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갑작스러운 기억상실, 사람의 자유의지 빼앗는 GHB의 위험성

PD수첩팀 pdnote@mbc.co.kr 2022. 8. 16. 22: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성폭행 피의자 태국인 부호 차바노스 라타쿨이 무고 증거로 내세운 CCTV 영상, 피해자는 기억이 '블랙아웃'(단기 기억상실)돼 영상 속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 <버닝썬 게이트> 이후 대대적으로 마약사범을 검거한 경찰, GHB는 아직도 손쉽게 유통되고 있다 - 최대 24시간 이내 몸에서 배출되는 GHB, 24년 동안 증거물로 검출된 건 단 한 건뿐

16일 밤 PD수첩 < 기억의 살인자, GHB >에서는 버닝썬 게이트 이후 널리 알려진 GHB, 일명 ‘물뽕’이라고도 불리는 마약에 대해 취재했다. 1998년 당시 물에 탄 필로폰이라고 생각해 ‘물뽕’으로 처음 알려진 GHB는 무색무취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감남 일대 클럽에선 오래전부터 유명했다는 GHB. 3년 전 지인 소개로 한 클럽에서 한 태국 남성과 술을 마셨던 이민정(가명) 씨는 본인이 겪었던 끔찍했던 상황을 고백했다.

2018년 12월 새벽에 사람들과 찾은 클럽 버닝썬. 평소 주량에 미치지 않았는데도 이민정(가명) 씨는 태국 남자가 건넨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깨어난 곳은 한 호텔 방 안. 그곳에서 그녀는 태국 남자에게 힘으로 제압되어 성폭행당했다. 이씨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며 태국 남자에게 보내달라고 빌었고, 그는 자신과 웃으며 사진을 찍을 걸 요구했다고 말했다. 사진 속 남자는 태국에서 <하이소밥>으로 통하는 차바노스 라타쿨. <하이소밥>은 상류층을 뜻하는 하이소사이어티에 “밥”이란 별칭을 붙은 것으로, 그는 젊은 부호이면서 유력 정치인 집안 출신이었다. 사건 당일 이씨는 라타쿨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 조사를 받은 라타쿨은 다음 날 본국으로 떠났다. 3개월 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무고를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증거는 사건 당시의 호텔 CCTV였다. CCTV 영상에는 두 사람이 멀쩡히 걸어서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촬영돼 있었다. 영상을 확인한 이씨는 “내가 미친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기억이) 통으로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경찰은 CCTV의 모습 등을 보고서 두 명이 합의한 성관계로 판단했고 라타쿨은 자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독성학과장은 피해 여성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약물로 GHB를 꼽았다.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고 하잖아요? GHB는 소량으로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은 라타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다. PD수첩은 해당 경찰서에 사건 당시 가해자가 소지한 불법 촬영물을 확보했음에도 합의한 성관계로 판단한 이유를 물었다. 경찰은 피의자가 소재불명으로 기소 중지된 상태이고 수사 결과에 의한 판단이 종결되지 않았다며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면 여러 진술과 촬영물을 증거로 종합 검토해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GHB의 정식 명칭은 감마 하이드록시 부티르산, 향정신성의약품 마약류로 우리나라에서 속칭 ‘물뽕’으로 통한다. PD수첩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물, 맥주, 위스키 3종에 GHB를 넣어 변화를 관찰했지만, 육안으로는 차이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무색무취의 GHB를 마셨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독일 갈릴레오 TV의 클레어 웰커 기자가 실험에 나섰다. 전문가 입회하에 직접 GHB를 마신 클레어 기자는 술에 취한 듯 의미 없는 말을 시작했다. 스텝이 사전에 얘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이름을 적어보라고 요구하자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이름을 적었다. 이후 약에서 깨어난 클레어 기자는 GHB를 마신 이후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며 당시 독일 당국과 국민에게 해당 약물의 위험성을 알렸다.

2010년 유엔 국제마약 감시기구(INCB)는 강간 약물 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대표적인 주의 약물 중 하나인 GHB는 대한민국에서 2018년 <버닝썬 게이트> 이후, 클럽과 유흥업계 쪽에 퍼져있다는 소문이 사실화됐다. 클럽 버닝썬의 비밀을 처음 밝힌 김상교 씨. 그는 2018년 11월 버닝썬 영업이사 장씨에게 끌려 나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본인이 경찰에 체포돼 지구대로 끌려왔다. 그는 자신이 폭행당했던 클럽에서 사람들이 마약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듣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이 겪은 사건을 인터넷에 알렸고 SNS로 수만 통의 제보, DM(메시지)이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여자들한테 물뽕을 타고 마약으로 클럽 영업과 접대를 했다”라며 당시 받았던 제보들을 설명했다. 접대 대상은 대부분 VIP 고객. 당시 버닝썬 사건을 취재한 이문현 기자는 클럽 MD들이 GHB의 효능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CCTV가 있는 장소를 애용했다고 했어요. GHB를 투여한 여성은 자기 발로 숙박업소에 들어가 직접 문을 엽니다. CCTV에 그 장면이 고스란히 담기면 경찰의 수사를 받을 때, 경찰은 남성에게 불기소 의견을“ 적용한다는 것.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이 많아도 물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결과 버닝썬 대표가 클럽의 영업 담당 MD와 함께 GHB를 투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경찰은 버닝썬 클럽을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클럽 안에서 벌어진 GHB 성범죄의 실체는 밝히지 못했다. 한 유흥업소종사자는 <버닝썬 게이트> 이후로도 달라진 건 없다고 밝혔다. “(지금도) 암암리에 퍼져있어요. 업소마다 돌아다니면서 (마약을) 파는 아저씨가 있어요” 대놓고 GHB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바로 SNS. 한 대화방에서는 GHB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버닝썬 게이트 이후 경찰은 성범죄 관련 수사지침 내용에 GHB 증상을 새로 추가했다. ‘주변 사람과 정상적으로 대화하거나 질문에 대답하다가 잠들며 깨어나면 대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타인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종속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GHB 특성을 잘 알고 수사 과정에서 대처하라는 내용이었다.

2020년 7월 호프집 화장실에서 1시간 동안 버텨야 했던 김지현(가명) 씨.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녀가 요구한 건 남자 친구 백(가명)씨를 쫓아 달라는 것. 한때 연인이었던 두 명의 관계는 김씨 생일 이후 모든 게 변했다. 사건 당일 정신을 잃은 김씨의 몸을 백씨가 몰래 촬영했다는 것. 당시에는 사실을 몰랐던 김씨가 이후 백씨의 휴대전화에서 사진과 영상을 발견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김씨는 전 남자 친구가 생일날 와인 속에 약물을 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영상 속 피해자의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조사할 당시 백씨는 피해자에게 약물을 먹이지 않았고 동영상도 피해자가 원해서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PD수첩은 그와 연락해 입장을 들어봤다. 그는 “김지현(가명) 씨가 모두 동의했다”며 전 여자 친구인 김씨가 하는 주장은 모두 위증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당일 백씨는 피해자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한 뒤, 피해자의 SNS를 이용해 자신에게 영상을 전송했다. 이후 그는 영상을 보냈던 SNS 흔적을 모두 지우고 자신의 휴대폰에 영상을 저장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전송 및 저장한 백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영상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D수첩은 해당 경찰서에 약물 이용 가능성을 배제하고 불법 촬영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이유를 물었다. 사건 수사담당자는 “특정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라 말하기 곤란하다”라고 답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수사지침서에 들어갔다고 GHB 이용 성범죄나 관련 범죄들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직 입법부와 수사 기관, 사법부도 GHB 등 성폭력 목적인 약물에 대해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GHB가 등장한 이후 24년 동안 성범죄 사건에서 GHB가 증거물로 검출된 것은 단 1건. 바로 한 약사가 GHB 원료인 GBL을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해당 약물은 12시간에서 최대 24시간 안에 몸 밖으로 배출되는 특성상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약사는 재판 결과 징역 4년을 받았다. 장형윤 해바라기센터 소장은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건이 벌어진 경우,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를 통해 약물 여부를 확인한다고 설명한다. “필름이 끊긴 듯 ‘블랙아웃’된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라는 가능성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신고 및 검사를 진행하는 게 피해자 입장에서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GHB는 환각이나 기억상실에서 끝나지 않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GHB는 약 28,800g. 2020년에 비해서 61배 급증했다. 적발되지 못한 GHB도 그만큼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성범죄에 대한 약물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성범죄의 이용되는 약물 통계를 구축해 관련 약물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처벌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PD수첩팀 기자 (pdnot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98758_35673.html

[저작권자(c) MBC (https://imnews.imbc.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