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질문 나오면 답변 피하거나 "다른 질문 없죠?"[윤석열 정부 100일..출근길 문답 분석]
대통령실, 해당 내용 공식 기록·관리도 안 해
총 138건 질문 중 15건 답변 피하거나 거부
정치·인사 및 전 정부 언급 땐 반문 화법 사용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부터 해온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역대 다른 대통령처럼 참모들 뒤에 숨지 않고 직접 대국민 소통에 나선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윤 대통령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거침없는 화법은 청와대 개방 등과 맞물려 탈권위적이고 친근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
이처럼 집권 초반 득점 포인트로 작용했던 출근길 문답은 갈수록 마이너스 효과가 커지는 양상이다. 인사 참사, 비선 논란, 여권내 권력 다툼, 막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은 마이크 앞에 선 대통령에게 이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문제는 주요 현안이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정제되거나 조율되지 않은 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맥락없는 답변은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고 참모들이 대통령 발언을 수습하느라 급급한 모양새가 반복되면서 오히려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용산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 내용을 공식 기록하지도, 관리하지도 않는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7조는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되도록 해야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출근길 문답 속기록에 대한 경향신문의 정보공개 청구에 “해당 속기록은 대통령실에서 작성할 의무가 없는 문서”라고 답변했다. 또 관련 법 조항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공식적인 직무 수행 및 일정에 관한 과정과 결과를 기록물로 생산·관리하라는 취지이지 대통령의 모든 발언을 속기록 형태로 생산·관리하라는 취지가 아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입장을 육성으로 내놓는 출근길 문답이 공식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인사 현안에 답변보다 반문…“자신이 권력자임을 드러내는 태도”
대통령실이 “비공식 업무”라고 규정한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있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지난 5월11일부터 진행한 총 35번의 출근길 문답을 분석했다.
이달 16일까지 출근길 문답에서 나온 질문은 총 138개였다. 여야, 국회 상황(원구성 등), 지방선거 결과 평가 등 정치 현안 관련 질문이 57개(41.30%)로 가장 많았고, 장관 후보자의 각종 의혹이나 임명 여부 등 인사에 대한 질문이 33개(23.91%)로 뒤를 이었다(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시위,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탈북민 강제북송 등도 정치 이슈에 포함함). 외교안보 관련 질문은 18개(13.04%), 사회 16개(11.59%), 경제 13개(9.42%) 순이었다.
전체 138개 질문 중 윤 대통령이 답변을 하지 않은 질문은 15개였다. 이 중 10개는 출근길 문답을 마치고 떠나는 윤 대통령의 등 뒤에 던져진 질문이었고, 5개는 윤 대통령이 “다른 질문 없죠?”(5월17일 윤재순 총무비서관 논란),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내일 하십시다”(7월8일 국정원의 박지원 전 국정원장 고발), “다른 말씀 또 없으세요?”(7월18일 대통령실 채용 논란), “거기에 대해선 더 답변 안할게요”(7월20일 대우조선해양 파업), “다른 질문 없으세요?”(7월21일 이른바 ‘스타 장관’ 관련) 등 답변을 피하거나 거부한 경우였다.
답변하지 않은 경우는 정치 분야(8건)가 가장 많았고 사회(4건), 인사(3건) 순이었다.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나 경제 관련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경우가 한 차례도 없었다. 글자 수 기준(공백 제외)으로 가장 길게 답변을 한 질문도 1~2위가 경제(6월17일 부자감세 논란·406자, 7월8일 비상경제회의 각오·380자)였다. 답변이 가장 짧은 경우는 인사(5월12일 5자) 분야 질문으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 안된 장관도 임명하실 계획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오늘 일부만”이라고 답했다.
취재진 질문에 윤 대통령이 반문 형식으로 답을 대신한 경우는 답변을 한 질문 123건 중 33차례(26.83%)였다. 주로 정치(17건), 인사(11건)에서 반문이 많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임명 안 한 장관 후보자가 몇 분 있죠?”(5월17일)라고 답하거나, 화물연대 파업 대응 방안을 묻자 “국토부에서 어떤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6월9일)라고 되묻는 식이다. 윤 대통령의 반문은 이전 정부를 언급할 때도 자주 사용되는 화법이었다. 윤 대통령은 138개 문답 중 5차례에 걸쳐 지난 정부(민주당 정부·전 정부 등)를 직접 언급하며 비판했는데, 이 중 3차례 답변에서 반문 화법이 사용됐다. “민주당 정부 때는 안했습니까?” “지난 정부 때 종부세 이런 것들은 거의…세금이라는 건 징벌적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등이었다.
‘법과 원칙’을 앞세운 답변은 총 16차례로 정치(8건), 사회(4건), 인사(2건) 순이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 및 서초동 맞불 시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논란 등의 정치 현안에 주로 “법에 따라” “헌법정신”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 등을 언급했다. 또 화물연대 파업이나 대우조선해양 파업 등 사회 분야 현안을 놓고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토하겠다’ ‘챙겨보겠다’ ‘확인하지 못했다’ 등 답을 유보하는 경우는 총 22건이었고 인사(10건) 관련 질문에서 가장 많았다. 전체 138개 질문 중 62건(44.93%)이 답하지 않거나 반문 또는 유보적 답변을 한 경우였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반문 화법이 답을 할 의무에 충실하지 않고 답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관 후보자 의혹 관련 질문에 “어떤 후보자죠?” “어떤 의혹이죠?”라고 되묻거나 국정수행 부정평가 관련 질문에 “원인은 언론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받아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시민으로부터 질문할 권리를 위임 받은 기자들에게 반문으로 답하는 것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갖는 설명할 의무, 답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며 “질문의 본질을 비트는 반문으로 답을 피하는 행동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드러내는 태도”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출근길 문답 형식 자체가 깊이 있는 질문이 오가기 어려운 구조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자들의 예리하고 집요한 질문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윤석열 대통령 100일의 출근길 문답
▶기사 링크 :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208161044001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이수민 기자 water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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