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라, '알렉산더의 말'과 '칭기즈칸의 매'를! [고두현의 문화살롱]

고두현 입력 2022. 8. 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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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와 자제 사이
야생마처럼 사납게 뛰는 명마
남다른 시선으로 재능 알아봐
독이 든 물 못 마시게 한 매
홧김에 죽이고 뒤늦게 통탄
리더는 외부통제·내부절제 겸비
정치·경제 위기도 이렇게 돌파를
고두현 논설위원
페르시아 정복 전쟁 중 적진의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알렉산더와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이 열두 살 때였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거금을 주고 말을 한 마리 샀다. 덩치가 크고 윤기가 나는 흑마였다. 뿔이 난 소머리 무늬도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성정이 사나워 누구도 말 위에 오르지 못했다.

왕은 “어디서 이런 야생마를 끌고 와서 명마라고 거짓말을 하느냐”며 말장수를 꾸짖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년 알렉산더가 나섰다. 말에게 천천히 다가간 그는 말의 머리를 한쪽으로 돌려세운 뒤 조심스럽게 등에 올라탔다. 말은 다소곳이 그를 받아들였다. 조금 전까지 미쳐 날뛰던 광마(狂馬)가 그를 태우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자 모두가 감탄했다.

 두려움의 근원을 해결한 덕분에

비결은 뭘까. 당시 사료들에 따르면 그는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양을 등지고 있던 말의 방향을 바꿔 그림자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두려움의 근원을 해결함으로써 말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행동까지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명마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말에게 부케팔로스(황소의 머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평생 애마로 삼았다.

그때 그의 스승은 당대 최고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16세가 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절제와 이성, 조화와 균형의 중요성을 배웠다. 제왕의 리더십과 함께 지력, 자제력, 설득력 등 필수 덕목을 두루 배웠다.

그가 왕이 된 것은 20세 때였다. 아버지가 암살되는 바람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그는 혼란기의 반란을 일거에 잠재운 뒤 여세를 몰아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전투를 애마 부케팔로스와 함께했고, 원정 중 죽은 애마를 기리기 위해 건설한 도시에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찍이 명마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 힘을 통제할 줄 알았던 그는 10년간의 정복 전쟁 중에도 남다른 통제력을 발휘했다. 사막 행군 때 갈증으로 쓰러지기 전 병사가 떠다 준 물을 “나만 마실 수 없다”며 쏟아버릴 정도로 자제력도 뛰어났다.

그러나 페르시아 정복 후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도 원정을 고집하면서부터 허황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동쪽 대륙 끝까지 정복한 뒤 그 자리에 자기 이름을 새긴 비석을 남기고 오겠다며 과욕을 부렸다. 또 제우스 신의 아들을 자칭하며 독재자처럼 변해갔다. 충고하는 옛 친구를 술김에 죽여버리기도 했다.

이렇듯 자제력이 무너지자 참모들이 하나둘 떠나고 그의 지도력에 금이 갔다. 그가 후계 구도를 정립하기도 전에 32세로 급사하자 제국은 마침내 분열되고 말았다. 타인이나 주변 환경 등 외부 요소를 잘 조절하는 ‘통제력’만큼 자신의 내부를 조율하는 ‘자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지도력 최대 덕목은 자기절제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한 칭기즈칸

이와 관련, 150만 몽골 인구로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칭기즈칸의 숨은 얘기도 흥미롭다. 제임스 볼드윈의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에 나오는 한 장면. 칭기즈칸은 사냥할 때마다 아끼는 매(鷹)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사냥을 끝낸 그가 부하들보다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택했다. 한참 달리다 목이 말라 샘물을 찾았지만, 평소의 샘은 말라 있었다. 부하들은 보이지 않고 매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계곡 위의 바위틈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허겁지겁 달려간 그는 쪽박으로 물방울을 받았다. 이윽고 물을 마시려는 순간 그의 매가 날아와 쪽박을 치고 달아났다. 그는 떨어진 쪽박을 주워 들고 다시 물을 받았다. 반쯤 찬 물에 입 대려는데 또 매가 날아와 쪽박을 엎어 버렸다.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한 칭기즈칸

화가 난 그는 매를 쏘아봤지만 다음번 물마저 매가 엎질러 버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화살로 매를 쏘아 죽여 버렸다. 화를 가라앉힌 그가 바위 위로 올라가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시러 엎드렸을 때, 그는 물속에 커다란 독사가 한 마리 죽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서야 그는 사랑하는 매가 독물을 마시지 않도록 돕다가 죽은 것을 알고 탄식하며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자제력을 잃고 순간의 감정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자식들과 참모진에게도 “지도력의 최대 덕목은 자기 절제”라며 “자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만심과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나라에 가혹했지만, 유능한 인재는 부하로 받아들였다. 금나라 점령 때도 야율초재의 재능을 알고 신하로 삼아 서방 원정에 동행했다. 7년간의 정복 전쟁을 중지하고 군대를 돌린 결정 또한 “인명을 중시하라”는 야율초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내가 쓰는 단어가 행동을 결정

어떻게 해야 자제력을 키울 수 있을까. 미국 온라인 미디어 ‘리파이너리29’에 소개된 ‘자제력 키우는 법’ 중 네 가지가 눈길을 끈다. 첫째는 ‘선택권이 나한테 있음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어떤 유혹에 맞닥뜨리더라도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둘째는 ‘내가 쓰는 단어가 행동을 결정한다’, 셋째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생각하라’, 넷째는 ‘건강한 판단력을 가질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정신 근육을 키워라’다.

이 모든 것이 ‘마음’에 좌우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화를 다스리는 능력이다.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 리더의 자격을 잃게 된다.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화는 누구나 낼 수 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그럴 만한 사람에게 적당한 정도로, 적절한 때, 적절한 목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정치와 사회, 경제 현안을 다룰 때도 적용된다. 요즘같이 ‘남 탓’과 욕설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진흙탕 싸움을 끝낼 비결 역시 자제력이다. 국제질서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위험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련 출신 우크라이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하버드대 교수)가 저서 <핵전쟁 위기>에서 분석했듯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뻔한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핵전쟁을 예방한 결정적인 요인은 ‘소련과 미국이 충돌 직전에 자제력을 발휘하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출구를 모색한 것’이었다. 오늘부터라도 나 자신을 조율하고 제어하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비춰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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