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연변 한글우위 박탈과 中 소수민족

김청중 2022. 8. 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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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신 중국어 우선 표기 시행
시진핑 주창 중화민족주의 노골화
결국 조선족 등 소수민족 소외 심화
中 내부 불안·주변국과의 마찰 예고

“중화문화가 줄기(主幹·주간)고, 각 민족문화는 가지(枝葉·지엽)다.”

9월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앞두고 다시 드러난 중국의 퇴행적 민족정책을 보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발언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2017년 집권 2기 이래 시 주석의 중화민족공동체 주창자 행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청중 국제부장
연변주 정부는 지난달 25일 주(州)내 어문 표기를 규정하는 조선어언문자공작조례실시세칙(細則)을 발표했다. 핵심은 한글표기 우위에서 한문표기 우위로의 변경.

세칙 12조는 가로쓰기에서는 한문을 먼저, 한글을 뒤에 두거나, 한문을 상단, 한글을 하단에 배치하도록 규정했다. 세로쓰기에서는 오른쪽에 한문, 왼쪽에 한글이다. 적용 대상은 각 기관, 기업사업단위, 사회단체, 자영업자의 직인, 현판, 상장, 문건, 표어, 공고, 광고, 도로표지 등 거의 모든 문자 표기다.

1952년 9월3일 연변조선민족자치구(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당시 사진을 보자. 연단 중앙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진 좌우에 펼쳐진 오성홍기 위로 큼지막한 횡단막이 걸려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림성 연변조선민족자치구 각족(各族) 각계 제일차 인민대표대회’라고 쓰여있다. 같은 크기로 상단에 한글, 하단엔 한자다. 세칙과는 정반대인 이 표기가 연변의 원래 모습이다.

이번 세칙에 따라 우리 동포(조선족)의 외부 이주로 내부적으로 급속히 진행되던 연변주의 한화(漢化)가 외부적으로도 돌출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2월∼2007년 2월 연수 당시 연변은 우리 동포와 한족의 잠재적 갈등 공간이었다. 특히 연변주의 한글우위 어문 정책에 한족 저항이 심상찮았다. 주도(州都) 연길이나 용정처럼 조선족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 밖에선 한족이 한글우선 원칙을 대놓고 무력화한다고 조선족 간부가 고민을 털어놨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한족 92%와 55개 소수민족 8%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중국 당국은 1949년 소위 신중국 성립 이래 동란(動亂)의 10년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 등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언어·문화·풍속 △교육·대학입시 △간부 육성 등에서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민족갈등을 봉합해왔다. 맞을수록 단단해지는 강철처럼 일본 당국과 사회의 탄압과 차별 속에서 강력한 민족의식을 유지한 재일동포와 달리 재중동포가 순치된 배경엔 이런 우대 정책도 있다.

연변의 어문표기 정책 변화는 중국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족정책의 전변(轉變)을 상징한다. 그 바탕엔 중화민족공동체론이 있다. 중화민족공동체론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라 중국이 개념화한 소위 중화민족이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래(古來)부터 형성된 역사, 문화, 운명공동체라는 주장이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현재 중국 영토 안의 모든 왕조의 역사는 중국 역사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동북공정의 뿌리다. 조선족이 중화민족의 일원이니 김치나 한복도 중국 것이라거나, 용정 출신 시인 윤동주가 조선족이라는 주장의 연원이다.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앞세운 통치가 한계를 노출하자 장쩌민(江澤民) 시대 애국주의가 대두했다. 시진핑 시대 중화민족공동체론은 미·중 대립과 소수민족, 홍콩·대만문제, 경제난항과 빈부격차 심화 등 중국의 모순이 격화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다.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중앙민족회의에서 12개 지시를 내리면서 정확한 중화민족 역사관 견지, 중화민족의 동질감·자부심 공유, 국가주권 및 국가안보의식 유지와 애국주의 전통 계승·발양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화문화는 줄기고, 각 민족문화는 가지다. 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하다”고 했다. 줄기가 없으면 가지도 없으니 선(先)중화문화·후(後)민족문화라는 말이다.

줄기·가지론은 익숙한 논리다. 북한에서 백두혈통·곁가지론을 가지고 김일성-김정일 직계혈통 외 방계 자손은 견제당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시진핑 시대의 민족정책은 결국 소수민족의 찬밥신세, 소외상태를 심화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론 중국 내 불안은 물론 주변국과의 마찰 가중을 예고하고 있다.

김청중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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