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 취임 100일, 윤 대통령의 두 갈래 길

양권모 편집인 입력 2022. 8. 16. 21:00 수정 2022. 8. 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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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야권 일각에서 탄핵을 거론하는 것보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개고기’에 빗댄 만큼 윤석열 정권 출범 100일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20%대 지지율은 ‘내부 총질’로 쫓겨난 여당 대표가 다시 대통령을 향해 총질을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레임덕 수준의 지지율이 고착되면, 관료사회는 더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국정운영의 동력은 갈수록 소진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백일도 지나지 않아 심대한 지도력 위기에 봉착했다. 이준석 대표가 호명한 ‘윤핵관’과 더불어 ‘양두구육’은 아마도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통치자들의 ‘자격없음’을 조롱하는 언어로 남을 것이다.

양권모 편집인

윤석열 정부의 초반 고전과 혼돈은 어쩌면 예견된 바다. 0.73%포인트 차이의 승리와 거대 야당 등 척박한 집권 환경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모두 집권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집권 세력은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입각해 뭉쳐진 게 아니다. 단순히 ‘반문재인 동맹’에 가깝다. 윤 대통령부터 민주당의 재집권을 막겠다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었다. 시대정신과 비전, 정책 같은 건 애초 고민해 본 적도 없을 터이다. 그러니 출범 100일이 되도록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적 의제가 무엇인지, 국정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그나마 새 정부의 기치로 내세웠던 ‘공정’은 연이은 인사 실패와 권력 사유화 논란이 거듭되면서 형해화되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구현한 인사나 정책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공정의 깃발마저 퇴색하자 ‘윤석열 정부는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라는 의문만 펄럭인다.

대선 직전,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석열을 찍겠다고 한 사람들 중 7할이 “정권교체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서’는 4%에 불과했다.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 부족에도 불구, 정권교체의 바람을 타고 당선된 ‘어쩌다 대통령’은 스스로 부족한 부문을 보완할 인물을 기용하고, 포용과 통합의 진용을 꾸려야 했는데 거꾸로 갔다. 윤 대통령과 검찰, 윤핵관, 김건희 여사의 사적 네트워크 중심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구축했다. 그러니 민생과 경제를 다루는 데 있어 무능함이 도드라지고, 52시간제와 5세 취학 등 치명적인 정책 혼선이 반복되는 것이다. 급기야 수도권 물난리 재난 대응을 보면서 시민들이 ‘무정부 상태’를 떠올리는 지경에 처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정수행 부정평가가 70%에 달한다. 부정평가 이유는 인사, 능력 부족, 독단으로 요약된다. 근본적으로 윤 대통령 본인의 문제다.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극복되겠지만, 우선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변화와 쇄신 의지를 보일 수 있는 게 인사다. 검찰과 지인, 측근 중심으로 구성된 ‘끼리끼리’ 대통령실과 내각으로는 지금의 복합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각계의 경륜 있고 유능한 인물로 윤석열 정부를 재구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주권자의 궤도 수정 요구에 역진할 태세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인적 쇄신이나 국정 전환의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취임사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를 33번이나 외친 8·15 경축사는 흔들림 없이 ‘이대로 쭉’ 가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정치적 득실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윤 대통령)라고 하는 걸 보면 과감한 인적 쇄신도 물 건너갔다. 겨우 정책과 홍보, 정무 기능 보강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지지율 폭락의 이유를 홍보와 기획 부족에서 찾는 건 도단이다.

분명 윤 대통령과 검찰공화국의 ‘핵관’들은 지지율 위기의 출구를 다른 데서 찾고 있을 것이다. 지난 정부와 ‘이재명의 민주당’, 나아가 진보 진영 전체와의 대결을 펼쳐 보수층 재결집을 도모하려는 길이다. 정책은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것을 뒤집는데 집중하고, 경찰·검찰·감사원·국정원 등 권력기구를 총동원해 ‘신적폐 청산’의 칼춤을 추면 된다는 생각이다. 경찰국 설치, 검수완박 무력화 조치로 사정(司正) 정지작업도 끝냈다. ‘칼잡이’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 정부와 야당의 잘못과 비리를 아무리 들춰내고 파헤쳐도 현 정부가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순 없다. 전면적 국정 전환을 회피하고, 위기를 ‘사정 정국’으로 돌파하려는 자체가 진짜 망하는 길이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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