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년] ⑤ 곡절 많았던 30년사 10장면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3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갈등 요인으로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한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10장면을 추려본다.
한중 수교협정 체결(1992)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한국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서명했다.
6·25 전쟁에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눴던 양국이 1953년 정전 39년 만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포스트 냉전의 훈풍을 타고 이뤄진 한중 수교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북방외교,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유혈진압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의 외교적 고립 탈출 시도 등 쌍방의 전략과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황장엽 망명과 중국의 역할(1997)
.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7년 2월 12일 일본에서 세미나를 마친 뒤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한국행 불가'를 중국 측에 요구하는 동시에 특수요원들을 투입해 한국총영사관을 포위했다.
주중대사관과 외교부에서 파견된 협상팀의 노력과 중국 측의 양해로 황씨는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도 필리핀을 거쳐 그해 4월 20일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도 자국으로 인도를 원하며 치열한 물밑 공작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진 황장엽의 한국 망명은 수교 직후 한중 관계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역사 왜곡 동북공정(2002~)
동북공정은 중국이 동북 지역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동북공정의 정식 이름은 '동북 변경 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일련의 연구 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다. 중국 정부 직속 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의 '변경사지연구중심'이 연구를 주도했고 한반도 접경 지역인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린성 등 동북 3성이 동참했다.
한국 측의 강한 반발 속에 프로젝트는 2007년 일단락됐지만, 현재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역사 왜곡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2004년 교육부 산하에 고구려연구재단을 설치했고, 2006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켜 대응에 나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영토 중심적 사관에 근거한 왜곡된 한국사 인식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격상(2008년)
수교 당시 선린우호 협력 관계로 출발한 양국은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은 데 이어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양국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그해 8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6자회담에서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각국의 치열한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이 참여한 다자회의체인 6자회담은 시작부터 중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6자회담은 북한의 거듭된 합의 파기로 2008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고 있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등의 과정에서 중국은 나름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과 후진타오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은 지역과 세계에서 전략적 협력을 지향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현재에 이른다.
시진핑 첫 방한과 박근혜 '망루외교' (2014·2015)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2년째인 2014년 7월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한 것은 훈풍이 불었던 한중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에 화답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듬해인 2015년 9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도자들이 보이콧한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선 장면을 두고 한중 간 '밀월시대'의 개막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과 밀착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의구심도 낳아 한중 '밀월'의 상징인 동시에 한국 외교의 '딜레마'를 보여준 일로도 평가됐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2015)
한중 경제협력의 새로운 이정표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3년여의 협상 끝에 2015년 12월 20일 공식 발효됐다. 핵심 내용은 최장 20년에 걸쳐 전체 품목의 90% 이상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농축산 업계의 피해를 줄이고자 쌀과 양념 채소·과실류, 고기, 수산물 등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고 중국은 자동차를 포함한 일부 핵심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키로 했다. 한중 FTA 체결 이후 양국 무역 규모는 증가세를 보이는 등 FTA 효과가 나타났지만, 한국의 대중 수출 증가 폭보다 대중 수입 증가 폭이 커 대중 흑자가 감소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한국은 2019년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이자 한국의 첫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동참도 확정했다. 한중 FTA는 현재도 서비스·투자 분야 등에 대한 후속 협상이 진행 중이다.
사드 배치 결정과 중국의 반발(2016∼)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보복은 그나마 순항하던 한중관계에 커다란 암초가 됐다. 한미가 2016년 2월 사드 배치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중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이란 한미의 설명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안보 이익을 훼손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은 갈수록 노골화됐고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관련 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드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 진행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중국은 사드 3불(사드 추가않고, 미국 미사일방어·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에 더해 주한미군에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을 의미하는 '1한'까지 거론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나서 갈등의 골을 메우기 위한 작업은 더 험난해질 전망이다.
무역 3천억 달러 돌파(2021)
한중 무역 규모는 수교 당시인 1992년 63억 달러에서 약 30년 만에 3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2021년 기준으로 대중 수출은 1천629억 달러, 수입은 1천386억 달러로 대중 교역 규모는 3천15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기준 대중 무역 흑자는 243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제1위 교역국으로 올라선 이후 최대 교역국이자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을 제외할 경우 제2위의 무역 흑자국이기도 하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의 제3위 교역대상국이며 특히 올해 1~4월만 따져보면 한국은 미국에 이은 중국의 제2위 교역대상국이 됐다.
요소수 파문과 글로벌 공급망 문제(2021)
중국은 지난해 10월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수출 의무화 조처를 하면서 시중에 풀렸던 물량이 동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소수 품귀 사태가 빚어졌다.
유독 디젤차 비중이 높은데다 요소의 거의 전량을 중국에 의존하던 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와이어링 하니스(배선뭉치) 공급중단에 이은 요소수 사태는 특정 원자재와 부품의 대중국 의존도를 고스란히 드러내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왔다.
요소수 파문 속에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은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반도체 공급망 대화(이른바 '칩4' 또는 '팹4')를 제안하는 등 동맹 및 파트너 국가 등을 위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IPEF 참여를 공식화한 데 이어 칩4의 예비회담에 참여키로 하는 등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동참하는 한국은 최대 교역국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게 과제다.
한류·한복·김치·한한령 등 문화·국민 갈등(2022)
1990년대 말 TV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중국 내 한류(韓流)는 점차 가요와 영화, 패션, 음식, 게임 등 문화 전반으로 확산했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는 대륙을 뒤흔들 정도의 인기를 누렸고 2016년에 방송된 '태양의 후예'도 각종 화제를 낳으며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은 '한한령'으로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을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했고, 중국 내의 반한 감정도 커졌다.
올해 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의 한복 논란과 쇼트트랙 판정 오심 등은 여기에 불을 붙였다. 중국에서도 올림픽을 계기로 '애국주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 상황에서 날카로운 반한 목소리들이 SNS 등에서 넘쳐났다.
한국 전통 음식인 김치를 놓고 벌인 한중간 김치 기원 논쟁과 방탄소년단(BTS)이 한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소감에 '한국전쟁'을 언급한 데 대해 중국 누리꾼들이 비난한 사건도 양국 젊은이들 간의 정서적 괴리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양국 문화·국민 갈등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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