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이준석이 배워야할 몸의 철학

고진현 입력 2022. 8. 16. 12:01 수정 2022. 8. 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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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서양 철학의 원류(源流)로 통하는 플라톤은 수사학(rhetoric)을 경멸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불멸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그에겐 아둔한 대중들을 현혹하는 수사학은 진실과 정의를 규명하는 학문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뜬금없이 희랍철학의 수사학을 꺼내 든 이유는 젊은 정치인 이준석(37)의 행태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다.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해임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밥그릇마저 빼앗는 처사”라거나, “기성세대를 능가하는 타락한 정치인”라는 상반된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민감한 정치적 문제인 만큼 판단을 유보하는 게 좋겠다. 다만 체육 기자로서 펜을 든 이유는 한국 사회를 이끄는 정치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도드라진 흠결이 체육의 가치나 몸의 철학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젊은 정치인의 생명은 과연 무엇일까. 기성세대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부정한 권력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과 도전,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성과 포용성 등…. 아마도 국민은 이준석을 통해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준석이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건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접게한 실망감,그 자체였다. 해임을 야기한 성접대에 관한 자신의 명확한 입장은 온데간데없이 핵심에서 벗어난 곁가지의 일들을 굴비 엮듯이 엮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했다. 말의 잔치는 공격적이고 화려했지만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자신의 객관화가 자기 합리화로 바뀔 때면 나타나기 마련인 감성적 장치인 ‘눈물 짜내기’도 양념처럼 등장했는데 이건 너무나 뻔한 클리셰로 동정을 사지도 못했다.

거친 레토릭은 타인을 공격하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려는 안쓰러움으로 내비쳐졌다. 나이는 젊지만 정치 마케팅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그는 사실 시대가 낳은 이단아다. 그동안 논리적 무장에서 자유 우파는 좌파에 밀려도 한참이나 밀렸다. 자유 우파가 좌파의 말빨(?)과 주장에 열세였던 과정에서 이준석의 등장은 신선했다. 좌파를 향해 거침없이 쏘아대는 그의 강단있는 언설은 자유 우파 진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좌파의 위선에 실망한 젊은 세대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준석에 빠져 들어갔다. 여기다 좌파 특유의 통일전선전술도 한몫을 했다. 좌파와 접점이 있는 듯한 이준석을 처참하게 공격하기 보다는 적절하게 이용하는 좌파 특유의 교묘한 전술은 대중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인기 정치패널로 다양한 매체에 출연한 이준석의 정치적 몸집이 급격하게 커진 것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정치적 급성장에는 좌파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그의 정체성은 늘 불안하다. 극좌와 극우를 넘나드는 정치철학의 불일치,그게 바로 정치인 이준석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다.

그렇다면 자기 객관화가 결여돼 있고 거친 레토릭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이준석의 눈에 거슬리는 습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앎과 삶의 불일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소위 성공한 지식인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발견되는 결정적 흠결이다. 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머리로 사유하는 데만 익숙한 부류들이다. 지식과 기술을 머리로만 사유하고 몸으로 터득하는 걸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들은 자신만이 옳다는 독단과 편견에 빠지기 쉽다. 이게 바로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몸으로 터득하는 경험과 진리에 둔감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에 길들여진 정치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은 머리로 사유하고 입으로 살아가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앎과 삶의 불일치는 결국 갈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파와 진영의 논리에 매몰된 정치판에서 ‘내로남불’ 현상은 일상이 됐고,이것은 결국 앎과 삶의 불일치가 원인이라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몸으로 터득하는 삶이 머리로 사유하는 앎과 괴리가 생길 때 ‘내로남불’은 심화되고 고착될 수밖에 없다. 기대했던 젊은 정치인 이준석이 자신을 성찰하기보다 타인을 향해 가시돋친 말화살을 쏘아대는 것도 따지고보면 치열한 삶과 유리된 앎의 세상에서만 표류했기 때문이다.

몸은 타자(他者)와 소통하는 창구다. 내 스스로가 다른 사람은 물론 사물 및 현상과 맺는 관계성은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네트워크가 바로 몸의 존재 이유인 셈이다. 타협과 중재 그리고 협상이 싹트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지식의 습득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치부하고 몸의 가치와 철학을 터득하는 체육은 지식교육에 밀려 정규 교육과정에서조차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지식교육에 몰입하느라 체육활동에 거리를 뒀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복(顚覆)일지도 모른다. 지(智)-덕(德)-체(體) 패러다임에서 체(體)-덕(德)-지(智) 패러다임으로 전환,한국 사회가 질적 도약을 꾀하기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하는 승부수가 아닐까. 머리와 말만 능한 정치인들이 가슴과 행동이 발달된 정치인으로 바뀌면 한국 사회도 새롭게 변할 수 있다. 말에는 힘이 없지만 행동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체육과 몸의 철학에 내재한 위대한 가치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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