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는 것, 배우 원지안이 연기를 사랑하는 방식

강예솔 2022. 8. 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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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를 내는 것. 배우 원지안에게 연기는 그래서 멋진 일이다.




실제로 들으니 목소리가 더 좋네요. ‘중저음’이라고만 설명하기엔 아쉬울 정도로요. 연기하기 전에는 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은 탓인지, 저도 그 말에 동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들으면 좀 신기했어요. 칭찬을 몇 번 들으니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던데요.

지금은 어때요? 보통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래도 이제 편견 없이 제 목소리를 인지하게 됐다는 점은 좋아요.

성악을 배운 적 있어요? 나무위키에 특기로 적혀 있는 걸 보고,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던데요. 되게 설레는 헛소문이네요. 그거 잘못된 정보예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긴 하는데, 마음대로 잘 부르진 못하겠더라고요. 사실이면 좋을 텐데 싶어 왠지 아쉽네요.(웃음)

배우로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했어요. 지난여름엔 <D.P.>로 뜨겁게 주목받으며 시작했다면, 올여름은 마음의 파고가 조금 잦아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상치 못한 시작이었어요. 극 전체가 아니라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그렇게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남성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에 몇 안 되는 여성 인물이니 도드라져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의 반응을 얻을 줄은 몰랐어요. 지난여름은 줄곧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지낸 것 같아요. 제 세계가 갑자기 확장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사실에 설레고 떨리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어요. 이제는 그 마음이 많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감흥은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어요.

감흥이 이어지는 데에는 다음 작품인 <소년비행>도 한몫했을 것 같아요. 다정은 늘 사건의 중심에 있고,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주인공이잖아요. <D.P.>의 ‘영옥’ 역을 맡았을 때와 확실히 다른 무게감이 있었어요. ‘다정’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연기하는 것 외에도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거든요. 촬영 분량이 많다 보니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으면 훅 지나버릴 것 같았고요. 계속 집중하려고 애쓴 기억이 나네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꽤 굵직한 경험들을 해왔어요. 그사이에 성장의 순간을 체감한 적도 있을 텐데요. 계단식으로 훅훅 올라가는 게 느껴지면 더 저를 믿고 ‘가보자!’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았어요. 잔잔하게 가다가 성장한 건가 싶은 짧은 순간들이 오가는 정도였어요. 성장보다 적응했다는 말에 더 가까울 거예요.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의 모습이 전과는 다른, 조금은 편안해진 상태였고요. 현장에서 대기할 때도 처음처럼 극도의 긴장은 사라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돌아보면 그런 것들이 성장이 아닐까 싶어요. 연기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연기 외에도 현장에 적응하고 작업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것도 배우의 일이니, 그 부분에서의 성장도 중요하죠. 전에는 저를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건 아마 제가 벽을 두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좀 말랑해졌어요. 이제는 현장에서 처음 보는 분과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 면에선 대단한 발전이죠.

그게 변화일까요? 아니면 실은 본래의 모습이었을까요? 둘 다 맞는 것 같아요. 변화이지만 그게 실은 제 안에 있던 모습이기도 해요. 시기마다 상황마다 드러나는 제 성향이 있잖아요. 아주 어릴 땐 밝고 활발했는데 학교 다닐 땐 친구 만나는 시간보다 책 보는 시간이 더 긴 문학소녀였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 일을 하면서 다시 밝아지고, 사람을 더 편하게 대하게 되었어요. 어쨌든 지금이 더 좋아요. 친구가 많이 생겼거든요.(웃음)

친구보다 책이 좋아 책에 빠져 살던 문학소녀가 어떻게 배우를 꿈꾸게 된 건지 궁금해지네요. 어릴 때 책만큼 그림을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직업으로 생각해보면, 왠지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 이후로 다른 직업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갑자기 3년 후에 성인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불안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방학 내내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뭘 좋아했지? 글 공부? 그런데 영화도 좋아하는데? 그러다 그냥 연기를 배워볼까 싶더라고요. 연기가 좋아서라기보다 되게 어려울 것 같지만, 해내면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뭔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주말마다 연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죠.



이제 신작 얘기를 해볼까요? 삶의 끝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에서 ‘하준경’ 역을 맡았다고요?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들보다 건강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평탄치 않은 삶을 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며 연기했나요? 원래는 이유를 많이 따지는 편이에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게 납득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인물은 달랐어요. 일단 그냥 했어요. 너무 어려운 인물이니, 제가 이유를 찾으려 하면 스스로의 굴레에 빠지게 될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얘가 하니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집착을 버리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해나간 게 컸어요. 신기하게 거기서 얻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난 셈이네요. 그럼에도 여전히 ‘왜’라는 질문은 잃지 않으려 해요. 그게 한 인물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고자 하는 저의 방식이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그 인물이 되는 건 아니니까, 밖에서 접근하는 작업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다음 문제는 ‘왜’에 대한 저만의 답을 어떻게 내 몸으로 가져오느냐인데, 이를 연기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얻은 셈이에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말과 행동의 연유를 이해하는 것만큼 그 인물 자체를 몸으로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용기를 낸 거라 생각해요. 지금 제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요.

용기란 단어가 마음에 남네요. 어떤 선생님께서 배우는 용기를 내는 직업이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게 정말 맞는 말임을 매번 느껴요. 그래서 연기하는 거, 되게 멋진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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