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칼럼] 한국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들

이진우 2022. 8. 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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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장관의 韓기업 챙기기
경제안보 시대 기이한 장면
中견제 최종목표 좋은 일자리
한국은 민노총부터 뜯어고쳐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실세 중 실세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대통령을 수행 중이던 옐런 장관이 CNBC와 따로 인터뷰를 하면서 "일 잘한다"며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의 연임을 예고했다. 대통령 수행 중인 장관이 해외에서 별도 인터뷰를 한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인사 결심까지 미리 발설한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그러려니' 했다. 옐런이었으니까.

작년 5월 인터뷰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의 애드벌룬을 가장 먼저 띄운 것도 그였다. 뉴욕증시가 들썩였고, 연준의 독립성에도 금이 갔지만 별탈 없이 넘어갔다.

이런 옐런 장관이 지난달 한국에 다녀갔다. 과연 파격이었다. 그는 첫 일정으로 LG화학의 배터리 소재 연구시설이 모여 있는 마곡R&D캠퍼스를 방문했다. 미국 재무장관이 한국의 제조기업 연구소를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희한한 일이다. 그런데 그가 던진 화두는 더욱 특이했다. 옐런 장관은 동맹국 간에 공급망을 공유하는 '프렌드 쇼어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산업정책의 근간을 상무장관이 아니라 재무장관이 설파한 것이다. 아무리 미국의 실세 장관이라지만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기이한 장면이었다.

옐런이 LG를 찾아간 것은 대통령과 역할을 나눈 측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장 방문, 면담, 백악관 초청 등의 형태로 삼성, 현대차, SK 그룹의 총수를 일일이 챙겼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생큐'를 연발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역시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쿼드(Quad),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칩포), 동맹 쇼어링과 니어 쇼어링에 이르기까지. 최근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한다. 대부분 중국을 겨냥해 미국이 고안해낸 것들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좋은 일자리 확보다. 양질의 일자리 많은 나라가 힘센 나라이고 부자 나라인 것이다.

지난 연휴 첫날인 1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숭례문 인근에 6000여 명을 모아놓고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이 요구한 건 한미동맹 파기와 전쟁 훈련 중단이었다. 1980년대 반미시위를 연상케 했다. 실제로 북한 노동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총) 중앙위원회가 보낸 '연대사'가 낭독됐다고 한다.

솔직히 민노총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에 나서는 건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일자리 국외 이탈을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면 이해는 됐을 것이다. 상황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노동자단체니까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지난해 말 이후 국내 4대 그룹이 발표한 대미 투자액은 600억달러가 넘는다. 어찌 보면 80조원짜리 일자리 기회가 미국 본토로 뽑혀 나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양키 고 홈'이라니.

기이한 일이다. 노동단체란 모름지기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본분이다. 민노총이 그래 왔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치구호와 극렬투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있는 일자리마저 없애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예컨대 한미동맹이 깨졌을 때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게 국내 일자리일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에 좋은 일자리를 끌어오기 위해 외국 기업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과 장관도 당연히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만 먼저 할 일이 있다. 저 민노총부터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내부 총질도 이런 내부 총질이 없다.

[이진우 국차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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