한 소규모 개인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중금리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땅한 담보물이 없거나 매출이 적어 전통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쿠팡 플랫폼 안에 쌓인 판매 데이터 등을 기준으로 신용을 평가받아 담보 없이 대출을 받도록 한다는 시나리오다. 또 쿠팡이 직접 캐피탈 회사 역할을 하며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냉장고·정수기 등 전자기기 장기 할부·대여(렌털)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쿠팡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2011년 입점 업체들의 실시간 매출과 재고, 판매 이력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아마존 렌딩’ 서비스를 처음 내놨다.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의 인터넷은행인 ‘마커스’ 등과 협업하며 서비스를 확장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도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로 잘 알려진 계열사 ‘앤트파이낸셜’을 통해 개인 및 소상공인 대상 소액 대출 서비스 ‘화베이’와 ‘제베이’, 신용평가 서비스 ‘즈마신용’ 등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의 금융 부문 계열사 네이버파이낸셜도 지난 2020년 12월 미래에셋캐피탈과 제휴해, 자체 개발한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한 국내 첫 온라인 사업자 전용 신용 대출 상품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대출’을 출시했다. 이듬해인 2021년 7월 네이버파이낸셜은 우리은행과 손잡고 연이율 4.01∼12.87%에 최대 4000만원을 대출해주는 상품을 추가 출시하며 제1금융권으로도 제휴 대상을 넓혔다.

이동통신 기업들도 금융사와 손잡고 비금융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신용을 평가하는 대안신용평가 모델 개발에 나섰다.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케이티(KT), 엘지유플러스(LGU+) 등 통신3사는 이달 초 에스지아이(SGI)서울보증,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과 합작법인을 세워 전문개인신용평가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심사를 냈다.

■플랫폼 충성도·저신용자 금융 접근성 모두 높인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배경을 “플랫폼 충성도를 높이고 네트워크 효과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입점 업체들에 자금이 마르지 않도록 해, 이들이 플랫폼 안에서 장사를 이어가게 만드는 효과도 크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스마트스토어 대출을 받은 사업자는 전에 비해 평균 거래액이 97.9%, 상품 수가 261.1% 늘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의 편익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빅테크 기업들이 기존 서비스를 바탕으로 쌓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평가의 정확도를 끌어올리면, 한정된 금융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전통 금융권의 대출·할부 등 서비스에 접근이 어려웠던 개인과 회사들의 금융 접근성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마켓플레이스 플랫폼 기업이나 핀테크 기업에 의한 대출은 신속한 처리, 시공간의 자유로움, 비용 감소, 탄력적인 공급, 정보 비대칭 완화 등 장점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공개한 금융상품 판매 실적을 들여다봐도 금융 포용성 증대 효과가 어느 정도 증명된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지난해 12월까지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들에 대출해 준 금액은 1200억원(누적)에 이른다. 평균 대출 금액은 2580만원, 평균 금리는 5.6% 수준이다. 네이버파이낸셜에서 대출을 받은 사업자 열에 여섯 꼴로 대안신용평가 시스템 덕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전통 금융권에서 대출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네이버파이낸셜에선 대출 실행을 승인받은 경우도 16.7%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전자상거래 기업과 핀테크 기업이 전통 은행보다 주택 담보 대출 업무를 20% 빠르게 처리했다고 분석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핀테크·빅테크 기업이 시장에 공급한 신용 규모는 7950억달러에 달한다. 이 중 빅테크 기업이 공급한 신용은 5720억달러 가량이다.

■정보 독과점·금융 안정성 저해 우려도]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대형 플랫폼 기업이 개인의 소비 생활이나 입점 업체들의 판매 실적뿐 아니라 재정·재무 상태에 대한 정보까지 손에 넣게 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김선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주로 구입하는지뿐 아니라 그 물건을 자기 돈으로 사려는지, 남의 돈을 빌려서 사려는지까지 알게 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라며 “전자상거래 행위 자체뿐 아니라 그에 필요한 자금의 출처에 대한 정보까지 특정 기업이 점유한다면 해당 기업의 온라인 행위에 대한 장악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윤·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빅테크 기업에 의한 자금 중개가 확대되면 네트워크 외부효과로 시장 지배력이 커져 독과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이를 이용한 반경쟁적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부문에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 플랫폼 기업이 대출을 과도하게 내줄 경우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선재 연구위원은 “전자상거래 기업이 입점 업체들에 대한 대출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는데 요즘처럼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등 외부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의 충돌도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모바일 앱에서 여러 금융사 대출 상품의 금리를 비교해 낮은 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도록 하는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을 시도했지만 은행권 반발로 무산됐다. 토스뱅크도 지난 5월 삼성카드 카드론을 자사 신용대출로 갈아타도록 하는 대환대출 서비스를 출시했다가 한달 만에 잠정 중단했다. 토스뱅크 쪽은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업계에선 카드사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산분리 완화로 금융사 빅테크화 속도 날까]

한편, 은행·증권사 등 전통 금융사가 정보기술 서비스로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가맹점 수수료를 낮춘 음식 배달앱 ‘땡겨요’를 출시하고, 여기에 입점한 개인사업자 전용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였다. 우리은행과 엔에이치(NH)농협은행은 앱에서 바로 이용 가능한 택배 서비스와 꽃 배달 서비스를 각각 내놨다. 케이비(KB)국민은행은 2019년 금융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을 출시했고, 토스도 지난달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하며 알뜰폰 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정부도 전통 금융사의 정보기술 산업 진출에 물꼬를 터주려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금산분리를 완화해 은행이 비금융 자회사를 다양하게 둘 수 있도록 하고, 부수 업무 규제를 풀어 금융회사의 음식배달중개 플랫폼, 가상자산 등 분야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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