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김태호가 낳고 나영석이 키운 'MZ예능'의 어퍼컷[★인명대사전]
나영석PD가 올해 늦은 봄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을 기획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성급한 누군가는 ‘나영석 예능 시대의 종언’을 예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새로운 기획으로 예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그에게서 나온 기획안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있는 출연자들이 외국으로 나가 주로 숙소에 기반을 두면서 게임을 하는 예능’. 누군가에게는 새로울 수 있을지도 모르나 지금까지 나영석PD의 예능 세계관을 따라가던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해외촬영은 코로나19 기간 중 멈추긴 했지만 나영석PD의 전공이었고, 게임 역시 그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계속해오던 것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취합한 그림이 그의 전작 ‘신서유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신서유기’가 어떤 시리즈였던가. 2015년 웹 예능으로 시작해 2016년 TV에 안착하면서 거의 6년을 이어온 시리즈였다. 밥이나 좋은 잠자리, 각종 혜택을 걸고 게임을 하고 통통 튀는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이미 익숙했다.
물론 나영석PD가 변주를 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진용을 남성 6인조에서 여성 4인조로 바꿨고, 나이 역시 ‘MZ’세대에 속하는 20대 초반~30대 초반으로 대폭 낮췄다. 그래도 그의 도전은 대단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3~4%를 오가고 있는 전통적인 수치인 시청률과 별개로 화제성은 TV 비드라마 부문 1위를 위협하는 등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OTT 티빙 유료가입 기여도에서도 1위에 올랐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클립 영상들 역시 평균 3~4만회를 웃도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나영석PD의 전작과 뭐가 다른 걸까. 정확히 말하면 ‘뭐가 달라진 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달라지게 한 것’이다. 그 주역이 바로 랩퍼 겸 방송인 이영지다. 이영지는 ‘지락실’의 분위기를 이전 예능과 완전 달라지게 한 주역이었을 뿐 아니라, 나영석PD를 지금의 시대에 맞게 확 깨우쳐준 실마리와 같은 존재다.
2002년생, 아직 만으로 20세가 안 된 이영지는 2019년 엠넷 ‘고등래퍼 시즌 3’의 참가자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두꺼운 목소리와 단정한 옷차림과는 다른 충만한 힙합에 대한 끼로 그는 수많은 남성 출연자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물론 그가 뮤지션, 아티스트로서의 행로를 택했다면 지금과 같은 화제성을 기대하긴 시간이 더 걸렸을지 모른다. 데뷔한 해부터 ‘라디오스타’ ‘런닝맨’ 등의 예능에 출연하기 시작하던 그는 당시 MBC ‘놀면 뭐하니?’를 연출하던 김태호PD의 레이더에 걸렸다.
지난해 1월 예능 유망주를 찾던 ‘동거동락’ 특집에 출연한 것으로 계기로, 이영지는 첫사랑을 이어주는 ‘H&H’ 특집에도 거푸 출연하며 입지를 넓혔다. 유재석과 김태호PD가 야심차게 기획한 ‘예능 우량주 찾기’ 특집, 동거동락 특집에 이어 세 편의 특집에 연속으로 출연한 것은 이영지가 유일했다.
그는 이 당시에도 2002년생 다운 패기와 30~40대에게는 최신일 수 있는 기억을, 심지어 한일월드컵마저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세대의 본모습을 보여 신선함을 안겼다.
이후 ‘고등래퍼’도 ‘고등래퍼’지만 다양한 예능을 오가며 체급을 키운 그를 알아본 것이 바로 나영석PD였다. 이영지는 프로그램 초반에 바로 “영석이 형”이라고 나영석PD를 ‘정의’해버리면서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삽시간에 출연자 ‘지락이’들에게 끌어왔고, 예능계의 대부 나PD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정신을 사납게 하는 열정으로 실질적인 출연자의 리더를 자처하고 있다.
이영지의 존재 때문에 나영석PD는 스스로가 MZ세대에 뒤처진다고 깨닫게 됐으며, 그의 예능작법 역시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방식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지락실’ 출연자들은 방송과 비방송의 경계가 없으며 촬영이 있어도 없어도 홀린 듯이 춤을 추고, 개인방송을 하며 상황을 즐긴다.
‘지락실’ 방송 이틀 만에 목이 쉬어버린 이영지. 그의 흥과 솔직함은 지금까지 방송가, 예능계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 출현의 알림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라지만, TV 예능은 너무 오랫동안 ‘꼰대’들의 작법에 휘둘리고 말았다. 이영지는 그들에게 날리는 유쾌한 ‘어퍼컷’ 한 방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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