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밑줄 긋기] 문학은 허구와 유머..이슬람 비난은 루슈디에 대한 오해

김유태 2022. 8. 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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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전 출간 소설 '악마의 시' 읽어보니
최근 피격당한 인도 대문호
예언자 마훈드 묘사부터
다신교 세 여신 승인 등으로
이슬람권으로부터 공격당해
2001년 책 번역한 김진준
"반대파 논리대로라면
추리소설 살인도 금지해야
꼼꼼히 읽으면 오해 풀릴 것"
지난 11일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 [로이터 = 연합뉴스]
'악마의 시' 출간 직후 이란 종교계로부터 파트와(fatwa), 즉 사형을 선고받았던 살만 루슈디가 최근 미국 뉴욕에서 괴한에게 피습되자 34년 전인 1988년 발표된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되고 있다. 논란이 되자 책이 국내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다시 올랐고, 출판사 문학세계사는 창고에 쌓였던 수백 권 재고를 며칠 만에 소진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연내 동명의 개정판을 출간한다.

문학의 길과 종교의 길이 교차하면서 빚어진 21세기 참극에 세계인이 분노하고 경악하는 가운데 논란이 된 '악마의 시'를 다시 펼쳐 밑줄을 그어봤다.

2001년 한국에 상·하 2권으로 출간된 장편소설 '악마의 시' 줄거리는 이렇다. 인도 영화계 슈퍼스타 지브릴 파르슈타와 친영파(親英派) 성우 살라딘 참차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점보 제트기 AI420편의 폭발로 공중에서 추락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두 생존자 중 지브릴은 후광(halo)을 가진 천사로, 살라딘은 뿔이 난 악마로 변해간다. 소설은 마술적 사실주의란 기법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횡설수설하는 블랙코미디처럼 읽히는 '악마의 시'는 문명, 국가, 종교, 인종을 전부 비틀고 꼬으면서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질문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의미가 가득한데 이슬람교 신성 모독 논란이 일어난 부분은 소설 초반부에 집중돼 있다.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2장 지브릴의 꿈에 나오는 예언자 마훈드(Mahound)를 둘러싼 부분이 그렇다. 마훈드는 실제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연상시킨다.

소설엔 대공 아브 심벨이 마훈드에게 이교의 세 여신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아브 심벨)는 알라께서 라트와 우자와 마나트를 승인해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158쪽) 마훈드가 알라신만 고집하지 않고 자힐리아 사람들이 믿던 세 여신을 승인하면 공식 종교로 인정해주겠다는 게 아브 심벨의 주장이다. 이 경우 종교는 유일신교가 아닌 다신교가 된다. 마훈드는 소설에서 유혹을 느끼는 것으로 비치지만 결국 이를 악마의 계시라고 보고 철회하는데, 이후 박해가 시작된다.

민간 전설로도 알려진 이 부분은 실제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서도 복잡한 논쟁이었다. 루슈디가 이를 몽땅 소설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무슬림 반발에 영향을 간접적으로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세와 내세는 오직 하나님(알라)에게만 속하는 것이니라'라는 코란 제53장 '알-나즘'의 26절을 정면으로 반박해서다.

무함마드의 아내들을 마치 매춘부처럼 묘사했다는 오해도 '악마의 시'와 관련해 큰 논란이 됐다. 무함마드는 50세에 사별한 뒤 12명의 아내를 뒀다. 소설에서 자힐리아의 매춘부들은 당대 부패상의 유곽에서 마훈드의 아내 12명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의 아내 12명은 이슬람교 모든 신도의 어머니로 통하기에 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이슬람권의 반발 이면에서 작가의 신성 모독이 오해라는 지적은 34년간 이 책을 둘러싸고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문명과 종교를 비판한 루슈디는 옹호돼 왔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악마의 시'를 둘러싼 이슬람권 반발에 대해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적었고, 이슬람권 지식인들은 1993년 '루슈디를 위하여'를 출간하며 그를 적극 구명하기도 했다.

'악마의 시'를 21년 전 번역해 한국에 알린 김진준 번역가는 16일 통화에서 "쿤데라의 말처럼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추리소설의 살인도 금지돼야 한다. 누군가는 살인으로 가족을 잃었는데 금지와 허락, 그걸 누가 판단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소설은 발표되기가 무섭게 금서로 지정돼 수입·유통·출판이 금지됐다. 이슬람권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라며 "그런 상황에서 왜 반발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대강의 줄거리만 파악했다는 얘기다. 책을 꼼꼼히 읽어봤다면 대부분 오해는 풀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신성성의 갈림길에서 어떤 자세가 바람직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악마의 시' 사건은 문학의 근원적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정과리 문학평론가는 "오래전 '악마의 시'를 현대 문명이 신화와 결합하면서 스펙터클화되는 상황, 진정한 가치가 상품적 가치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다"며 "문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고 종교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간구다. 신이 아닌 인간이 세상을 경영하는 현대 사회에선 문학적인 해석이 삶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을 가져다 준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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