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허리 강원 백두대간 대탐사] 17. 영동과 영서 농·어촌 만남의 광장, 백두대간 변화의 중심 선자령

김우열 2022. 8. 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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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별빛 아래 구름 덮고 하룻밤, 사랑도 넘어가는 길
백두대간 중심 강릉∼평창 연결
채소·해산물 등 장사 물자 교류
한양 과거시험 위한 '희망의 길'
남녀노소 '백패킹 성지' 인기몰이
풍차 등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
텐트 하나로 자연 속 힐링 만끽
▲ 선자령 백패킹 모습. 텐트가 대자연의 숨결과 호흡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진제공= 심병교씨

아! 백두대간

백두대간 등줄기에서 대관령 북쪽에 솟아있는 해발 1157m의 ‘선자령’.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있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길이다.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오가는 유일한 통로여서 그 옛날 선조들의 희로애락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힐링이 대세인 요즘, 백두대간 변화의 중심에도 서 있다. 탁트인 전망과 바람소리, 맑은 공기, 하늘에 뜬 별과 달 등 편안한 아름다움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자령은 ‘로맨틱 백두대간’, ‘백패킹 성지’로 통한다. 배낭 하나에 텐트와 침낭, 먹거리를 챙겨 대자연과 함께 호흡한다. 과거·현재가 공존하고 역사, 문화, 자연경관, 생태자원이 어우러진 곳.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동과 영서, 농·어촌 ‘만남의 광장’

선자령은 백두대간 중심에 위치한 봉우리로 북쪽으로는 노인봉, 남쪽으로는 대관령, 능경봉과 연결된다. 대관령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오가는 유일한 고갯길이어서 물자 교류와 공동체 문화 확산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강릉을 비롯 동해안에 살던 사람들이 한양에 갈 때 이용했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선비들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갔다. 권문세가(權門勢家) 자제들은 말(馬)을 타고 고개를 넘었다. 하인들은 등짐을 메고 말을 끌면서 한양과 강릉 등지를 오갔다.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 예술인 신사임당(1504∼1551)의 남편인 한양 출신 이원수도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어가 강릉의 규수 신사임당에게 장가를 갔다. 상인과 생선장수, 채소장수 등 보부상들이 생계를 위해 다니는 길이기도 했다. 평창 등 영서지역 사람들은 고등어와 꽁치, 도루묵 등의 해산물을, 강릉 등 영동지역 사람들은 감자와 콩, 옥수수 등 구황 작물을 얻기 위해 이 길을 오갔다. 이 길의 단골은 큰 장사꾼. 그들이 해산물 등을 사가지고 와서 상인들에게 떼어줬다. 가장 인기있는 생물은 고등어. 서민들은 엄두도 못내는 귀한 생선이었다. 서로(영동∼영서, 영서∼영동)가 가야하는 길이 멀다보니 선자령 어느 지점에서 물물교환이 이뤄지고, 넓고 평평한 대지에서는 난전도 열렸다.

▲ 선자령 백패킹 모습. 텐트가 대자연의 숨결과 호흡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진제공= 심병교씨

선자령 인접 마을인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6리 토박이인 신미자(74) 씨는 “과거시험과 장사 등 여러 목적을 갖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선자령과 대관령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당시 바다 생선인 고등어를 먹을 수 있는 집은 부자였는데, 그 옛날 못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고등어”라고 했다.

주민 이창년(71) 씨는 “주먹밥을 싸서 강릉으로 가 옥수수와 감자, 콩, 나물을 생선과 바꾸기도 했다”며 “어릴적 아껴 먹으려고 오래 뒀다가 상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대한노인회 대관령분회 소속 박재기(86)씨는 “그 옛날 먹고사는게 힘들어서 그런지 대관령을 넘는게 너무 고됐다”며 “영동과 영서가 만나고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희망과 화합의 길이었다”고 했다.

▲ 푸른 초원 위에 풍차가 힘찬 날개짓을 하며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백두대간 변화의 중심 ‘선자령’

선자령에 어둠이 깔리자 불이 하나 둘 켜진다. 조금 전 까지 없었던 ‘작은 방’이 뚝딱 만들어져 그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작은 방’은 ‘텐트’다. 허허벌판에서 불켜진 형형색색 텐트가 대자연의 숨결과 호흡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내 방(텐트)을 짊어지고 배낭 속에 먹거리 등 최소한의 필요 물품만 챙겨 야영하는 ‘백패킹’이다.

백패킹 인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선자령이 ‘백패킹 성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바쁜 현대인들은 한적한 자연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선자령은 산에 오르고, 경치를 감상하고, 내려오는 기존의 딱딱하고 서두르는 틀에서 벗어나 오르고, 감상하고, 쉬고, 잠자고, 내려오는 멈춤과 느림의 미학을 알려준다. 대관령 휴게소 등지에서도 캠핑카와 텐트 등을 쳐놓고 낭만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백패킹 마니아 심병교(강릉·52)씨는 “좋은 호텔도 있고, 다 갖춰진 오토캠핑장도 있어요. 편하게 쉴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진정한 여행은 아닌 것 같아요. 힘이 들어야 더 큰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나를 던지고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이 좋습니다. 탁트인 전망, 이국적 풍경, 바람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잔 마시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밤에 별빛이 쏟아지면 큰 감동입니다. 그렇다고 산림을 훼손해선 안되죠. 쓰레기도 치워야 합니다. 힐링하면서도 보호하고 지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 해발 1157m의 백두대간 선자령 정상 모습

대관령휴게소 인근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A씨는 “예전에는 대관령과 선자령에 중·장년층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커플을 비롯해 20∼30대가 많이 찾는다”며 “백패킹과 캠핑 등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 젊게 변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와 장사도 잘 돼 기분이 좋다”고 했다.

선자령의 산행기점은 해발 840m의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부터 317m 표고차에 불과하다. 산세도 완만하다. 주요 코스는 대관령휴게소∼등산로 입구∼양떼목장∼선자령∼전망대∼국사성황당∼등산로 입구∼대관령 휴게소이다. 등산로에 들어서면 풍력발전을 위해 세운 풍차가 대관령 바람을 맞아 힘차게 돌아간다. 푸른 초원 위 풍차는 오르내리며 계속 마주하고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뤄 장관이다.

울창한 산림숲을 오르다 보면 백두대간 등허리인 선자령 정상에 선다. 하늘과 구름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아늑하고 포근하다. 동해바다와 강릉시내, 대관령 등 영동과 영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끝없이 펼쳐진 백두대간 줄기는 예술이다.

대자연은 영동·영서지역 사람들을 위해 길을 내줬다. 이 길에는 그들의 희로애락이 짙게 배어있다. 낮과 밤,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그렇기에 목적이 무엇이든 산에 오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기 때문에 꼭 기억하고 명심해야한다. 변화 속에서도 백두대간을 보호하고 지켜야한다는 것을. 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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