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과 다르다?..이준석, '개혁보수 잔혹사' 끊어낼까

박성의 기자 입력 2022. 8. 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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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반공' 韓보수의 깊은 뿌리..당의 화두 바꾸기 쉽지 않아
진영 내 반발 여전하지만 '세대교체+정부 위기' 기회될 수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2016년 12월21일,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16년 정치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진다. 34명에 달하는 여당 의원을 이끌고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 세력'과의 갈등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렇게 그는 '배신자'란 오명을 썼다. 대신 유 전 의원은 '정의롭고 따뜻한 신(新)보수'를 목표로 내걸고 창당을 시도했다. 그러나 TK(대구‧경북) 등 보수 텃밭에서 표를 얻지 못하면서, 그의 '보수 개혁'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2022년 8월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2년 정치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진다. 당원권 정지 징계 이후 36일 만에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이 대표는 현 보수 정당과 정부의 모습을 '개고기'에 비유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회견 후 당내에서는 이 대표를 향해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이 쇄도하는 모습이다. 과연 이 대표는 유 전 의원이 실패한 '보수정당의 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까.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시사저널

보수 정당, '뿌리' 탓에 변화 어렵다?

이준석 대표는 대통령 취임 100일이 안 된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저격'하는 초유의 결단을 내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 세력을 직격했던 유승민 전 의원과 유사한 길을 택한 셈이다. 다만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도전이 험난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을 넘어 동양권 국가에서 보수정당이 '개혁과 세대교체'에 성공한 선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선 그들의 뿌리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홍태영 국방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2020년 논문 《남한에서 국민국가 형성과 보수세력 및 보수주의의 구성: 보수혁명으로서 민족주의》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 보수층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히 몰락했다"며 "그 빈자리에 제1공화국 시기 적산불하를 통해 성장한 계층이나 박정희의 개발정권 시기에 등장한 지배계층은 국가에 의해 생산되고 국가와 결합해 전반적으로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 속에 형성된 자본가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발전주의에 기반해 급격한 자본주의적 성장을 추구했던 이들은 한편으로 반공주의를 무기로 아래로부터의 욕구불만을 잠재우고 발전주의적 성장에 대한 신화를 통해 지배를 공고화했다"고 분석했다. 즉, 국내 보수정당은 '경제 성장'과 '반공'을 큰 기치를 내걸고 '위'에서 '아래'로의 변화를 주도하며 성장했다. 이후 그 밖의 가치가 당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 선례가 없다.

학계 일각에선 이 같은 정당 문화가 동양권 정치 전반에 퍼져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지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가 2016년 쓴 논문 《낙수경제의 부활: 불평등시대의 동아시아 보수정치와 그 적응》을 살펴보면 이런 분석이 있다. "복지주의(welfarism)운동이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그동안 시장우위·복지축소를 주장해 온 보수정당들의 정책변화가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중략) 하지만 동아시아 보수정당의 태도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특히 수출산업을 통해 벌어들인 부가 하청·고용 등 시장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분배될 것이며 이러한 생산-분배의 과정에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낙수경제(trickle-economics)의 정책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실제 영국·스웨덴·독일 등에서는 이미 보수정당이 진보적 전환(progressive turns)을 시도하고 있다. 복지 증대나 노동조합의 권리 보호, 차별 철폐 등을 천명하며 선거에 임하는 식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사회 정책과는 다소 다른 기조다.

7월24일 저녁 경북 포항 송도해변 한 통닭식당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지자나 포항시민과 치킨을 나눠 먹으며 대화하는 '번개모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권자 세대 교체, 이준석에겐 기회?

이 탓에 이 대표가 결국 신당 창당을 시도하는 '유승민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성장'과 '반공'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 특유의 색(色)을 바꾸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기반인 TK, 핵심 유권자층인 6070세대의 '반(反) 유승민' 정서가 여전하다. 대통령을 저격하고 당의 개혁을 외친 이 대표가 이들의 반발을 사게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유 전 의원과 이 대표가 놓인 상황이 다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유 전 의원은 '친박'이라는 당의 실세와 맞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전까지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했다. 이에 반해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취임덕'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권성동, 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 세력은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당원들의 세대교체 움직임도 감지된다. 과거 보수 정당을 지지하던 1970년대 청년들은 노인이 돼 광장 밖 '아스팔트'에서 주로 활동한다. 그 자리를 메운 건 전란의 기억이 없는 4050세대와, 온라인이나 앱(app) 사용에 익숙한 2030세대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도, 반공주의자도 아니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혜택을 톡톡히 입은 세대일 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실용'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우리나라에 따뜻한 공동체 하면 생각나는 보수 리더가 있나? 없다. 따뜻한 생각을 하는 건 진보의 전유물이 된 것 같은 모습"이라며 "새로운 담론을 던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수정치인이었지만 민주당보다 부패와의 전쟁을 더 격렬하게 벌였던 미국의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이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2030세대 지지층을 '방패'로 삼아, 유 전 의원과는 다른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이번주부터 '당원 소통 공간'을 마련, 여론전을 이어갈 방침이다. 동시에 징계 후 전국을 돌며 당원들과 만나 대화한 내용을 토대로 당 혁신 방안을 정리한 책을 곧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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