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美 만화 '피너츠' 그린 찰스 슐츠,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북돋다
1970년대 스포츠는 남학생 전유물 여겨
여학생들은 기껏해야 치어리더 활동 그쳐
美 여성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 만남 계기
여학생과 여성들의 스포츠 열정적 지지
만화속 여자 아이 캐릭터 스포츠광 묘사
운동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인식 퍼뜨려
미국에서 흔히 ‘레드 스테이트(red state)’라고 불리는 공화당 우세주에서는 조 바이든이 이끄는 연방 행정부와 끊임없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 사이의 갈등은 트럼프 행정부 때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라 불리는 진보 성향의 (혹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들이 연방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일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남부를 중심으로 한 레드 스테이트에서는 연방 정부의 힘을 최소화하고 주의 자치권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싸움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흥미로운 게 있다. 문제의 핵심이 되는 ‘타이틀 나인’은 원래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할 때 남학생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니, 정확하게는 이 법이 만들어진 1970년대에도) 여학생들의 교내 운동은 권장되지 않았다. 체육시간에 하는 활동이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미식축구와 야구, 하키 등의 스포츠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이런 종목들은 남학생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여학생들은 기껏해야 치어리더 정도의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흔했다.
그 결과 여학생들의 교내 운동경기 참여율은 아주 저조했고, 이는 각종 체육활동에 관한 관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에 이어 1970년대에는 여성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고, 이 문제가 지적되면서 연방 정부가 타이틀 나인을 통과시켜 각급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팀에서 여학생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게 한 것이다. 법조문 자체는 짧지만 그 효력은 컸다. 가령 어떤 학교가 남학생들만 참여하는 미식축구팀에만 학교의 체육예산을 쓰고 있으면 여학생들이 할 수 있는 스포츠에도 동일한 예산을 쓰도록 했고, 주말 저녁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볼 수 있는 황금시간대를 남학생들만 참여하는 스포츠팀의 경기가 독차지할 경우 이를 시정해야 했다.
하지만 많은 진보적인 법들이 그렇듯, 이 법도 보수적인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지역에 따라서는 이에 저항하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요즘 공화당 우세주에서 이 법을 성소수자 학생들의 권리 확보에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이 법을 지지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스누피’로 더 잘 알려진 만화 피너츠(Peanuts)를 그린 찰스 슐츠(Charles Schulz)였다.
지난 글에서 캐서린 스위처가 1967년에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해서 완주한 첫 여성이 되었고 그런 그를 도운 남성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찰스 슐츠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여성들의 스포츠 활동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려 50년 동안 신문에 실리면서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슐츠의 만화가 미친 영향력은 크다. 워낙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만화였기 때문에 여성의 스포츠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슐츠의 만화는 아무런 반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남성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상식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백마 탄 기사’가 아니다. 이를 강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슐츠의 아내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을 떠난 남편의 활동을 이야기하면서, “하지만 이 법을 통과시키고, 이의를 제기하고, 이 어젠다를 살려낸 것은 여성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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