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고명섭 2022. 8. 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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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카이로스][고명섭의 카이로스]

특권층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최대한 평등에 가까운 나라를 세울 길을 찾는 것이 이 사상가들의 목표였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1) 부분. 이상주의자 플라톤의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땅을 가리킨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테네 민주주의 전성기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첫해(기원전 431년) 전몰장병들을 추도하는 장례식 연설에서 조국 아테네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의 정체는 이웃 나라들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남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통치하기에 우리 정체를 민주정이라고 부릅니다. 시민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합니다.”

페리클레스는 그 연설에서 아테네의 토론 문화도 찬양했다. “행동을 막는 가장 큰 장애는 토론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심사숙고를 꺼리고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용맹해지지만, 우리 아테네인들은 행동에 앞서 또 행동하는 중에도 사고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습니다.” 아테네의 훌륭한 면모를 열거한 뒤 페리클레스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아테네는 헬라스(그리스)의 학교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장례식 분위기에 맞춘 것이었기에 수사학적 화장이 짙었다. 실상을 보면, 아테네인들은 적국과 전쟁하는 중에도 당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분열은 아테네 전력까지 갉아먹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 뒤편에는 파당의 이기주의로 물든 자멸적인 내부 투쟁이 있었다. 이 연설 뒤 페리클레스는 전염병으로 죽고 아테네는 긴 전쟁 끝에 스파르타에 굴복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쇠퇴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헬라스의 학교’가 무너져가던 시기에 진짜 학교가 아테네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채 안 돼 플라톤이 아카데미아 숲에 철학 학교를 세웠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이온에 학교를 세웠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학교가 뒤를 이었다. 아테네의 학교는 수백년 동안 헬라스 전역, 나아가 지중해 전역의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 최초의 철학 학교에서 플라톤이 가르친 것 가운데 하나가 정치사상이다. 정치는 언제나 플라톤의 관심사 한가운데 있었다. 플라톤은 말년에 쓴 편지에서 정치가가 되는 것이 젊은 날 꿈이었지만 아테네를 휩쓴 혼란을 보고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스파르타의 지배 아래 들어선 ‘30인 과두정’이 저지른 끔찍한 폭정은 ‘이전의 정치체제가 황금으로 보이게’ 했다. 그 폭정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민주정은 또 다른 광포함을 드러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것도 이때였다. 이 경험이 플라톤을 현실 너머의 정치체제를 구상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그 구상이 집대성된 것이 <국가>다.

플라톤은 올바른 통치 형태를 현실에서 구할 수 없으니, 우리의 이성적 사유를 끝까지 밀고 가 ‘가장 아름다운 이상’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상에 따라 통치를 하려면 이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철인(philosophos), 곧 ‘지혜의 친구’였다. 이성의 힘으로 ‘최선의 이데아’를 체득한 철인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플라톤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시민을 세 계급으로 나누었다. 재화를 산출하는 생산 계급, 국방을 담당하는 전사 계급, 국정을 책임지는 통치 계급이었다. 기억할 것은 이 계급이 ‘카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계급은 개별 인간들의 적성에 맞게 배분된 것이지, 혈통이나 빈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플라톤의 급진주의는 전사와 통치자로 이루어진 수호자 계급에 요구한 혹독한 삶에서 드러난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혼란이 빈부 사이 화해할 길 없는 대립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처방전으로 일종의 공산주의를 제시했다. 수호자 계급은 돈이든 집이든 아무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 사유재산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다. 플라톤이 더 부정적으로 본 것은 가족제도였다. 가족이야말로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갉아먹는 이기심의 원천이다. 수호자 계급은 가정을 둘 수 없고 공동 막사에 살면서 자식을 공동으로 양육해야 한다. 수호자들에게는 공동체의 선을 증진해야 한다는 의무 말고 어떤 특권도 없었다. 플라톤이 요구한 수호자들의 삶은 출가 수도승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국가>가 묘사한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는 수호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나라였다.

플라톤은 자신이 신봉한 이성의 명령에 따라 이런 나라를 구상했다. 그러나 이 ‘이성의 나라’는 현실로 구현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리하여 만년의 플라톤은 ‘지상의 나라’를 다시 설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 설계도가 담긴 저작이 <법률>이다. <국가>에서 그린 나라는 순수이성이 다스리는 나라이기에 법률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이성이 곧 최선의 법이었다. 그러나 그런 순수이성을 현실에서 만날 수는 없다. 불완전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지상의 나라를 꾸려가자면 법률을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다. “사람은 법률을 제정해 법률에 따라 사는 게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가장 사나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다.”(<법률>) 좋은 법률을 만들어 통치자부터 생산자까지 모두 복종할 때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보편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플라톤 말년의 ‘법치국가’는 중년의 ‘이성국가’와는 사뭇 다른 나라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은 <국가>와 <법률> 사이에 굵은 단절선이 있다.

정치사상의 이런 내적 단절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발견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가르는 단절선은 <정치학> 내부의 ‘이상국가’와 ‘현실국가’ 사이에 있다. 전체 8권으로 이루어진 <정치학>은 서론(1권)을 빼면, 이상국가를 구상하는 부분(2권-3권-7권-8권)과 현실국가를 소묘하는 부분(4권-5권-6권)으로 나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사상에 이런 균열이 생긴 것은 이 저작이 15년이 넘는 긴 시간에 걸쳐 집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학교를 떠나 그리스 정치의 소용돌이를 통과했고 아테네에 돌아와 자신의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 도시국가 158곳의 헌법을 수집해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과 연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바꾸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유사한 방식으로 ‘최선의 국가’를 구상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현실의 국가들을 살펴 ‘차선의 국가’를 그려내는 일로 눈을 돌렸다. <정치학>의 ‘현실국가’ 편은 현실의 체제를 ‘과두정’(oligarchia)과 민주정(demokratia)으로 나누고, 이 두 정체가 섞인 ‘혼합정체’에서 실현 가능한 가장 좋은 정치체제를 찾아낸다. 또 그 혼합정체를 떠받치는 세력으로 넓게 포진한 중간계급에 주목한다. 이 중간계급이 가운데 서서 과두정의 극단도 민주정의 극단도 거부하는 균형 잡힌 정체를 이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때의 혼합정도 법률이 최고권을 쥐고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 구상은 근대 정치사상으로 이어졌다.

그 사상의 연속선상에 있는 사람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다. 사상의 단절은 마키아벨리에게도 있다. 마키아벨리 단절선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가른다. 표면의 주장만 보면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저작처럼 보인다. <군주론>은 군주라는 특권적 개인에게 국가를 창건하는 길을 가르쳐주는 책이고, <로마사 논고>는 그런 특권적 개인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중심이 돼 자유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방안을 얘기하는 책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가 주변 강국들의 위협에 시달리던 분열된 나라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마키아벨리 심중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일인자를 통해 이탈리아 통일을 이루어낸 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공화국을 창출하는 것이 현실적인 길이라고 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눈이 향하는 곳은 공화주의 나라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마키아벨리도 모두 정치사상 연구에 난제를 던지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사상 내부에 균열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사상가들이 어떤 사상을 표명했든 그들의 꿈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있었다. 특권층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최대한 평등에 가까운 나라를 세울 길을 찾는 것이 이 사상가들의 목표였다. 우리는 어떤가? 법률이 모든 사람을 균일하게 다스리는 나라에 살고 있는가? 통치자의 행위가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증진하는 데 이바지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가?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 시기, 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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