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성급한 청와대 복합문화예술공간화
대통령 취임 100일과 함께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한 지도 100일이 됐다. 최근까지 청와대를 방문한 일반 국민은 15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명명으로 12년 동안 경무대(景武臺)로 불리다가 이후 윤보선 대통령 취임부터 본관 지붕의 푸른 기와를 칭하는 청와대로 개명해 해방 후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청와대를 떠올리면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의 정치제도와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연상하게 된다. 불과 100일 전까지도 청와대는 곧 대통령이 있는 곳이어서 철저한 보안이 당연하고 서울지도에 나타나지 않아도 궁금하거나 크게 불편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청와대가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 후 궁금함은 더 커졌다.
청와대 터는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남경의 행궁이 있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경무대라 했다고 한다. 일제 총독관저, 미군정 사령관저가 있었고 혼란한 현대사의 시기를 지나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개명하며 독재정부에 항거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듬고 오늘에 이르렀다. 용산 국방부 건물로 현재 대통령의 집무실은 이전했고 청와대는 국민에게 개방됐다. 이제 청와대에 대통령은 없고 푸른 기와의 빈 건물만이 남았다.
오래전 청와대 방문이 자유롭지 않던 시기에 청와대 단체관람 기념사진을 크게 인화해 책장에 두셨던 할아버지의 소소하지만 은근한 자랑거리 청와대 사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최근 청와대 잔디밭에 대기업 가구회사의 하얀 소파도 방문 기념사진을 홍보해 물의를 일으켰다.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를 방문한 소파라면서. 현재 청와대 관리를 책임지는 문화재청은 청와대 권역 내에서의 촬영은 비상업적 용도만 허가하고 특정 제품 노출과 홍보 목적의 촬영은 금지한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유명 가수의 늦은 밤 비공개 단독공연녹화, 예능방송 촬영에 이어 개인의 결혼식 촬영 문의도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개방 첫날 관람 추첨에 당첨되지 않아 아쉬워하는 국민까지 다들 왜 이렇게 성급한 건지 뭐든 급한 ‘빨리빨리 문화인’의 특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목적과 방향 없이 서두르는 건 현 정부의 청와대 활용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달 2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미술전시 중심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원형은 보존한 상태에서 문화예술과 역사, 자연 등을 매력적으로 조합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원형을 보존하면서 역사 자연을 품은 고품격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뜬금없이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을 언급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고자 청와대를 국민에게 급하게 개방한 취지가 흐려졌다.
청와대 원형을 잘 보존하며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원형에 대한 조사·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청와대 개방 이전에 청와대 권역의 역사 및 관련 문화재에 대한 제대로 된 기초조사나 발굴, 연구조사는 없었다. 대통령 취임 전 문화재청은 “훼손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을 회복해 청와대를 세계적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며 청와대 일대의 핵심 유적 발굴과 복원 정비기간을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으로 설정한다고 했으나 어느새 이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대신 ‘경복궁 후원 기초조사 연구’ 용역을 시작하기로 했다. 약 4개월간 청와대의 보존·관리 및 활용의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조사 연구로 문체부와 문화재청, 대통령실 청와대 관리·활용자문단과 함께 연말에 더 진전된 청와대 활용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한다.
문체부는 청와대 첫 프로젝트로 이달 31일부터 장애인 작가 50인의 미술작품 50여 점으로 ‘장애예술인 특별전’을 춘추관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마음이 불편하다. 과연 국민 중 그 누가 이렇게 준비도 없이 급하게 청와대 문부터 열어달라고 요구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지도에 나타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던 청와대, 잠시 문을 닫고 원형에 대한 조사와 연구, 활용 계획, 국민의 의견 수렴 등을 느리게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동네의 복합문화공간도 주민의견 수렴이 먼저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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