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장관 공백 역대 최장..'과학방역' 내세워 '자승자박'[윤석열 정부 100일]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허남설 기자 2022. 8. 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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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13일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았지만 ‘예산 집행 1위’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존재감이 희미하다. 코로나19 재유행과 경제상황 악화로 복지부의 역할은 커지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정책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장관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로 ‘최장기 장관 공석’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과학방역’ 프레임에 갇혀 방역정책 마저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선별적 복지의 확대’를 예고했다. 지난 7월 말 기초생활보장제 등 복지사업의 선정기준을 쓰이는 ‘기준 중위소득’을 산출원칙에 따라 전년 대비 5.47% 인상했다. 하지만 6%대까지 치솟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나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면 “실질적 삭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구체적인 공약인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 선정기준 완화(기준 중위소득의 30%→35%)는 이행되지 않았고, 주거급여 대상자 확대(기준 중위소득 46%→47%)도 목표치(50%)에는 미달했다.

시급한 현안인 연금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애초 공약에선 대통령 직속 기구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했다가 국회에 연금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바꿨다. 시민사회 여론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등 특위 운영 방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개혁안은 어떤 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복지부는 일단 지난주부터 내년도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착수했다.

이 같은 공백에는 ‘인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면서 권덕철 전 장관이 퇴임한 5월25일 이후 80일 넘게 장관 자리가 비어있다. 그간 복지부 장관 공백이 가장 길었던 때는 박근혜 정부 시절 진영 전 장관이 퇴임한 뒤 문형표 전 장관이 취임하기까지 총 63일간이었다. 초대 장관을 임명조차 못 하고 있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주요 실장과 국장급 인사도 지난 12일에야 마무리됐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지난 4월 김용진 전 이사장의 자진사퇴 이후 공석이다. 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모는 지난 10일에야 마감됐다.

장관과 국·실장, 공단 이사장 등의 공석 상태가 장기화하다 보니 주요 현안이 추진 동력을 잃은 상태다. 교육부가 먼저 들고나온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통합)의 주무부처기도 하지만 실무선에서 준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복지부는 이달 교육부와 사전 협의 없이 유보통합 이해관계자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가 부처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고 있다”고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감염병이나 물가 상승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복지제도가 강화돼야 하는 시점이지만, 주요 결정을 해야 할 장관이 공석이다 보니 보수정권의 ‘선별적 복지 확대’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전적으로 부실한 인사 검증을 한 결과”라고 했다. 이 팀장은 정부가 내년도 본예산 규모를 올해 총지출 규모보다 줄이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앞으로 부자감세 기조 속에 복지지출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코로나19 정기 인식 조사’ 결과

100일 사이 코로나19 재유행이 찾아왔지만 방역에 대한 신뢰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 정기 인식조사’ 최근 결과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29%로, 2020년 2월 정기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난 6월 같은 조사에서 64%가 나온 뒤 53%→41%→29%로 급격히 떨어졌다.

주간 일평균 확진자는 최근 약 12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지난 3월 중순(약 40만명)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다. 먹는 치료제 보급과 4차 백신 접종 등 영향으로 요양병원·시설 사망 증가나 병상 부족 사태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역 신뢰도가 더 떨어지고 있다.

우선 확진 후 격리자 지원 제도를 대폭 축소하면서 반발이 커졌다. 정부는 지난 7월11일부터 격리 중 생활지원금 지급 대상을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로, 유급휴가비 지원 대상을 30인 미만 기업으로 한정했다. 의무 격리일수는 7일로 똑같은 데 지원만 줄이면서 “각자도생 방역”이란 비판이 나왔다.

올해 초 오미크론 유행 이후 의무격리·거리두기 같은 통제를 줄이며 일상회복을 추구하는 방향은 그대로인데, 지난 정부 방역과 차별화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전 정부는 정치방역, 현 정부는 과학방역’이란 프레임을 내세웠지만 “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만 초래했다. 정작 질병관리청은 ‘과학방역’ 대신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란 말을 사용 중이다. 한 방역당국 관계자는 “항상 근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할 뿐”이라며 “정권에 따라 방역정책을 바꿀 듯이 비치게 만든 것은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공약 이행도 미진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짠 ‘코로나 대응 100일 로드맵’에서 항체양성률 조사를 첫 과제로 제시했지만 그 중간 결과가 일러도 9월 초에나 나온다. 취임 30일 안에 ‘실외마스크 프리(의무화 해제)’ 시기를 검토하기로 했지만 방역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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