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최초 전화 '덕률풍'이 눈 앞에..KT, 137년 통신사료 첫 외부 공개

심지혜 2022. 8. 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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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1890년대 첫 전화부터 현재까지 130여년 통신 사료 공개
6000점 이상의 사료 보관…일반전화·공중전화 등 전시

[서울=뉴시스] KT 원주 통신사료관에는 1900년대 안팎에 사용했던 전화기들이 전시돼 있다.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덕률풍(德律風). 1890년대 말 국내 최초로 왕실 궁 내부에 도입된 전화기다. 이름은 텔레폰의 영어발음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당시 고종 황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신하와 직접 통화를 했다. 신하는 황제의 전화가 걸려오는 시간에 맞춰 의관을 정제하고 네번의 큰 절을 올린 후 전화기를 받들고 통화했다고 한다.

130여년이 지난 현재는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됐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할 수 있다. 원하면 목소리뿐 아니라 상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KT가 16일 국가 통신의 역사를 모아둔 원주연수원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곳은 직원 연수원이지만 대한민국 통신 역사와 KT의 역사를 함께 보존하면서 통신사료관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벽괘형 공전식 전화기, 최초의 다이얼식 전화기, 인쇄전신기 등 6000여 점의 사료가 보관돼 있다. KT는 5개 공간에 나눠 1800년대 최초로 사용된 전화기부터 스마트폰에 이르는 130여년의 통신 역사를 전시해놨다.

[서울=뉴시스] KT 원주 통신사료관에는 시대별 전화기가 전시돼 있다.

통신사료관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시대별 전화기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형태를 가진 전화기들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전화기는 교환기 발달에 맞춰 같이 진화했다.

초기 전화기는 송수신기가 분리된 형태로 송신기에 붙은 핸들을 돌려 신호를 교환기에 보냈으나 이후 송수신기가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자석식 전화기와 공전식 전화기는 전화기를 들면 교환기에 신호 램프가 들어와 교환원이 통화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다이얼식 전화기는 다이얼을 돌려 자동으로 교환기(기계식)를 동작시키면 연결된다.

[서울=뉴시스] 우리나라는 1984년 전자교환기 TDX-1를 처음으로 자체 개발하고 1986년 상용 개통했다. TDX 교환기 개발은 외국에 의존하던 교환설비를 자체 생산하면서 당시 만성적인 전화 적체를 해소하고 전국 전화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은 KT 원주 통신사료관에 전시돼 있는 TDX.

교환기의 경우 통신역사에서 의미있는 것은 TDX-1이다.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4년 전자교환기 TDX-1을 자체개발하고 1986년 상용 개통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10번째였다. 만성적인 전화적체를 해소하고 전국 전화 보급의 큰 역할을 했다.

TDX-1 교환기 보급전에는 전화 수요에 맞게 공급할 수가 없어 전화기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전화 값은 전정부지로 뛰었다. 한 대가 260만원까지 치솟을 정도다. 서울시내 50평짜리 집값이 230만원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한 가격이었다.

[서울=뉴시스] 우리나라의 무인 공중전화기는 1962년 광복 이후 처음 설치됐다.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가서야 서비스됐다. KT 원주 통신사료관에 전시돼 있는 공중전화기들.

사료관에는 시대별 공중전화도 즐비하다. 우리나라 첫 공중전화 설치는 120년 전이다. 그 당시 이용요금은 50전으로 쌀 다섯가마니 약 400kg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아주 비싼 요금이었다.

무인 공중전화기는 광복 이후인 1962년 처음 설치됐다.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가서야 나왔다. 1982년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시내·외 겸용 DDD 공중전화가 나오면서 보편화됐다.

[서울=뉴시스] KT 원주 통신사료관에 보관돼 있는 전화번호부

전화번호부가 따로 보관된 장소도 있었다. 1966년부터는 가입자 수가 많아지면서 전화번호부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선전화 가입자들이 쉽게 번호를 찾을 수 있도록 KT는 1년에 1부씩 무료로 전화번호부를 배포해왔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는 가정이나 공중전화 앞에 놓여있었다.

모스부호로 시작된 전신기는 전신국 즉 지금의 우체국에 설치돼 전보를 주고 받는 용으로 사용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헌트’ 촬영에 KT 통신사료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인쇄전신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1982년부터 무선통신용으로 사용했떤 삐삐. 초기엔 235명에 불과했으나 10년만에 6178배인 14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이동통신의 변천사도 볼 수 있다. 첫 시작은 삐삐다. 1982년 235명에 불과했던 삐삐 가입자는 10년 만에 6178배인 145만2000명으로 뛰었다. 삐삐의 대중화는 공중전화의 보급도 가속화시켰다. 이후 우리나라는 코드다분할접속(CDMA) 방식의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2세대 이동통신(2G) 시대를 열었다. 1년 뒤에는 개인휴대통신(PCS)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빠르게 확산됐다. 1999년에는 이동전화 가입자수가 유선전화를 앞질렀다.

이인학 정보통신연구소장은 "KT가 원주에 보관하고 있는 통신사료들은 우리나라 정보통신 흐름에 따른 시대상과 국민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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