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생각하는 대통령이어야 산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말했다.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독립운동은 분단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말했다. 시대적 사명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이 자유에 대한 위협에 함께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시대적 사명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이익에 희생되지 않을 분단 극복과 평화이다.
마침내 대통령은 말했다. 일본은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칠 이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일본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한국을 희생시킬 수 있는 강대국의 하나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외교 전략을 들을 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축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일본의 핵심 외교 전략이다. 흔히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개념을 미국이 고안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본이 만들어 미국과 함께한 것이다.
일본 외무성이 발간한 외교청서는, 아베 전 일본총리가 2016년 8월, 제6회 아프리카 개발회의에서 이 전략을 제창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구성요소를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자유무역의 보급과 정착’이라고 제시한다. 외교청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비전을 공유하는 나라들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실현한다는 것이 일본 외교의 전략이다. 그러니까 중국 견제 전략이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이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제를 깔았다. 알다시피 전체주의란 일당독재 또는 국가주의와 같은 개념이다. 독립운동과 관계가 없다. 독립운동은 일본 민주화 운동이 아니었다. 민족해방운동이었다. 3·1 독립선언서는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이라고 했고,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제창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과 전체주의를 연결시켰다. 그리고 법의 지배와 같은 가치를 제시했다. 이어서 자유의 가치를 같이 공유하는 나라들이 함께 위협에 맞서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끌어올렸고 일본을 그 동반자로 호명했다. 이렇게 일본의 외교 전략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로 낭독했다.
세계를 법치국가와 비법치국가로 양분하는 일은 지혜롭지 않다. 그것은 한반도 분단을 합리화하고 영구화하는 논리이다. 38선을 다시금 국제 대결의 최전선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대통령의 경축사와는 달리, 일본 외무성은 2015년에 한·일관계를 해설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누리집에서 삭제했다. 심지어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일본 의회의 중요한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일관계를 언급하면서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 이웃국가라고 발언했다. 과거형이다. 그러면서 바로 뒤이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강제징용공 문제를 일본의 요구에 따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을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말하는 법치이다.
대통령은 시대를 잘못 읽었다. 한국의 시대적 사명은 자유민주 대 전체주의와 같이, 허구적 세계관을 부활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미국 연방통계국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의 미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2020년보다 17.7%나 늘었다. 260만개의 미국 일자리가 중국 교역에서 생긴다(2017년 기준).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중국 견제는 한국의 이익이 될 수 없다.
선진국 한국은 국제경제협력을 주도할 능력이 있다. 세계무역의 98%를 차지하는 164개 회원국들로 이루어진 다자주의 무역체제(WTO) 발전에 이바지할 역량이 있다. 제13차 WTO 각료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은 기후, 환경, 전염병, 친환경 기술표준 등 보편적 필요를 해결할 국제협력에 기여할 능력이 있다.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제 조세 및 사회정책 개발에 앞장서는 선도 국가가 될 수 있다.
조선 민족은 3·1독립선언서에서 더 이상 침략주의에 희생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선진국 한국은 강대국들의 국제 대결에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국군전투부대 작전통제권을 온전히 환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대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북한 핵의 본질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이기 때문이다. 광복 제77주년, 생각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송기호 변호사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 소프트뱅크에 ‘라인’ 경영권 뺏길판…일본 정부서 지분 매각 압박
- “육군은 철수...우린(해병) 한다” “사단장님이 ‘하라’ 하셨다”···채 상병 사건 녹취록 공
- 민희진 대표 “무속인이 불가촉천민? 개인 사찰로 고소할 것”
- 나경원, ‘윤 대통령 반대’ 헝가리 저출생 해법 1호 법안으로···“정부 대책이 더 과격”
- 공수처, ‘이정섭 검사 비위 폭로’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 조사
- “매월 10만원 저금하면 두 배로”…다음주부터 ‘청년통장’ 신청 모집
- 아동 간 성범죄는 ‘교육’ 부재 탓···사설 성교육업체에 몰리는 부모들
- [초선 당선인 인터뷰] 천하람 “한동훈은 긁어 본 복권…정치 리더로서 매력 없어져”
- 니카라과, “재정 악화” 이유로 한국 대사관 철수 통보
- 현대차, 차량 내부 20℃ 이상 낮춰주는 틴팅필름 개발…‘뙤약볕’ 파키스탄서 실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