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독립 비용은 비싸다? [남인숙의 귀여겨듣기]

남인숙 작가 입력 2022. 8. 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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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생존에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것은, 그게 지불되지 않을 때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약자라는 의미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최근 1인 여성 사업장에 '안심 비상벨' 설치를 지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사업장에서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벨을 누르면 112가 출동하는 형식이다. 최근에는 대전 유성구에서 이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고, 6월 제주 서귀포시에서는 CCTV와 비상벨을 함께 설치해 주는 지원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 단 혜택을 받으려면 '여성'이고 '1인 사업장'이라는 증명이 필요하다. 이 뉴스를 접한 누리꾼 중 한 사람이 무심코 적은 다음과 같은 글이 필자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여자들은 참 돈이 많이 드네. 똑같이 자영업 하면서 여자라고 지원도 받고, 여자한테만 좋은 세상이다.'

그 말이 맞다. 여자들은 참 돈이 많이 든다. 비단 자영업뿐 아니라 여자들이 혼자 일상을 이어 나가는 모든 일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그건 특권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특정 계층이 생존하는 데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것은, 그 추가 비용이 지불되지 않을 때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약자라는 의미다.

ⓒ연합뉴스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생존의 절박함'

반려동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동물 치료비가 사람의 것보다 몇 배나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가나 보험사의 보장 없는 약물과 처치의 원가가 얼마 정도인지 원하지 않았던 지식을 얻기 마련이다. 반려동물 의료비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이런 한탄을 하곤 한다. '개 목숨값이 사람 목숨값보다 비싼 세상이다.'

, 정말 그럴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도 생존할 수 있게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은 누군가의 이례적인 희생과 배려에 기대야만 나쁜 상황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 어떤 개가 사람보다 나은 팔자로 산다면 그 개별 개체의 행운일 뿐 개가 사람보다 살아내기에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짜 특권은 별다른 도움 없이도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공기처럼 누릴 수 있는 존재에게 있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 배우자, 혹은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하려면 여건이 다른 사람들이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비용이 추가로 든다. 우선 여성이 독립 가구를 이루고 살려면 안전한 주거지가 필요하다. 치안이 나쁜 지역, 침입이나 관찰이 쉬운 반지하나 저층, 문이나 자물쇠가 허술한 집에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은 실제로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 보니 보안시설 등이 나은 안전하고 비싼 주거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혼자 사는 여자의 말끔한 집'이라는 전형성 뒤에는 허세나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 있다.

8월1일에는 울산에서 한 여성이 지인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 당시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가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알뜰폰이라 추적할 수 없었다. 알뜰폰은 중소 사업자가 이동통신 주요 3사의 회선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용료가 저렴한 대신 고객 응대 서비스 수준이 떨어진다. 사고 당일도 알뜰폰 서비스 사업자가 경찰의 위치정보 요청에 응대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생전에 구조 요청까지 한 피해 여성이 용의자가 검거된 후에야 사체로 발견된 이 비극의 여러 원인 중 값싼 통신사를 이용했다는 사실도 포함된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늦은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밤거리를 더 걸어야 하는 대중교통보다 택시를 타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앞서 이야기한 1인 자영 업장에서도 지자체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경비업체와 계약하거나 별도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여성의 생존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그런데도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의 60% 수준으로밖에 돈을 벌지 못한다.

서울시의 여성 1인 가구 홈 세트 지원 관련 홍보물

여성의 독립이 더 수월한 사회로 거듭나야

근대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는 여성의 소비에 비교적 관대한 한편, 생산이나 소유에는 박했다.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없었고, 글을 익히거나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중세에는 민간요법으로 의료행위를 하거나 재산이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 반면 능력 있는 가부장이 가져오는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가부장의 능력에 따라 웬만큼 사치도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욕구》를 쓴 미국의 작가 캐럴라인 냅은 모든 욕구를 억압당해온 여성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게 쇼핑 욕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생의 다른 면에서 결핍을 느끼는 여성들이 곧잘 쇼핑중독에 빠지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남성 중심 사회는 '돈을 벌지 말고 남성의 보호 아래 편하게 있으라'는 메시지를 여성들에게 주었고,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그런 신호가 남아있다.

이제 여성들은 위험한 사회로부터 보호해 주겠다는 남성들의 편협함이 가장 위험한 것임을 안다. '개인'이나 '자아' 같은 개념이 발명된 이래 사람 하나하나의 행복감이 중요해진 세상에서 여성들도 스스로 존재감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아직 남성들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은 안 되는데도 여전히 사는 데 돈이 많이 드는 여성들은 남성이 더 편한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들은 부모 세대처럼 가부장에 헌신하지 않으면서도 남성에게 더 경제적 의무를 지우는 여성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교차 지점에서 생기는 역반응이다. 양쪽 모두 억울하다.

그렇다면 순방향으로 향하는 길을 조금 더 앞당겨 보는 건 어떨까? 어차피 남성이 여성 정체성을 지배하며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여성들은 이제 개별적으로 더 큰 비용이 들더라도 독립적인 존재로 사는 게 더 이득이라는 계산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여성의 독립이 더 수월한 사회로 거듭나, 연애든 결혼이든 두 성별이 함께할 때 발생하는 비용의 공동 부담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서로에게 편하지 않을까? 여성과 남성의 독립 생존비용이 똑같이 저렴해지는 사회가 된다는 건 자살률 세계 최상위권인 우리 사회에서 존재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한 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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