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수리남' 하정우의 시간이 온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하정우의 시간이 온다.
영화 '클로젯'(2020) 이후 2년간 신작을 내놓지 않았던 하정우는 오는 9월 9일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으로 국내외 시청자들과 만난다.
하정우의 드라마 출연은 2007년 '히트' 이후 처음이다. 지난 15년 간 영화 한 우물만 파며 '트리플 천만 배우', '최연소 1억 관객 배우' 등의 타이틀을 얻어온 그다. 그의 OTT 도전은 때와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수리남'은 하정우의 오랜 영화 동지인 윤종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하정우의 등장을 알린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민란의 시대'(2014)까지 총 4편의 영화를 함께 하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콤비로 자리매김 한 두 사람이다.
감독과 배우의 성장에 있어 파트너는 중요한 존재다. 특히 감독에게 있어 페르소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충실히 반영하는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콤비는 네 편의 영화에서 서로의 연출과 연기를 자양분 삼아 동반 성장을 이뤄왔다.
'수리남'은 '군도:민란의 시대' 이후 8년 만에 두 사람이 조우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오랜만에 선보이는 하정우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높다.
◆ 350억 대작 '수리남', '오징어 게임' 이은 추석 신화 예고
'수리남'은 중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수를 수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윤종빈 감독이 연출을 맡고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추자현, 장첸까지 꿈의 캐스팅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장악했던 한인 마약상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이 인물은 남다른 수완으로 수리남 정계와 경찰까지 자기편으로 만든 후,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국제적인 마약 밀매 사업을 벌여왔다. '수리남'은 국정원과 국정원의 비밀 작전에 협조한 민간인 사업가의 목숨 건 여정을 그린다.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의 제안으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작품은 당초 영화로 기획됐으나 준비 단계에서 넷플릭스 시리즈로 발전했다. 마약상을 다룬 소재 때문에 한국판 '나르코스'로 불린다. 집단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왔던 윤종빈의 작품인 만큼 '수리남'에 대한 기대감은 남다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지만 국정원의 비밀작전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픽션으로 구성됐다. 단 몇 줄의 뉴스로는 알 수 없는 사건의 내막이 감독의 작가적 상상력으로 펼쳐진다. 윤종빈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권성휘 작가가 감독과 각본을 함께 썼다.
편당 제작비 약 60억 원이 투입된 350억 대 대작이다. 국내 시리즈물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영화 같은 드라마'의 끝판왕이다. 최고의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진 모두 충무로의 특급 스태프로 구성됐다.
시리즈물로서는 최초로 남미 촬영도 이뤄졌다. 윤종빈 감독은 콜롬비아 로케이션을 구상했다가 현지 여건상의 이유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촬영지를 확정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사태로 제주도, 전주 등 세트 촬영을 먼저 진행하고 바이러스 확산세가 완화된 시기를 틈 타 약 두 달 간의 도미니카 현지 촬영을 마무리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의 수리남의 사회상을 구현한 도미니카 현지 촬영은 극의 박진감과 현실성을 극대화할 것을 보인다.
넷플릭스는 '수리남'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9일 전 세계에 공개한다. 특히 올해 추석의 경우 CJ엔터테인먼트의 '공조2:인터내셔널'을 제외하고 3대 투자배급사 모두 신작을 내놓지 않는다. 극장 영화와 OTT 콘텐츠가 동시 경쟁하는 상황에서 두 작품의 화제성 대결도 흥미롭다. 넷플릭스가 연휴 기간에 맞춰 '수리남'을 공개하는 건 작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시즌에 개봉해 글로벌 히트를 기록했던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미국의 '브레이킹 배드', '나르코스' 시리즈 등 마약 소재의 콘텐츠 등은 초대박을 친 전례가 있다. '수리남'은 다른 맛이다. 이 시리즈의 영문 제목은 어나더 레벨을 의미하는 '나르코 세인츠'(Narco-Saints)다.
◆ 하정우가 가장 빛나는 순간…윤종빈의 페르소나
'수리남'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또 다른 이유는 하정우의 신작이라는 점이다. 하정우는 '암살', '신과 함께' 시리즈에 이르는 세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대한민국 대표 흥행 배우다. '소정우'라 불릴 정도로 다작을 하고, 실패를 모르는 행보를 보여온 배우기에 지난 2년 여의 공백은 다소 크게 느껴진다. 최근작인 '클로젯'의 부진과 함께 프로포폴 투약 논란으로 데뷔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배우는 연기로 말을 한다. 지난 2년간 활동을 중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정우는 촬영을 마친 '보스턴 1947', '야행'을 비롯해 '수리남', '피랍'의 촬영을 쉼 없이 이어오고 있었다. 촬영을 마친 작품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시기를 섣불리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가장 먼저 선보이게 된 것이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이다.
지난 11일 공개된 1분 40초 분량의 티저 예고편을 보면 '수리남'은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정우의 최근작들을 보면 그의 역량과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투톱 주연으로 나서더라도 상대적으로 받추는 캐릭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리남'에서의 하정우는 메인롤이자 화자로서 극을 이끈다. 무엇보다 '강인구'는 하정우의 매력을 가장 잘 아는 윤종빈 감독이 만든 캐릭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은 하정우는 윤종빈의 영화에서 가장 빛났다는 것이다. 그 '멋짐'은 단순히 외형적 멋짐이 아니다. 감독이 그린 세계 안에서 캐릭터로 완전히 변태 할 때 발휘되는 '멋짐'이다. 하정우는 윤종빈의 영화에서 늘 활어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공개된 2분 남짓한 영상에서 그의 활약을 유추하기는 무리지만 '마약왕 때려잡는 보통 사람'의 서사는 실화라는 백그라운드와 만나 드라마틱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사에서는 보는 이들의 감정적 동화와 응원을 이끌어내는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정우가 가장 잘하는 캐릭터 조형술과 완급 조절의 연기가 어우러진다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 탄생도 가능해 보인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기대 포인트는 하정우와 황정민의 앙상블이다. 두 배우는 단 한 번도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적 없다. 소탈한 이미지와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갖춘 배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다른 연기 컬러를 가진 배우들이기에 두 사람의 앙상블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황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상인 '전요환'으로 분했다. 마약상과 목사의 이중생활을 능글맞게 연기할 배우는 황정민 밖에 없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달콤한 인생', '신세계', '곡성', '아수라'의 뒤를 잇는 매력적인 안타고니스트 탄생을 예고한다. 짧은 예고편에서도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연출 잘하는 감독과 연기 잘하는 배우, 영화 같은 실화가 어우러진 '수리남'은 하반기 OTT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한동안 시들시들했던 콘텐츠 업계에서 등장한 뜨거운 화두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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