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석장승 지나.. 그 여름의 끝에 붉은 꽃송이 [자박자박 소읍탐방]

최흥수 입력 2022. 8. 1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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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나주 다도면 도래마을과 불회사
나주 덕룡산 자락 불회사 뒤편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풍성하게 꽃을 피웠다. 배롱나무는 여름의 끝자락을 붉게 장식하는 꽃이다.

들판만 넓은 줄 알았더니 골짜기도 옹골차다. 전남 나주는 영산강 주변이 광활한 평야인 데 비해 화순과 경계를 이루는 다도면엔 산이 많은 편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평평한 들판에 봉긋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다양한 삶의 모양을 품고 있다. 낮은 산자락 사이에 옹기종기 마을이 자리 잡았고, 좀 더 깊은 골짜기에는 오래된 사찰이 그윽한 정취를 머금고 있다.


정갈함 돋보이는 한옥과 돌담길, 500년 전통 도래마을

다도면 중심에 나주호가 있다. 1976년 완공한 나주댐은 농업용수를 대는 용도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호수 동쪽에 대규모 리조트 단지가 들어선 것을 제외하면 나주호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대중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리조트 맞은편 중매봉 자락의 ‘망향의 동산’ 정도다. 높지 않은 산중턱이지만 잔잔한 호수와 주변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여느 댐과 마찬가지로 물에 잠긴 마을 이름이 비석에 열거돼 있다. ‘주랭이’ ‘반여울’ ‘쟁기머리’ 등 정겨운 마을은 물에 잠기고, 전망 좋은 언덕에는 예쁜 펜션이 자리 잡았다. 인근 한전 인재개발원 주변 호숫가에 전망대와 산책로가 개설돼 있지만 이정표가 부실해 입구를 찾기 힘들다.

나주호 망향의 동산에서는 잔잔한 호수와 주변 지형이 한눈에 조망된다.
나주호 망향의 동산 바로 아래에는 대규모 펜션이 터를 잡고 있다.

나주호 상류에 전통 한옥마을인 도래마을이 있다. 마을 뒤편 식산에서 뻗은 맥이 ‘내 천(川)’자 모양 세 갈래로 갈라져 ‘도천’이라 부르다 도래마을이 됐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부터 풍산 홍씨가 5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현재도 100여 가구 중 70%가량은 홍씨가 주인이다.

도래마을의 미덕은 빈집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오래 전부터 살아온 주민이나 새로 이사온 사람이나 골목과 마당, 정원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다. 덕분에 한옥과 어우러진 풍광에 정갈한 기품이 넘친다. 마을 어귀에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2개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마루가 널찍한 영호정은 주민들의 쉼터로, 특이하게도 2층 누각 대문에 토담으로 둘러진 양벽정은 홍씨 가문의 대소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나주 다도면 도래마을 전경. 500년 이어져 온 풍산 홍씨 집성촌이다.
도래마을 입구의 양벽정. 풍산 홍씨 집안의 대소사와 설날 세배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양벽정에는 여러 수의 한시가 걸려 있다. 후손들을 위해 한글로 해석해 놓았다.

매년 한 차례 ‘도래의 날’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고향을 떠난 외지인이 전부 모여 음식도 만들고 체육대회 겸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설날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나와서 떡국을 먹고 세배하고 덕담을 나눈다. 풍산 홍씨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이 함께하는 명절 행사다.

건물 기둥마다 한시가 주련으로 장식돼 있다. “옅은 벽옥색 새 다관에 좋은 차를 끓이고, 좋은 한지 서첩에 아름답고 힘찬 글씨를 쓰네. 입에서 흘러나온 시문은 백설보다 곱고, 주인의 진심이 사람을 비추니 가을처럼 맑구나.” 기둥에 장식된 구절마다 양벽정과 그 주인의 심성이 엿보인다. 처마에도 여러 시가 걸려 있는데, 한문에 익숙하지 못한 후손들을 위해 바로 아래에 일일이 한글로 해석해 놓았다.

마을에는 이외에도 계은정 서벽당 귀래당 등 여러 개의 정자와 한옥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 홍기헌 가옥, 홍기응 가옥, 홍기창 가옥, 홍기종 가옥은 민속자료로 등록돼 있다. 후손들이 살고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이 열려 있으면 조용히 마당을 둘러볼 수 있다.

도래마을 홍기창 가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배롱나무가 소담스럽게 꽃을 피웠다.
민박으로 활용하는 홍기창 가옥의 별채 마당에 배롱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홍기창 가옥은 1918년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갖추었으나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고, 마당 한쪽에 부속 건물을 지어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을 대문으로 이용하는데, 문으로 연결되는 골목에 온갖 화초를 심어 잔잔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요즘은 배롱나무가 진분홍 꽃송이를 늘어뜨려 운치를 더한다.

도래마을의 한옥 숙박 업소. 마당과 정원을 정갈하게 가꿔놓았다.
도래마을 풍산 홍씨 종갓집인 홍기응 가옥 돌담길.

풍산 홍씨 종갓집인 홍기응 가옥(계은고택)은 도래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안채는 1892년, 사랑채는 1904년에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통 조경에 남도 양반주택의 공간 구성을 볼 수 있는 가옥이다. 종갓집답게 솟을 대문에서 연결되는 높은 돌담이 운치 있다. 담쟁이와 능소화가 어우러지고, 상사화와 봉숭아가 곱게 핀 돌담을 따라 잠시나마 과거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덕룡산 자락에는 왜 석장승이 많을까

도래마을에서 약 12㎞ 떨어진 덕룡산(376m) 자락에 2개의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운흥사와 불회사로 둘 모두 석장승으로 유명하다. 이름 그대로 돌로 만든 장승이다. 장승은 돌이나 나무에 사람 얼굴을 새겨 마을 또는 절 어귀에 세운 푯말이다. 대개 절간을 지키거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남녀 한 쌍으로 10리나 5리 간격으로 세워 이정표 구실도 했다.

운흥사 여자 석장승. 험상궂은 첫인상이 보면 볼수록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운흥사의 남자 석장승. 눈 코 입 등이 과장되게 표현돼 있다.

운흥사 석장승은 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밭 가장자리에 서서 마주보고 있다. 절 방향으로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 장승이다. 보통 목장승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으로 구분하는데, 운흥사 남녀 장승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새겨져 있다. 상원주장군은 머리에 관을 쓰고 턱밑에 팔(八)자 수염을 기른 모습이다. 크기는 두 장승이 비슷하다. 270㎝ 키에 몸통 둘레가 192㎝에 달하는 거대하고 당당한 체구다. 불룩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 뭉툭한 코, 성근 이가 그대로 표현돼 있다.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으려면 이 정도 외모는 갖춰야 할 모양이다.

죄를 지었거나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첫인상에 깜짝 놀랄 법한데, 이상하게 볼수록 온화하고 해학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험상궂은 듯하면서도 익살스럽다. 투박하고 단순한 조각인데 보는 방향과 주변 빛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인다. 특히 여 장승의 입 주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진다.

운흥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절간의 짜임새는 엉성한 편이다. 넓은 절터에 대웅전 산신당 관음전 팔상전 등 여러 전각이 흩어져 있지만,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후 지은 건물이라 전통사찰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웅전 앞 오래된 감나무 두 그루가 그나마 고찰의 면모를 살리고 있다.

불회사 입구의 남자 석장승. 댕기머리처럼 땋은 수염까지 표현돼 있다.
주차장에서 불회사까지 가는 길은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짙은 그늘이다.
불회사 숲길의 600년 된 느티나무 연리목. 앞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뒤 나무가 뿌리를 밟고 있다.
불회사 숲길에서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를 여러 그루 볼 수 있다.

옆 골짜기의 불회사 입구에도 남녀 석장승이 방문객을 맞는다. 운흥사와 마찬가지로 절 앞 300m 지점 길 양쪽에서 마주보고 있다. 운흥사 석장승을 세운 건 1719년이다.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불회사 석장승도 이 무렵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 모두 운흥사의 석장승보다 선이 깊고 뚜렷하다. 특히 남자 장승은 턱밑으로 길게 꼰 수염 때문에 꼬장꼬장하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운흥사 석장승에 비하면 표정이 한결 근엄하고 비장하다.

불회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인도의 마라난타(摩羅難陀)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과 동시에 건립된 사찰이다. 그 뒤 신라 말에 도선이 중건하고, 조선 태종 2년(1402) 원진 국사가 중창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덕룡산 골짜기의 불회사. 백제시대에 창건한 오래된 절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대웅전과 그 안에 모신 비로자나불상이 보물로 지정돼 있지만, 전각보다는 경내로 들어서는 숲길에 고찰의 풍모가 그득하다.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약 700m 흙길 양편으로 편백나무와 전나무 느티나무 등 아름드리 거목이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대낮에도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편백숲 아래에는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뒤엉켜 초록 융단이 깔려 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고, 피안의 세상으로 들어가듯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 중간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연리목을 형성하고 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려 곧장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은 나무를 뒤의 큰 나무가 단단히 붙잡고 있다. 곡예를 보는 듯 기이한 형상이다.

불회사 전각 뒤편에 홀로 선 배롱나무. 검푸른 비자나무 앞이어서 꽃송이가 유난히 붉고 풍성해 보인다.
나주 다도면 여행지도. 그래픽=성시환 기자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등 전각 뒤편 산자락을 검푸른 숲이 감싸고 있다. 수령 300~400년 된 비자나무 2,3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대규모 군락지다. 극락전 앞에는 오래된 단풍나무 한 그루가 Y자 모양으로 가지를 드리웠고, 응향각 뒤편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단 한 그루에 불과하지만 뭉쳐진 꽃다발이 이른 봄 목련보다 탐스럽고 오월의 장미보다 붉다. 비자나무 숲을 배경으로 두르고 있으니 수형과 색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 고고한 기품과 감동은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여름이 가기 전 불회사에 가야 할 이유다.

배롱나무는 예부터 사찰이나 서원에서 정원수로 심어 왔다. 100일 가까이 피고 지기 때문에 나무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한 꽃은 대개 9월까지 볼 수 있고 더러는 10월까지 이어진다.

나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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