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 신앙과 정치
최근에 있었던 무참한 폭우사태로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남땅을 밟은 적이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수해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보도만 보아도 엄청난 피해가 있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페친은 이 사태와는 관련이 별로 없어 보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감사예배, 나라의 번영과 국민통합을 위해 기도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지난 기사와 사진을 올렸다. 이번 폭우사태와 윤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보수적 기독교와 함께 부촌인 강남지역을 머릿속에 두고 올렸던 것 같다.
기독교인이 아니기에 이 예배를 주관한 원로목사들의 면면을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기사의 내용은 모두가 다 내로라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원로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설교 ‘믿음의 사람들이 대한민국과 당선인을 위한 눈물의 느헤미아 성전 재건과 같은 회복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은 한국사회에 있어서 기독교와 정치의 상호관계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신앙과 정치, 특히 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를 둘러싼 숱한 논쟁들이 생각났다. 이미 고전이 된 독일의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1886~1985)의 <정치신학>(1922)이 먼저 떠올랐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경험하면서 그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예외적 상황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보았다. 따라서 주권은 바로 이 예외적인 상황이 어떤 것이냐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혼란과 위기를 맞아 변혁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따라서 규범에만 얽매인 지루한 정치를 한순간에 혁파할 수 있는 ‘결단주의’를 요구한다. 그는 또 이런 예외적 상황은 종교에서 종종 이야기되는 이른바 ‘기적’과 유사하다고 해석했다.
정치가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통합기능의 퇴화는 근대화와 국가권력의 민주화와 함께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때문에 정치의 본령인 통치자의 결정권은 합리성, 법과 도덕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정치의 중성화나 탈정치, 그리고 영혼 없는 정치가 활개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시대진단이었다.
상반된 정치신학 국내서도 나타나
자유주의가 표명하는 계몽의 정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이것들이 바로 혼란스러운 정치판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정치의 위기를 곧 믿음 체계의 위기로 해석하고 기독교적인 구세의 역사에서 해법을 찾았던 반계몽적 정치신학은 곧 나치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정치적 결단을 신의 원초적이고 신비스러운 어떤 영성에 의지하여 설명하려는 가톨릭 보수주의에 뿌리를 둔 그런 정치신학은 아니지만, 반계몽주의적 전통에서 역시 자유주의를 적극 비판한 정치철학도 있다.
유대계 독일철학자로서 이러한 사상적 흐름의 대부 격인 시카고대학의 레오 슈트라우스(1899~1973)는 일반적으로 계몽의 하나의 큰 이정표로 삼고 있는 프랑스혁명조차 ‘노아의 홍수’에 비유했다. 특히 그의 반자유주의적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때 득세했던 ‘네오콘’으로 불렸던 신보수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만남은 당연하였다.
그렇다고 정치신학이 이렇게 다 보수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독일 뮌스터대학의 가톨릭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1928~2019)는 <새로운 정치신학>에서 신앙의 사유화와 부르주아화를 비판하며 현실의 실제적인 조건 속에서 종말론적인 복음을 전하는 과제를 강조했다. 하늘나라에서도 세계교역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언급한 그의 정치신학의 핵심은 한마디로 살아 있는 자는 물론, 죽은 자까지 포함된 타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데 있다.
얼마 전 타계한 김지하 시인이 옥중에서 고초를 겪을 때 그의 석방을 위해 열심이었던 그의 행적도 그렇지만, 그의 정치신학은 남미의 해방신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망소식을 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신학이 ‘가난한 자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축복을 내렸다.
이 같은 정치신학의 서로 다른 두 흐름은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나는데 가톨릭교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나 ‘민중신학’을 둘러싼 논란은 물론,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둘러싼 종교적 해석에 나타나는 대립구도가 그대로 거리의 시위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정치신학의 한국적인 현주소다.
다른 선진 산업국과 비교할 때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이른바 ‘압축적 근대화’로 인해서 생활세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는 크다. 여기에 더해서 분단상황이 주는 압박감은 개인이나 집단의 신앙적인 행동양식에도 자기 성찰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신앙생활의 주된 내용을 이루게 된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내려온 무속신앙까지 더해 개인의 복과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 신앙 그 자체가 되었다. 영적인 부를 보다 근본적이라고 보는 기독교적인 기복신앙은 전통적인 무속신앙이나 불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성서의 많은 구절을 인용하면서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보수적인 정치신학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주의에 대하여 갖는 오해와 편견이다.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큰 책임이 자유주의에 있다는 주장은 그래도 많은 동조자를 얻고 있다.
한국서 정치신학은 원래부터 잘못
여기에는 자유와 방종 그리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흔히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사회의 정치 문화도 한몫한다. 예를 들면 페미니즘이나 동성애와 같은 주제는 아직도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성 윤리의 산물로서 치부되어 신앙세계의 담론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다.
특히 분단구조 안에서 성장한 보수주의적 정치신학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치면서 선과 악의 절대적 투쟁으로 남과 북을 보려는 사고의 틀을 확대 재생산한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분단체제의 남과 북이 서로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안에 들어 있는 타자로서, 화해와 통일의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이해하려는 ‘통일신학’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벽은 아직도 높다. 1991년 7월,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 도쿄회의’에서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의 강연내용을 문제 삼아, 기독교와 주체사상 간의 대화를 오랫동안 모색했던 여성신학자 박순경 교수(1923~2020)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하나의 예로 떠오른다.
금년 광복절을 맞아 KBS가 발표한 국민 통일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1%가 북한정권에 반감을 보이고, 51.7%는 큰 부담이 없으면 통일이 좋고, 18.4%는 상당기간에 걸친 공존상태의 유지를 바라며, 13.4%는 아예 통일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지만, 16.6%는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큰 반감이 있지만, 경제나 안보불안 때문이라도 북과의 대화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믿는, 모순적인 정서는 여전하다. 며칠 전 민주노총이 주최한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하는 시위에 이은 주사파 척결과 자유통일을 내세우는 보수세력의 집회가 있었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광복절 기념행사다. 전자는 ‘종북시위’로 비난하고, 후자는 집회 때문에 시민이 겪는 불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언급하는 언론의 프레임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정치적 집회·시위나 구국 기도와 시국 기도를 통해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을 원색적으로 쏟아내는 신앙에 기초한 정치신학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세속화되었고 또 기능적으로 분화된 한국사회에서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정교일치(政敎一致)를 지향한다면 이는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유럽의 많은 기독교 정당처럼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세속적인 정치의 운명은 결국 주권자인 깨어 있는 시민의 투표에 달려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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