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㉛] 정우성의 직구, 이정재의 변화구..'헌트' vs '태양은 없다'

홍종선 입력 2022. 8. 16. 07:01 수정 2022. 8. 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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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도철과 홍기가 칸에 나타난 듯했던 2022년의 5월 어느날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3년 전 정우성은 도철이었고, 이정재는 홍기였다.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였다. 그로부터 23년 후 정우성은 정도이고, 이정재는 평호다. 영화 ‘헌트’에서다. 각색하고 연출한 이정재 감독의 의도가 있었든 없든 도철과 정도, 홍기와 평호는 이어져 있다. 정우성은 스트레이트, 직구를 던지는 배우이고 이정재는 커브, 변화구를 던지는 배우다. 정우성은 직구로 도철과 정도를 탄생시켰고, 이정재는 변화구로 홍기와 평호를 빚었다.


‘태양은 없다’(감독 김성수, 제작 우노필름)의 홍기와 도철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청춘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성취하는 방법이 달랐다. 도철은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뭉친 주먹이었고, 자신이 유일하게 잘하고 마음이 가는 권투로 사랑과 우정을 얻고자 했다. 압구정 30억 원짜리 빌딩을 갖는 욕망이 홍기를 뜨겁게 데웠고, 도둑질이든 배신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얻고자 했다.


1999년이 아니라 2022년이라고 해도 믿어질 그들의 뒷모습 ⓒ우노필름 제공

정우성은 마치 이도철 그 자신인 듯, 아니 도철은 우성 그 자체인 듯 인간의 꿈과 열정을 도철에 실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안한 청춘을 연기했다. 순수한 직구로 우리를 사로잡았고 우리는 도철을 아끼는 마음에 그의 사랑을 응원했고, 아니 그 전에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이정재는 서울 압구정 어딘가에 가면 어깨를 스칠 것 같은, 끔찍한 현실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인간적인’ 우리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진폭이 큰 변화구로 캐릭터를 변주했고 좋아할 구석이 드문 인물임에도 연민을 갖도록, 홍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20대 두 배우에게 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순수의 결정체’ 도철도, 세상 어디에도 있을 것 같은 ‘욕망의 덩어리’ 홍기도, 연기하기에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홍기가 더 녹록잖아 보였다. 청춘의 나이에 순수는 더 가까워 보였고, 불규칙한 변화구는 노련미를 요했다.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게 '헌트'의 가장 큰 반전 ⓒ이하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헌트’(감독 이정재, 제작 ㈜사나이픽처스·㈜아티스트스튜디오,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정도와 평호는 대한민국 1호(대통령)를 사냥하려는 첩보원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것을 통해 추구하는 대의명분이 다르다. 한쪽은 한반도 평화통일, 다른 쪽은 독재자의 심장을 거두고 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희망한다. 국가의 안위를 지킨다는 정보부 주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역설적으로 반란 그 이상의 사냥 작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인물들이다.


배우 이정재는 연출을 겸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이중삼중의 비밀을 지닌 인물,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박평호를 변화무쌍하게 연기했다. 그의 선택은 종종 악행과 권모술수인데, 그를 악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평호를 표현했다. 살고 싶은 욕망, 생존본능은 야수의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평범한 우리 인간의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배우 정우성은 다시 한번 순수한 애국, 진정한 애민이라는 태양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김정도를 향해 정면으로 달렸다. ‘군인 출신의 첩보원이 어떻게’가 아니라 세상에 군인이 탄생하고 존재하는 근원과 이유를 잊지 않은 진짜 군인의 모습으로 위민애국을 토해냈다. 그의 선택은 야수가 된 집단 밖에서뿐 아니라 꿈꾸는 무리 내에서도 정의롭다. 무엇을 위해 사냥을 시작했는지 잊지 않는다. 흔들림 없이 직구로 과녁을 향해 쏜다.


캐릭터는 배우의 인생에 빚진다, 정우성이어서 가능했던 김정도. 도철, 정도, 배우 정우성은 바른 길을 탐색하는 캐릭터에 제격이다 ⓒ

오십을 바라보는 두 배우에게 있어 우리의 현대사와 오점과 희망을 의인화시킨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 그것도 뜨거운 온몸 액션과 차가운 신경전으로 표현한다는 게 쉬운 숙제는 아니었을 터. 두 배우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지만, 캐릭터만 본다면 정도가 더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백 년을 산 배우에게서 순수한 애국, 진정한 애민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맡아온 캐릭터로 애국의 이미지가 쌓여 왔어야 하고, 살아온 면면으로 애민이 비춰야 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라면 이정재와 다른 색깔의 평호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정도 역에는 정우성 외 대안을 찾지 못하겠다.


영민한 감독 이정재는 이를 정확히 알았고, 세 번의 거절 끝에 네 번째 수락으로 배우 정우성을 잡았다. 정우성은 ‘인생작’을 고쳐 쓰는 연기로 화답했다. 김정도 역에 정우성이면, 당연히 박평호 역에는 이정재가 최상의 조합이다. 그 이상은 없다. 감독 이정재는 이를 명확히 알았고, 자신을 캐스팅했다. 덕분에 영화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이 훈훈한 투샷이 ‘헌트’의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었고,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달궜다.


인생, 한 명이라도 '친구'를 얻어가는 과정 ⓒ

현실 ‘깐부’ 친구의 흔치 않은 협주와 동시 입장이 반가운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이 투샷이 너무나 반가운 이유는 처음에 밝힌 대로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23년 전 함께 연기한 캐릭터의 고갱이가 그대로 보존된 채 23년 후의 작품에 등장하니 소름 돋게 특별하다. 그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배우들의 연기법 역시 그대로이고, 그대로이되 더욱 깊어진 오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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