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산티아고] 잠시 걸음을 멈추면 보이는 것들
피레네 풍광과 순례를 즐기려면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피레네산맥입니다. 구름과 해님이 변화무쌍하게 만들어내는 작품 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피레네를 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첫날은 고도 변화가 크고 거리도 긴데다 의욕이 앞서는 시작인지라 짐까지 무겁기 때문입니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있으면 좋은 것까지 넣으면 무거워지기 마련. 자기 체중의 10분의 1 이하로, 반드시 없으면 순례가 불가능한 품목만 챙깁니다. 간식이나 비누 등은 현지에서 조금씩 조달합니다. 그래도 하나 둘 버리거나 숙소에 기부하게 되지요. 덜어진 무게의 몇 곱으로 힘도 덜 들고 가벼워진 걸음에 즐거워집니다.
여왕의 다리, 그 아래 쉼터
여왕의 다리 아래에 있는 쉼터입니다. 급하게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입니다. 순례길 옆으로 잠시 내려가 보면 의외로 크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널찍한 명당이 나타납니다. 배려와 여유, 공학과 역사가 배어납니다.
끼리끼리 모여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오후 느지막이 다리를 건너서 뒤돌아보면, 순례자를 위한 배려 같은 따뜻한 햇살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여유롭게 걸어야 이런 명당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피레네에서 하룻밤
많은 순례자들이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고서는 무척 힘들어 합니다. 해발 200m에서 1,430m까지 올랐다가 가파르게 950m까지 내려가는 26km 여정. 너무 가혹한 첫날입니다. 산이라 숙소가 드문데다 시작인만큼 힘과 의욕이 넘치고, 대부분의 안내서가 26km를 걷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7km 거리에 오리손Orisson산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날 묵는 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여러 나라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멋진 풍광에 가슴 설레며 몸도 워밍업 시킬 수 있는 피레네에서의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됩니다. 첫 며칠만 20km 이하로 조금씩 걸어 몸을 적응시키면 순례 전체가 쉬워집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도 처음은 제자리걸음처럼 천천히 걷습니다.
우산은 필수도구
스페인의 태양은 강렬합니다. 그늘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평원에서 걷다보면 '태양의 나라'라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이때 자외선 차단이 되는 우산은 큰 보탬이 됩니다. 다른 어떤 방법보다 효과가 큽니다. 가벼운 우산을 배낭에 착탈식으로 고정하면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금상첨화입니다.
급작스럽거나 웬만한 비에도 효과적이고, 여성이라면 허허벌판에서 생리작용을 해결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고생하지 않고 즐겁게 순례하기 위한 방안을 말할 때 항상 첫 번째로 꼽는 품목입니다.
우산을 배낭끈에 고정한 제 모습을 다른 여행자가 찍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우산 쓰고 날아다닌다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묻지도 말고, 아는 척도 말아야
순례길을 가다 보면 가끔씩 배낭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혹여 누가 흘리고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지요. 그런데 이는 착각입니다. 워낙 마을이 드물고 또 있다 해도 카페나 가게가 없는 경우도 많아 제 때에 생리작용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자연의 부름에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같이 가던 일행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타날 때는 묻지도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순례길의 예의입니다.
야외 쉼터
상당히 자주 보이는 야외 쉼터입니다. 크고 작은 마을이나 도시도 지나지만 대부분 산이나 들판을 지나는 순례길은 제대로 쉴 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쉼터를 만나면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가 바로 이런 쉼터를 만나는 느낌일까요.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피로도 외로움도 사라져버립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가 먼 경우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파는 푸드 트럭이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어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쉼터 역할도 합니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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