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칼럼] 노동시간, 최저임금, 중대재해처벌법의 불안한 미래

한겨레 2022. 8. 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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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협력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신념이 바뀌면 그냥 포기할 뿐이었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협력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일을 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요직을 맡겼다. 걱정스럽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월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80년대 초반 같이 활동하던 동료들로부터 ‘프락치’(fraktsiya, 밀고자)일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하종강이 프락치라는 소문이 있는데 근거가 있는 얘기냐?”고 묻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후배가 일러줘 알게 됐다. 엄혹하던 80년대 초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비합법 운동조직에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내부 투쟁’이 일상적이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 일을 치열하게 수행하는 것이 성실한 활동가의 덕목이었다. 한번은 학습 모임에서 내가 발제하던 중에 당시 심각한 갈등을 빚던 동료 활동가가 음료수를 갖다줬는데 ‘혹시 설사약이나 수면제를 탄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어 선뜻 마시지 못한 적도 있다. 나도 가끔 설사약이나 수면제를 먹이고 싶은 상대가 있었으니까….

“하종강이 프락치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나를 조직에서 배제하고 싶었던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었다. 자취방으로 찾아온 후배들은 “총력을 동원해 전면전으로 대응하자”고 했지만, 말렸다. “내가 절대로 프락치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이 바닥에서 오래 활동하면 언젠가 이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다. 앞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서 오해를 풀지 못한다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니 그 또한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후배들을 설득했다. 그 뒤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오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를 모함했던 동료는 일찍이 노동운동을 떠나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내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됐다.

그러한 북새통을 10여년 겪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 돼 비합법 ‘조직사업’을 포기하고 노동상담과 교육이라는 공개운동 부문으로 나왔다. 그 뒤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직책은 철저히 마다했고 “너무 편한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는 동료들에게 “상담과 교육을 선택했다는 것은 운동의 중심에 절대로 서지 않겠다는 뜻이다”라며 이해를 구했다. 그 뒤로 나는 시골 농공단지의 허름한 비닐하우스 공장에 있는 작은 노동조합의 활동가라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포기한 일을 계속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철학이 바뀌어서 노동운동을 떠난 사람들보다 동료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기지 못해서 떠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처음 노동운동에 발을 딛는 후배들에게 “언젠가 동료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될 텐데 그때 꼭 이겨내야 오래 활동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나를 모함했던 친구나 나는 그냥 조직 노동운동을 포기하고 떠났을 뿐이다. 우리의 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협력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신념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냥 포기할 뿐이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협력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일을 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요직을 맡겼다. 걱정스럽다.

윤석열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방향은 잡혔다. 전체적인 기조는 일찍이 윤 대통령이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했던 발언들을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정치인 경험이 일천했던 시절에 한 발언들이어서 이후 정치적 경험과 수업을 쌓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되거나 다듬어지기를 바랐으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대한 대응 등을 들여다보면 윤 대통령이 정치 신인 시절에 가졌던 노동정책에 대한 방향과 의지가 바뀌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는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는 주장이 관철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간 규제 완화 △임금체계 개편 △자율 중심 안전관리체계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환경을 강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기업의 단기적 이윤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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