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하러 가는 마음이 내 에너지..도전하는 재미에 못할 일 없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차준철 논설위원 입력 2022. 8. 16. 22:37 수정 2022. 8. 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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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신동' 서채현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채현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실내 암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암벽 등반이 스스로 길을 찾아 완등에 도전하는 일이라 늘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2003년생. 스포츠 클라이밍(인공암벽등반) 국가대표다. 올해 서울 신정여고를 졸업했다. ‘암벽 신동’ 혹은 ‘암벽 천재’로 불린다. 다섯 살에 암벽을 타기 시작했고 열두 살 때부터 전문 훈련을 받았다. 리드·볼더링·스피드 등 3개 세부 종목 중 리드가 주종목이다. 국제 성인 무대에 처음 출전한 2019년 7차 월드컵 대회에서 리드 부문 2위로 혜성처럼 등장한 뒤 8~11차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하며 그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도쿄 올림픽에서는 예선 2위로 결선에 올랐으나 간발의 차로 최종 8위에 그쳤다. 이후 9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리드 금메달을 땄다. 지난달 프랑스 브리앙송에서 열린 올 시즌 4번째 리드 월드컵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지문은 보일락 말락하고
손마디는 굵고 굳은살 박혀 딱딱
가늘고 부드러운 손은 기억에 없고
남들과 다른 손이 어색한 적 없어
어려서부터 늘 이런 손이었으니

가뿐하게 폴짝. 형형색색 ‘홀드’가 가득한 실내 인공암장 벽면을 올라간 그는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뻗어 홀드를 바꿔 잡으며 위로, 옆으로 재빠르게 옮겨다녔다. 한 팔과 한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흔들흔들 움직이기도 했다. 손끝으로 잡고 발끝으로 디딜 곳만 있으면 어디든 매달리고 이동했다. ‘거미 인간’이라는 별명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그는 “10분쯤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라고 말했다.

서채현의 손.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그의 손을 봤다. 지문은 보일락 말락, 손마디는 두툼하게 굵고 온통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손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과 달라 보이는 손이 어색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늘 이런 손이었으니까.

서채현(19)은 그 손으로 세계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를 지낸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산과 암벽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그는 어느새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 대열에 섰다. 16세 때인 2019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대회에 데뷔하자마자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해 도쿄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와 올해 월드컵 대회들을 치르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당연히,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 올림픽의 기대주로 꼽힌다.

쉽지 않아 보이는 암벽 등반의 매력과 묘미는 무엇일까. 좋아하고 즐기면 누구라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선유로에 있는 실내 암장 ‘서종국 클라이밍’에서 그를 만나 암벽에 오르는 이유를 들었다. 아버지 서종국씨(49)가 운영하는 곳이라 집 같은 장소였다.

지난달 23일 프랑스 브리앙송 리드 월드컵에서 2위를 한 서채현(왼쪽)이 1위 얀야 가른브레트(가운데)와 함께 시상대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제공

- 최근에 끝난 브리앙송 월드컵에서 리드 2위를 했다.

“올 시즌 4번째로 리드 종목에 출전한 월드컵 대회였다. 6월 첫 대회 때 2위를 한 뒤 6위, 3위를 거쳐 은메달을 딴 것이다. 성적이 오르는 페이스라 만족한다.”

- 이후 대회 출전 일정은.

“이달 말 유럽으로 출국해 9월 초 크로아티아, 영국 대회에 나간다. 9월 말, 10월 초에는 인도네시아, 일본 대회가 있다.”

- 두 대회를 치르고 한국에 왔다 가는 일정이다. 한국에서 훈련은 어떻게 하나.

“이틀 훈련하고 하루 쉰다. 훈련 날에는 낮 12시쯤부터 3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이후 밤 9시까지 암벽에서 실전 연습한다.”

- 하루에 6시간씩 훈련하면 힘들겠다. 쉬는 날에는 무얼 하나.

“주로 여기 와서 친구나 후배들과 이야기하며 논다. (암벽에) 안 매달리는 게 운동하는 날과 다른 점이다.”

- 스포츠 클라이밍 세부 종목들을 쉽게 소개한다면.

“리드는 15m 벽을 제한시간(6분) 안에 가장 높이 올라가는 선수가 이기는 것이다. 볼더링은 여러 개의 등반 과제를 가장 적은 시도로 완등하는 것을 겨루는 종목이다. 스피드는 10m 벽을 가장 빨리 올라가는 것을 경쟁한다.”

- 그중 주종목은.

“리드가 가장 잘하는 종목이다. 볼더링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중이다. 스피드는 잘 못한다.”

- 처음 보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나.

“리드는 잘하는 선수가 나중에 나오는 게 흥미진진하다. 뒤에 나오는 선수가 앞 선수 기록을 추월해 더 높이 올라간다. 볼더링은 어려운 문제 풀이 같고 다이내믹한 동작이 많이 나와 재미있다.”

- 볼더링 성적은 어떤가.

“4~6월에 5차례 월드컵이 열려 올 시즌 대회는 끝났다. 11위, 25위, 5위, 14위, 5위를 했다. 5월 서울 대회 때 25등으로 떨어졌다가 마지막 5차 인스브루크 대회에서 5위로 올렸다. 리드 때는 외국 선수들이 내게 루트 질문하러 몰리는데 볼더링 때는 아무도 안 오고 본체만체한다. 하하.”

서채현은 지난해 올림픽에 처음 나가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도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에 출전한 것이다. 3개 세부 종목 순위를 합산해 메달을 가리는 방식이라 스피드가 약한 그는 불리했는데 예선을 2위로 통과했다. 그러나 8명이 겨룬 결선에서 리드 1위를 아깝게 놓쳐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최종 8위에 머물렀다.

- 올림픽은 여느 세계 대회와 달랐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가니까 특별한 자리인 게 계속 느껴졌다. 평소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예선 때부터 부담이 있었다. 결선에만 오르면 즐기자고 했었는데 올라가니 메달 욕심도 생겼다. 그걸 의식해서 막판에 급하게 경기하는 바람에 메달을 놓쳤다.”

- 올림픽을 경험하고 배운 점은.

“그때 이후로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갔을 때 하나도 긴장하지 않은 게 달라진 점이다. 두 달 후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걸고 싶다는 목표가 새로 생긴 것도 좋은 일이다.”

다섯 살에 실내 암벽을 오르는 서채현. 올댓스포츠 제공
다섯 살 때부터 실내 암벽 시작
주말마다 부모 따라 산에 가
실내 암벽보다 바위 등반이 좋아
여덟 살 때 첫 대회 나가 꼴찌
재미있어 계속하니 실력 확 늘어

태권도복을 입은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서채현은 팔씨름이 무척 강했다. 고학년 남학생들도 못 당할 정도였다. 야무진 표정으로 여기저기 암벽과 산을 오르는 모습도 신기했다. 8년 전 어느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거미 소녀’로 소개된 장면이었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를 지낸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외동딸 서채현은 어려서부터 산과 암벽이 친숙했다. 집 가까이 있는 실내 암장에서 암벽을 타며 놀았고, 가족 여행 가는 곳은 설악산, 북한산, 선운산 등 전국 각지 명산의 등반 코스였다.

- 부모님에게서 소질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나.

“다섯 살 때부터 실내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에 주말마다 산에 가시는 부모님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바위를 타는 게 더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었으면 안 했을 것이다. 어릴 때는 클라이밍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못 들어봤다. 성격은 잘 모르겠고, 체격은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기는 하다.”

열 살 때 선운산을 등반하는 서채현. 올댓스포츠 제공

- 언제부터 선수가 되려고 마음먹었나.

“여덟 살 때 대회에 처음 나갔는데 꼴찌를 했다. 그런데도 재미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대회에 나가다보니까 선수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는데 점점 자신감이 붙고 안 무섭다고 느껴지면서 중학생 때 실력이 확 늘었다.”

- 실내 암벽보다 자연의 바위 등반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정해놓은 난이도나 규칙 없이 내가 찾아서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라 바위 등반이 더 좋고 재미있다. 나는 ‘바위 하러 간다’고 말한다. 바위 하러 가는 게 제일 좋다.”

어린시절의 서채현. 올댓스포츠 제공
평소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도쿄 올림픽선 예선부터 부담
결선 막판 급하게 하다 메달 놓쳐
이후로 하나도 긴장을 안 하니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서 좋은 성적

- 대회에 나가 암벽에 오를 때 무슨 생각을 하나.

“아무 생각 안 한다. 굳이 생각 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이 안 들 때 등반이 가장 잘된다. 과제를 풀어야 하는 볼더링 종목에서도 미리 플로어에서 작전을 다 생각해놓고 올라가야 경기가 잘 풀린다.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볼더링 종목 때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완등하고 나서 딱 긴장이 풀렸을 때 밑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확 나오면 그게 엄청 짜릿하다. 그때 완등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 완등을 할 때도, 못할 때도 있을 텐데.

“완등을 못했어도 힘을 다 쓰고 떨어진 것이라면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수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 자리를 계속 바라보면서 기운 빠져 내려온다.”

- 등수나 메달에 대한 생각은.

“항상 1등을 하고 싶기는 한데, 실수 없이 끝낸 대회라면 그 성적에 만족하고 다음 대회를 잘 준비해보자는 생각을 한다. 지난 6월 스위스 빌라르 월드컵 때 뛸 수 있는 곳에서 떨어져서 6위에 그쳤는데 그때는 많이 아쉬웠다.”

-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가졌으니 늘 1등을 바라보는 건가.

“볼더링은 올해 처음 시즌 전체를 뛰어본 것이라 결선 진출을 목표로 삼았는데 두 번이나 올라가서 만족한다. 리드는 올해 지금까지 4차례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 시즌 랭킹 1위가 올해 목표였는데 어렵게 됐다. 남은 시즌 우승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채현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실내 암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암벽 등반이 스스로 길을 찾아 완등에 도전하는 일이라 늘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라이벌 안야 이기는 게 목표
그녀가 있어 동기부여가 된다
올해 남은 대회서 꼭 잡을 것
은퇴 후 가족과 세계 여행하며
각지의 암벽 최대한 등반이 꿈

여기서 서채현은 라이벌을 말했다. 슬로베니아의 얀야 가른베르트(23)다. 도쿄 올림픽과 올 시즌 4차례 리드 월드컵의 1위가 모두 그의 차지였다. 볼더링 최강자인 얀야는 올 시즌에 볼더링 월드컵에는 아예 안 나가고 리드 월드컵에 전념하고 있다. 리드에 집중하면서 등반 스타일을 새롭게 바꿨는데 이전의 실수를 없앤 채 독주하는 중이다. 서채현은 올해 안에 얀야와 다시 정면승부를 펼쳐 이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서채현은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나 올림픽 출전이 아닌, 3년 전 얀야를 이겼던 경기를 자신의 베스트로 꼽고 있기도 하다.

-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9년 7월 브리앙송 월드컵 결선이다. 준결승에서 나만 완등하고 결선에 올랐다. 거기서 그해 처음 얀야와 정면 승부를 해서 이기고 1등을 했다. 마지막 동작에서 뛰면서 ‘톱’을 잡아 완등에 성공해 이겼다. 그 일주일 전 샤모니 대회에서도 1등을 했는데 그때는 얀야가 실수를 해서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 올해 남은 대회에서 얀야를 이기는 게 새 목표라고 했다.

“내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올해는 처음 볼더링 시즌을 마치자마자 리드로 전환하면서 체력이 달려 실수를 많이 했다. 올 시즌에는 계속 눈앞에서 얀야를 놓친 느낌이다. 예전에 몇 번 이긴 적이 있어 올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슬로베니아나 영국 대회 때 꼭 이기겠다.”

- 그를 이길 수 있는 서채현의 장점은.

“아무리 안 되는 동작이 있어도 한 시간이 걸리든 하루가 걸리든 그걸 못 풀면 안 넘어간다.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 라이벌의 존재를 어떻게 보나.

“좋은 일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할 동기부여가 된다.”

패기 넘치는 서채현의 도전은 진행형이다. 얀야를 이기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메달을 겨냥하는 것은 우선 과제다. 지금껏 월드컵 금메달 4개를 땄는데, 롤모델로 여기는 선배 김자인(34)의 30개도 넘기고 싶다. 그보다 더 중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끝까지 즐겁게, 한 번도 지치지 않고 클라이밍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수를 마치고서도 가족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마음껏 등반하고 싶다고도 했다. 여성 클라이머로 세계 각지의 어려운 루트를 가진 자연 암벽을 최대한 많이 등반하는 게 꿈이다.

서채현의 에너지는 ‘바위 하러 가는 마음’에서 나온다. 힘들고 어려워도 즐겁게 도전하는 재미가 훨씬 앞서니 못할 일이 없다. 최선으로 최고를 꿈꾸는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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