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공보 vs 홍보

기자 2022. 8. 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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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에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수석비서관이 처음 임명된 것은 1965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대·성균관대 교수, 경향신문 등 논설위원을 역임한 신범식을 초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박정희는 2대 공보수석에는 군 출신 강상욱을 임명하기도 했지만, 이후 윤주영·김성진·임방현 등 신문·통신사 출신 언론인을 다시 발탁했다.

'공보수석=신문기자 출신'이라는 등식에 변화가 온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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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대통령실에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수석비서관이 처음 임명된 것은 1965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대·성균관대 교수, 경향신문 등 논설위원을 역임한 신범식을 초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후 35명의 언론 담당 수석이 임명됐다. 박정희는 2대 공보수석에는 군 출신 강상욱을 임명하기도 했지만, 이후 윤주영·김성진·임방현 등 신문·통신사 출신 언론인을 다시 발탁했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신문기자 출신 이웅희·황선필·정구호·이종률·최재욱 5명을 공보수석으로 임명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공보수석이 국회에 진출하거나 방송사·공공기관 사장으로 옮기는 것이 패턴화됐다.

공보수석은 격무 탓에 평균 임기가 1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이수정·김학준 두 수석이 5년 임기를 나눠 맡았다. 유능한 신문기자였던 두 사람은 공보수석으로서도 탁월했다. 그러나 이 수석은 과로 탓에 건강이 악화하면서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경재·주돈식·윤여준 등 신문기자 출신을 공보수석으로 발탁했다.

‘공보수석=신문기자 출신’이라는 등식에 변화가 온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4명의 공보수석 가운데 박지원·박선숙 두 사람이 정치인 출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공보보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홍보를 우선시했다. 그래서 공보수석 대신 홍보수석을 임명했고, 대변인을 별도로 뒀다. 홍보수석에는 처음으로 방송사 출신 이해성을 임명했다. 이후 홍보수석+대변인 체제가 청와대에 자리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홍보수석 5명 모두 방송기자 출신을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보수석을 국민소통수석으로 이름을 바꿨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맞춘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했고, 첫 수석도 인터넷 포털에서 일했던 윤영찬을 발탁했다.

임기 초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의 인적 쇄신이 논의되면서 홍보수석과 공보수석 분리 아이디어가 제시됐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 각종 미디어 범람으로 단일 수석 체제로 대언론·대국민 소통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2수석 체제로의 변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고 대응하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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