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우주개발, 순위 경쟁으로 변질시키지 않아야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8.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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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다누리 관람실에서 다누리 달 궤도선과 발사체가 분리에 성공하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우주 개발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621일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의 성공적인 발사에 이어서 85일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KPLO)'가 달을 향한 130여일의 대()장정에 나섰다. 미국의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팰컨9 발사체에 실려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를 떠나는 다누리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2030년에는 누리호를 개량한 발사체를 이용한 달 착륙선도 올라가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에도 참여한다.

세계에서 7번째 달 탐사국

언론의 관심이 묘하다. 온통 우리가 러시아·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던 지난 6월에도 역시 우리가 세계 7번째로 1.5t급 이상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를 보유하는 우주 강국이라는 사실을 떠들썩하게 강조했었다. 인공위성 독자 개발 능력도 세계 10위라고 한다. 미국 주도로 2025년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을 목표로 하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10번째 파트너가 된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모양이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마치 우주 선진국과의 순위 경쟁에 나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다누리는 달 표면에서 100km 상공의 궤도를 돌면서 1년 동안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2031년 누리호를 개량한 한국형 발사체에 실어서 올라갈 우리 달 착륙선을 위한 착륙 후보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5m급 고해상도 카메라(LUTI·Lunar Terrain Imager)를 사용한다.

광시야 편광 카메라(PolCam)로 달 표면을 분석하고, 경희대가 개발한 자기장 측정기(KMAG·KPLO MAGnetometer)로 달 주변의 자기장을 측정하는 임무도 있다. 현재 달 궤도를 돌고 있는 NASA 탐사선들과의 공동 관측을 통해 달의 내부 구조에 대한 정보도 수집한다.

달 표면에 분포하고 있는 철·타이타늄·우라늄·토륨 등 원소 분석에 사용하는 감마선 분광기 (KGRS·Kplo Gamma-Ray Spectrometer)도 싣고 있다. 물의 존재를 유추하기 위한 수소의 스펙트럼도 분석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로 우주 인터넷을 시연할 우주인터넷 탑재체(DTNPL·Disruption Tolerant Network Payload)도 가지고 간다. 다누리가 BTS의 인기곡 다이너마이트를 지구로 송출할 예정이다.

달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탑재해놓은 NASA와 애리조나주립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영구음영지역 카메라인 섀도캠도 주목을 끌고 있다. 달 표면에서 영구적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그림자 지역의 반사율을 측정하는 장비다. 달 표면에서 액체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우주에서의 생명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크게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5일 발사 40분 후 발사체와 분리됐다. 이후 발사 1시간 30분쯤 뒤인 9시40분 지상국과 첫 교신에 성공했다. 이미지는 스페이스X 발사체 팰컨9로부터 분리되는 모습. 스페이스X 공식채널 캡쳐

수준 높은 서사(敍事)가 필요하다

우리가 달 탐사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우주인을 배출하겠다고 법석을 떨던 바로 그 때였다. 2020년에 달 탐사선을 발사하고 2025년에는 달 착륙선을 발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지난 15년 동안 정치적으로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바로 정부의 달 탐사 사업이었다. 이제라도 다누리가 달을 향해 날아가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우주 강국인 미국·러시아·유럽연합 이외에도 일본·중국·인도도 우주 개발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아랍의 작은 나라 아랍에미리트(UAE)가 화성을 향해 탐사선을 발사할 정도다. 우리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남극과 북극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했듯이 우주 개발도 미래를 위한 국력의 경쟁이다. 우주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국가가 우주의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될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우주 개발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특히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의 아픈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인 배출 사업을 억지로 밀어붙였던 정부의 구상이 너무 어설펐다. 결국 자신의 학업을 중단하면서까지 정부의 우주인 배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소연 박사는 자신에게 집중된 오해와 비난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한국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어설픈 우주인 배출 사업으로 국고를 낭비하고 젊은 과학도의 인생에 오점을 남긴 현실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정부가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당연히 수용해야만 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오늘날 우리는 국민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 개발 사업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한 우주 개발은 진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서사(敍事)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른 우주 선진국들이 우주로 나가니 우리도 당장 서둘러야 한다는 어설픈 주장은 설득력을 기대할 수 없다. 남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빈 지게를 지고 따라 나서야 할 이유는 없는 법이다.

우주 개발에 대한 과학적·기술적인 설명으로는 국민을 충분히 설득할 수 없다. 우주 개발의 과학적·기술적 성과에 감동하는 일은 전문가들에게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탐스럽고 예쁜 저 달이 우리의 궁극적인 욕망을 자극한다는 수준의 소박하고 감정적인 호소도 충분한 설득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본 사람들이 이제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보고, 달에 가서 집을 짓고 살아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주장은 환상이고 착각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주여행의 비용이 비행기 요금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달에 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달 탐사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도 억지일 가능성이 크다. 달에 상당한 양의 헬륨-3와 희토류 자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가 달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달에 존재하는 자원을 채취하는 일은 물론이고 지구로 운반해오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달이 하늘에 있는 광산이라는 주장은 수소를 우주의 75%를 차지하고 있어서 고갈의 위험이 없는 청정 에너지라는 억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달이 우리에게 우주로 나가는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할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중력이 지구 중력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매력적일 수는 있다. 달에서 출발하는 로켓의 연료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달을 전진 기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기기는 쉽지 않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주 개발 사업을 순위 경쟁으로 변질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주 개발의 의미를 비현실적인 공상과학 수준으로 과장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삼가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우주 개발에서 얻어지는 사소한 기술의 가치를 과장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우주 개발에 나서야 하는 명분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당화시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 모두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1968 년 12 월 24 일 아폴로 8호 승무원 앤더스가 달 궤도에서 찍은 사진. NASA 제공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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