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두루미의 '배설물 은혜 갚기'..매일 천연비료 6포대 뿌린다

조홍섭 2022. 8. 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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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철원 등 비무장지대 찾은 두루미 6천여 마리 석 달 동안 '생태계 서비스'
분해 쉬운 배설물 제공해 토양미생물 활성화, 좋은 세균 늘어나
비무장지대 생태계에 매일 질소 24kg 살포하는 셈
강원도 철원군의 추수가 끝난 논을 찾은 두루미와 재두루미. 생물활동이 뜸한 겨우내 이들이 머물면서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 철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수확이 끝난 논에 볏짚을 남겨두고 논에 물을 가두는 다양한 보호활동 덕분에 비무장지대 일대를 찾는 두루미의 수는 최근 급증했다. 이런 보전 노력은 두루미 탐조 관광객 증가뿐 아니라 두루미의 배설물이 토양을 개선하는 등 두루미가 주민에게 혜택을 돌려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철원평야의 민통선 주변 논 1만㏊를 비롯해 한탄강 일대와 비무장지대 내부 습지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두루미, 재두루미 등 5종의 두루미가 찾아오는 주요 월동지이다. 철원평야 일대에는 해마다 10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두루미가 안정적으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농민과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을 통해 농업 관행을 두루미 위주로 바꾸면서 해마다 6000여 마리 두루미가 찾고 있다.

하루 낱알 37㎏ 먹고 1200㎏ 배설

두루미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땅을 뒤집어 먹이를 찾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두루미가 토양에 양분을 제공하고 미생물을 활성화하는 등 농지에 직접적인 혜택을 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민경진·최명애 연구교수 등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진은 철원평야의 논에 도래하는 두루미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두루미가 잠자리로 이용하는 무논 일부를 그물로 막아 두루미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석 달 뒤 두루미가 온 곳과 오지 않은 곳에서 토양을 채취해 영양성분, 미생물의 조성과 활성도 등을 비교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이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찍힌 무논 잠자리의 두루미 무리. 인공지능을 이용해 정확한 개체수를 파악했다. 연구진은 장차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비무장지대의 두루미 도래 현황 파악에 이 방법을 응용할 예정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제공.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플로스 원’ 최근호에 실렸는데, 철새가 농지에 끼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새들의 배설물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두루미 한 마리가 겨우내 논에 떨어진 낱알을 포함해 37.5㎏의 곡식과 물고기, 무척추동물 등 다양한 먹이를 먹고 체중의 3%를 배설한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이곳을 찾은 두루미 1126마리와 재두루미 5330마리가 하루에 배설하는 1200㎏에 든 영양분을 계산하면 질소 24㎏과 탄소 360㎏이 된다. 흔히 쓰이는 20㎏들이 복합비료 한 포대에 질소가 4.2㎏ 들어있는데 비춰 철원의 두루미는 매일 복합비료 6포대를 땅에 뿌리는 셈이다.

이에 대해 민경진 박사는 “두루미 배설물이 모두 논으로만 유입되는 것도 아니고 또 논 면적이 방대해 개별 논으로 유입되는 질소의 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엄밀하게 말하면 두루미가 겨울 동안 매일 비료 6포대분의 질소를 디엠지 생태계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철새, 농민에게도 도움된다 첫 실증 자료

두루미의 배설물은 영양분을 공급할 뿐 아니라 토양 속 세균을 활성화한다. 연구자들은 “두루미가 배설한 토양의 영양분 함량은 그렇지 않은 곳에 견줘 탄소가 76% 질소가 31% 늘었다”고 밝혔다.

논바닥에 떨어진 곡식 낱알을 주워 먹는 재두루미 부부. 볏짚을 존치하는 방식의 영농계약은 토양미생물 활성화를 통해 농민에게 이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미향 기자

두루미는 미생물 활동이 약한 겨우내 분해가 쉬운 형태로 영양분을 토양에 공급해 미생물의 호흡과 성장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생물의 다양성도 커지고 토양에 좋은 미생물이 많은 조성으로 바뀌었다. 연구자들은 “논에 두루미를 불러들임으로써 토양의 양분이 늘어나 결국 논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최명애 연구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태계 서비스 계약제 같은 두루미 보호 대책이 두루미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농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농업과 자연보전은 이제까지 가치가 충돌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논의 생태적 가치나 철새의 시비 효과 등 농사와 자연이 서로 돕는 측면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미시시피 강 유역 논에서는 오리와 기러기 등 철새의 배설물 속 질소 성분이 비료 사용을 13% 이상 줄이고 토양미생물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거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무논, 볏짚 방치 예산 내년 5.5배 증가

철원에서는 수확이 끝난 논 400만㎡에서 볏짚을 수거하지 않고 논바닥에 방치해 떨어진 낱알을 두루미가 먹도록 하고 30만㎡의 논에는 겨우내 물을 채워 두루미가 안정적으로 쉬고 잠자리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국고보조사업 예산은 올해 2억원에서 내년엔 11억원으로 대폭 증액된다고 원주환경청은 밝혔다.

아이스크림 고지의 두루미 탐조대. 두루미는 생태관광의 주요 대상이다. 철원군 제공.

이런 보호조처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철원 일대를 찾는 두루미 개체수는 급증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자료를 보면 철원을 찾은 두루미는 1999년 372마리에서 2021년 1126마리로 늘었고 재두루미는 같은 기간 474마리에서 5330마리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늘어난 두루미는 탐조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철원군은 두루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고지(삽슬봉) 등을 버스를 타고 2시간에 걸쳐 둘러 보는 디엠지 두루미 탐조관광을 해마다 1∼2월 동안 운영한다. 또 먹이 주기와 차폐막 설치 등을 통해 수백 마리의 두루미와 머무르는 한탄강 두루미 탐조대를 운영해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5000여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인용 논문: 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2684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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