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파란 델피늄

국제신문 2022. 8.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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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찾아온 변화에 대해 말하며 갑자기 내가 생각나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선아는 내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선아와 내가 공유하고 있던 각자의 삶이란 너무도 작은 일부이기에 그녀의 세상을 다 알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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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찾아온 변화에 대해 말하며 갑자기 내가 생각나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음성에서 다정하고도 통쾌함 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는 먼 곳에 떨어져 있고 함께 하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와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전화 통화를 한 뒤 4개월이 지난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선아~” 카페에 들어서며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무 빌딩에 위치한 1층 카페는 그날이 일요일 아침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손님은 우리 둘뿐이었다.

“언니~”

선아의 부드럽게 펼쳐지는 로브 스타일의 소맷자락이 나의 어깨를 감쌌다. 나도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도닥였다. 선아의 반듯한 눈매는 여전했다.

“아침 식사했니?”

잠시 짬을 내어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으나 무엇이든 더 먹여 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치즈가 듬뿍 올려진 따뜻한 크로무슈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정을 꾸리고 난 뒤 여자들의 만남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웠다. 특히 일을 하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이 함께 만나는 일은 더욱 그랬다. 그러다가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어 시간이 생기면 관계들이 변해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이 놀라울 만큼이나 중년으로 변해있는 관계들의 농도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각 개인의 삶이 변했다.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른 것으로 옮겨 가거나 허무와 쓸모를 따지는 기준이 큰 폭으로 벌어졌다. 다행히 선아와 나 둘 사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인연이 생긴 뒤로 생각나면 주저하지 않고 연락했다. 만남은 그렇게 가능한 것이었다. 서로에 대한 그 무엇이 끌어당기는 것과 비슷했다.

선아는 내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조건이 좋은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지 2주째라고 했다.

“시나리오 쓰는 일은 어때?”

선아가 직장을 구한 것은 시나리오 창작만으로는 불안한 미래 때문이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애정과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현재의 막막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작에 대한 갈망과 고단함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선아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에 대해 물었다.

“절룩거리던 주인공이 이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걷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어요.”

선아와 내가 공유하고 있던 각자의 삶이란 너무도 작은 일부이기에 그녀의 세상을 다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선아가 창작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선아는 문장을 통해 살아있는 하나의 인물을 탄생시키고 삶을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촘촘한 설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념에 가까운 작가의 확신인 것 같다고도 했다. 또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주인공이 바라보는 파란색이 독자나 관객에게도 같은 파랑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땐 함께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던 텅 빈 길을 걷기 시작하는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 남자일지 여자일지 모를 그에게 선아가 입고 있던 가벼운 로브를 걸쳐주었다. 그런 다음 일정한 무늬가 반복되고 있던 선아의 옷에서 파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돌고래를 닮은 파란 델피늄꽃이 선아의 온몸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선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의 꽃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할 거예요.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 말을 듣고 있던 내 표정이 어땠는지 선아는 나중까지 기억할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파랑을 찾아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차영은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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