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도둑질 못끊고 또 벤츠 턴 그놈..대법 "다시 재판" 왜 [그법알]

오효정 2022. 8.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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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74] 20년 넘게 도둑질 끊지 못한 남자...징역형도 2번, 이번에는?

지난 2020년 1월, 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차량의 선루프가 와장창 깨집니다. 한밤중에 벽돌로 이 선루프를 깬 남성 A씨는 곧이어 차에서 시가 200만원 상당의 손가방을 갖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손가방 안에는 지폐와 수표, 달러로 현금 약 277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A씨는 재판에 넘겨져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에겐 20년 넘도록 도둑질을 끊지 못해 처벌 받은 전력이 다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A씨의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원심을 파기해 돌려보낸다고 16일 밝혔습니다.

법원

관련 법령은?

대법원이 이렇게 판결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검찰이 A씨에게 어떤 법을 적용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4 제5항은 '절도죄 등으로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이들 죄를 범해 누범(累犯)으로 처벌하는 경우'을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절도죄로 세 번 이상 징역형을 선고 받고 형 집행을 종료 또는 면제 받은 뒤 누범 기간(3년) 안에 같은 절도를 저지르면 형법상 절도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죠.

A씨 측은 재판에서 자신이 절도죄 등으로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이 법을 잘못 적용했다는 겁니다.


법원 판단은!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A씨의 절도 전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 A씨는 지난 2010년 1월 상습절도를 처벌하는 구 특정범죄가중법에 따라 징역 3년을 선고받아, 2012년 10월까지 수형 생활을 했습니다.

② 2016년에도 상습절도죄 등으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아 2017년 10월까지 수형 생활을 했고요.

③ 2017년 2월에는 별건의 상습절도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습니다.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적이 있으니, 가중처벌 대상이 맞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문제는 ③번 범죄전력입니다. 1997년에 저지른 절도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2017년에 다시 판결을 받은 것이거든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A씨는 당시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절도를 저질렀는지, 상습절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습니다. 당시 특정범죄가중법에는 '3번 이상 징역형 전과자'와 같은 조건 없이, '상습절도'가 인정되기만 하면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었는데요.

이 때문에 헌재가 2015년 2월 이 조항에 제동을 건 겁니다. 가중처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법정형만 올린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3번 가벼운 절도를 저지른 사람 2명이 있다고 칩시다. 이럴 경우 검찰이 기소하는 조항에 따라 두 사람이 받을 결과가 달라집니다. 만약 1명에게는 형법상 절도죄를 적용하고, 나머지 1명에게는 특정범죄가중법을 적용한다면, 저지른 범죄는 비슷한데 형량은 크게 차이 날 수 있겠죠.

헌재 위헌 결정 이후 A씨는 자신의 1997년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합니다. 위헌 법률이 적용된 형사 재판이니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재심 판결문은 특정범죄가중법 대신 형법 332조 상습절도죄가 적용했지만, 형량은 원심 그대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재심 선고가 2017년 2월에 나왔고, ③의 범죄 전력으로 계산된 거죠. A씨가 2020년 1월에 새로운 범죄를 저질렀으니 3년의 집행유예 기간도 미처 다 지나지 않았고요.

A씨 입장에선 억울합니다. 집행유예 기간을 무사히 마치면 형 선고의 효력이 소멸하는데요. 1997년에 받은 징역형 선고 효력은 이미 그 때 집행유예 기간을 잘 넘기면서 없어졌는데, 재심을 청구했다는 이유로 다시 전과가 되느냐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형실효법을 두고 있어서,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는 일 없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이 실효됐다"고 보거든요. 수사자료는 계속 보관하지만, 수형인명부 등 전과기록이 공개될 수 있는 자료는 폐기합니다.

재심으로 다시 선고 받은 형까지 포함해, A씨를 '절도죄로 징역형을 세 번 이상 선고 받은 사람'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법을 적용하는 게 맞을까요? 대법원은 A씨가 재심으로 다시 받은 징역형 전력은 특정범죄가중법을 적용하는 요건인 세 번 중 한 번으로 계산해선 안 된다고 봤습니다. 이 법은 "누범 기간 내에 또다시 절도를 한 경우 형벌의 강도를 높이자"며 생긴 건데, A씨의 1997년 범행으로 불법성이나 비난 가능성이 새로 생겼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만약 이렇게 보지 않는다면, 피고인들이 재심을 청구하는 과정이 위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검사의 청구로 재심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피고인이 예상하지 못한 부당한 결과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죠.

대법원은 "재심 판결로 받은 징역형을 특정범죄가중법의 절도죄 가중처벌 요건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밝혔습니다. A씨는 파기환송심에서 형법상 상습절도죄로 다시 재판을 받을 전망입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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