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마지막 승부를 좋아했던 소년, '코치 백인선'이 설정한 목표는?

손동환 2022. 8. 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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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7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6월 17일 오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1년 정기 구독 링크)

‘마지막 승부’를 좋아했던 소년은 프로 무대에서 364경기를 뛴 선수로 성장했다. 프로 무대를 오랜 시간 경험했던 선수는 이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실패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러나 실패를 발판삼아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렇게 코치 5년차를 보내고 있다. 천안쌍용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백인선의 이야기다.

마지막 승부
1994년. 장동건-손지창-심은하-이상아 등 초호화 배우진이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했다. ‘마지막 승부’는 대학 선수들의 농구와 사랑 이야기를 동시에 담은 드라마. 하이틴 스타들의 출연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마지막 승부’의 열기는 19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의 인기와 결합됐고, 1990년대가 한국 농구의 최대 부흥기로 거듭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80년생인 백인선도 한국 농구의 부흥기를 직접 경험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 때문에 농구의 매력에 빠졌고, 백인선은 ‘마지막 승부’ 때문에 농구공을 잡았다. 목포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농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에 키는 컸지만, 농구를 많이 접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승부’를 보고,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졌어요.(웃음) 그걸 보고, 부모님을 졸랐죠. 정말 단순한 이유로 농구를 하게 된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해체된 목포상고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방에 있는 학교이기는 했지만, 선배님들께서 농구를 잘하셨습니다. 김현국 경희대 감독님께서 1회 선배님이셨고, 박종천 KT 코치님도 학교 선배님이세요. 그리고 경희대 코치였던 우승연이 제 후배였고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웃음) 성적도 좋았고요.
그 후 고려대로 진학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강하고 패기 넘치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오용준(은퇴)과 김동욱(수원 KT), 김일두(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과 함께 뛰었습니다. 고려대 시절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전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연세대에 많이 밀렸어요. 개인적으로 돌아본다면, 후회도 많이 남아요.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시간도 있었어요. 2002년 정기전이 그랬어요. 누가 봐도 연세대가 유리한 전력이었는데, 오용준 선배가 53점을 넣었거든요.(웃음) 저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겼기 때문에,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화려하지는 않아도
백인선은 2004년 KBL에 입성했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묵묵하게 성실히 제 몫을 해냈다. 백업 빅맨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착실히 했다.
프로에서 딱 10시즌을 소화했다. 출전 경기 수는 364경기. 프로 마지막 시즌에는 지도자를 위한 준비도 착실히 했다. KBL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유재학 모비스 감독(현 울산 현대모비스 총감독) 옆에서 지도자가 지녀야 할 사항들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대구 오리온스(현 데이원)에 입단했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오리온스에서 뛰셨는데요.
가고 싶었던 팀에 가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김진 감독님께서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신인치고는 경기에 많이 뛸 수 있었죠.(백인선은 2004~2005 시즌 53경기에서 평균 13분 35초를 뛰었다) (김)병철이형(전 고양 오리온 수석코치)과 (김)승현이형(전 해설위원) 등 대스타 선배님과 뛴 것도 좋았어요. 그 때는 제가 어렸기 때문에, 마냥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2009~2010 시즌에는 창원 LG로 트레이드됐고, 2010~2011 시즌에는 서울 SK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이적을 하셨는데요.
LG로 트레이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조금 그랬습니다.(웃음) 버려진다는 느낌이 있었죠. SK로 트레이드될 때도 그랬지만(웃음), 첫 트레이드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다행히도 LG에서 좋은 시즌을 보냈어요. LG와 좋은 추억이 있었죠. 그래서 FA(자유계약)가 된 후에도, LG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2011~2012 시즌부터 2014~2015 시즌까지 LG 소속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렇지만 LG가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을 했을 때, ‘선수 백인선’은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LG가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 결정전을 간 2013~2014 시즌에는, 제가 은퇴하기 직전의 상태였어요. (문)태종이형과 (김)종규가 합류했기 때문에, 제가 뛸 자리는 더 없었고요.
돌이켜보면, 벤치에 있다가 코트로 나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경기 리듬에는 좋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식스맨들이 똑같은 상황이었어요. ‘기회가 조금 더 주어졌다면 잘할 수 있을 건데...’라는 생각도 비슷할 거고요. 그렇지만 다들 그 조금의 시간을 위해 많은 땀을 흘립니다.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시간을 뛰었다면...’이라는 후회가 남아요.
2014~2015 시즌 종료 후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2명의 외국 선수가 2~3쿼터에 뛸 수 있었습니다. ‘선수 백인선’의 출전 기회가 더 줄었는데요.
(백인선은 해당 시즌 17경기 평균 5분 41초를 나서는데 그쳤다)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 없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유재학 감독님한테 배우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유재학 감독님한테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재학 감독님께서는 수비를 더 디테일하게 신경 쓰셨어요. 제가 비록 모비스에 1년 밖에 있지 않았지만, ‘수비 로테이션이 정말 잘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맞추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 그런 수비 조직력과 시스템이 너무 좋더라고요.

은퇴 그리고 제2의 인생
‘선수 백인선’은 2015~2016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1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018년. 백인선은 천안쌍용고의 코치로 부임했다. 프로 무대를 오랜 시간 경험했던 백인선은 현재 학생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학생 선수들의 수준에 맞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어떤 거였나요?
신체적인 기능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특히, 무릎 부상이 심했어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 후 회복해서 뛰기에는 나이가 많았어요. 진통제를 먹으면서 1년을 버텼죠.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의 몸이 됐습니다. 진통제도 먹히지 않았죠.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은퇴 직후에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1년 정도는 집에서 쉬었습니다.(웃음) 선수 시절에 못했던 육아도 했고요. 그 후에는 전주고등학교에서 5개월 동안 A코치를 맡았습니다.
2018년 천안쌍용고의 메인 코치로 부임하셨습니다. 어떤 걸 먼저 하셨나요?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의 신장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수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본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 개인적으로 농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기가 없었거든요. 기본기가 없어서 어려운 점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기를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고등학교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대회가 있고, 저희도 매달 대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제가 기본기를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어요. 그런 점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학생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아직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소화 능력이나 이해력이 떨어져요. 하지만 저는 부임 초기에 프로에서 배웠던 것들을 많이 적용했습니다. 이것저것 다해봤어요. 그렇지만 실패한 게 많았어요.(웃음)
그래서 잘하는 고등학교의 운동 방식을 봤고, 특정 학교에서 오랜 시간 지도하셨던 분들의 노하우를 공부했습니다. 그런 노하우를 적용했더니, 아이들이 확실히 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욕심을 내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인정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게...”
백인선은 학생 선수들만 5년 넘게 가르치고 있다. 특히, 4년 동안 천안쌍용고 선수들만 가르치고 있다. 최근 아마추어 무대의 추세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코치 백인선’은 ‘선수 백인선’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농구인으로서 한 단계 발전했다. 자신만의 지도 철학도 확고해졌다.
그래서 “나를 거쳐간 아이들이 ‘이거 하나는 잘 배워왔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다. 남들이 봤을 때 인정 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지도자로서의 목표도 확고히 설정했다. 그리고 천안쌍용고 선수들에게 많은 응원을 당부했다.

한 학교를 4년 넘게 맡고 있습니다. 코치로서의 역량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일로 보이는데요.
글쎄요.(웃음) 지역의 특성도 있을 것 같고, 학교의 특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성적을 원하기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지도 방식을 원하거든요. 그런 시스템이 잘 구축됐기 때문에, 제가 4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구를 보는 눈이 예전과는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코치로 부임한 직후에는 프로 팀과 대학교 팀의 노하우를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고등학생의 수준에 맞춰서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만의 차별화된 요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교와 상명대학교와의 연습 경기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연습 경기 후 상대 팀의 좋았던 요소를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거든요. 다행히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잘 따라와서, 그런 시스템을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선수 시절 우승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로서는 결승전을 가보지도 못했어요. 지도자로 있는 동안, 우승 트로피를 꼭 거머쥐고 싶어요.
또, 저를 거쳐간 아이들이 어느 팀으로 가든, “이거 하나는 정말 잘 배워왔다. 이거 하나는 정말 탄탄하네”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백인선’을 기억하시는 분들한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선수 생활을 은퇴했지만,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하고 있습니다. ‘선수 백인선’이 아닌, ‘지도자 백인선’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천안쌍용고 선수들에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KBL 제공, 백인선 제공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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