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미 '물싸움' 끝난 줄 알았는데..단체장 날선 공방

홍창진 입력 2022. 8. 16. 16:16 수정 2022. 8. 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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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수원 협정 놓고 구미 "지역 이익에 맞지 않아" vs 대구 "언어도단"
해묵은 갈등 뿌리 30년 거슬러 페놀오염사건.."잊을만하면 한번씩"
구미 해평취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구·구미=연합뉴스) 홍창진 기자 =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 김장호 경북 구미시장이 최근 대구 취수원 다변화(구미 이전) 사업을 두고 갈등 조짐을 보이면서 그 배경과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16일 지자체들에 따르면 두 단체장 갈등 조짐은 김 시장이 취임 후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 난색을 표하고, 홍 시장이 이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비롯됐다.

두 단체장은 지난 4월 세종시에서 체결된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을 놓고 방향을 달리하며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국무조정실, 대구광역시, 경북도, 구미시,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참여한 협정은 구미 해평취수장을 거친 하루 평균 30만t의 물을 대구시와 경북 지역에 공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환경부는 협정에 따라 해평취수장에서 대구정수장까지 45.2㎞ 관로를 개설해 2028년 이후 대구에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올해 6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정부 사업으로 확정됐다.

앞서 홍준표 시장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대구시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맑은 물 하이웨이는 낙동강 상류에 있는 안동댐과 임하댐 물을 도수관로로 연결해 영천댐이나 운문댐으로 공급하고 이를 정수해 대구에 공급하는 방안이다.

홍 시장은 전임자가 추진한 취수원 다변화 합의를 존중, 자신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최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장호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취수원 이전 보상과 관련해 중앙정부 지원 부분이 불분명하다"며 전임자의 조건부 동의와 달리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 시장은 "취수원 다변화에 동의하면 자칫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없으면서 상수도보호구역 등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며 "(지역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구시민이든 구미시민이든 깨끗한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지난 4월 협정은 구미시민이나 시의회 동의 없이 체결됐기 때문에 형식적 합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결과적으로 지방선거에 당선된 두 단체장 모두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 탐탁지 않은 반응이다.

7월 1일 두 시장이 취임한 이후 취수원 다변화 사업에 별다른 진척이 없고 답보 상태다.

그러다가 지난 8일 홍 시장이 "(구미에서) 하류의 물을 오염시켜놓고 상류에 상수원을 좀 달라고 하니까 '된다, 안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언어도단이다"고 강한 공격을 하면서 새 국면이 형성됐다.

홍 시장은 "250만 대구 시민들이 먹는 식수의 원수인 낙동강 물이 오염된 근본 원인은 구미공업단지가 애초에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시장은 이에 맞서 "대구 취수원 다변화와 관련해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적이 없다"며 "(협정은) 시민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졸속합의이기 때문에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협정에 따르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구미지역 피해는 영원한데 보상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허점투성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런 상황에 대해 해묵은 '대구-구미 간 물 갈등'이 재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동강 유역 물 문제를 둘러싼 대구와 구미 간 갈등의 뿌리는 짧게 13년, 길게는 3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계기는 1991년 3월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다.

1991년 3월 14일 구미시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파이프가 터져 페놀 원액 30여t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고, 조사 결과 두산전자는 1990년 10월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t을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에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이 사임하고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으며, 대구 시민들은 두산 측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 170억100만 원(1만3천475건) 배상을 청구했으나 두산은 그중 1만1천36건, 10억1천800만 원만 배상했다.

김장호 구미시장 [구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에도 1994년 1월 낙동강 수원지에서 다량의 벤젠·톨루엔이 검출되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는 등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물 오염 사건이 대구시민을 불안케 했다.

결국 대구시는 2009년 2월 구미국가산단에서 배출되는 유해 화학물질이 대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달성군 다사읍 매곡·문산 취수장 원수를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구미공단 상류 지역으로 취수장을 이전하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자 구미시는 "대구 취수원을 구미로 옮기면 구미시민 식수와 구미공단 공장용수 및 농업용수 부족,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개발 제한 등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10년 넘게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감정싸움과 소모전이 이어졌다.

대구시는 2018년 10월 낙동강 수계에 '폐수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취수원 이전 문제에 다시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부는 2019년 3월부터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고 취수원 등을 둘러싼 상·하류 지역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환경부는 낙동강 본류 수질을 2급수 이상으로 개선하고 취수원을 다변화하기 위해 13년만인 지난 4월 협정 체결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시장 갈등에서 보듯이 대구 취수원 다변화(구미 이전) 사업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홍 시장은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더 이상 물 문제로 구미시장과 협의할 것도 논의할 것도 없다"며 "새로 당선된 구미시장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에 대구가 수원지를 (안동으로) 옮긴 것"이라면서 자신의 맑은 물 하이웨이 추진 방침을 옹호했다.

김 시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대구시민도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지자체장 교체 등 상황과 여건이 달라진 만큼 취수원 이전은 새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reali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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