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대 두 번째 죽음, 군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이은기 기자 2022. 8. 1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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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9일 공군 여군 부사관이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가 근무하던 부대다.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에도 군이 유가족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됐다.
7월21일, 사망한 공군 강 하사가 머물던 관사에 들어가려다 군에 저지당한 유가족. ⓒ유가족 제공

“그냥 군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뭐가 좋다고 와서는. 군 입대만 안 했어도 지금보다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진짜 후회한다.” 7월19일 오전 8시께 공군 여군 부사관이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사망한 강 아무개 하사(21)의 유서로 추정되는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지난해 2월 임관한 강 하사는 두 달 뒤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비)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20비는 성추행 피해 뒤 사건 은폐 협박, 2차 가해 등에 시달리다 지난해 5월21일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가 근무하던 부대다.

강 하사의 아버지가 기억하는 딸은 말수가 적지만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중학생이던 강 하사는 진로상담 과정에서 공군 항공과학고등학교(항과고)를 알게 됐다. 항과고를 졸업하면 공군 부사관(하사)으로 임관해 7년간 의무 복무한 뒤 전역하거나 군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 강 하사는 가족에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데 이 학교에 가는 게 좋겠다”라고 말하곤 항과고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강 하사는 항과고에 지원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남들처럼 일반고에 가라고 말렸지만, 강 하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학교 자퇴서를 내고 검정고시를 치르며 다시 항과고 입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듬해 항과고에 합격해 ‘공군 부사관 후보생’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강 하사의 아버지는 당시 강 하사가 집을 떠나 항과고가 있는 타지인 경남 진주에서 생활하는 게 걱정이었지만 “딸이 고집스럽게 선택한 길이었다”라고 기억했다.

항과고 졸업과 동시에 시작된 군 생활은 강 하사의 기대와 달랐다. 7월27일 군인권센터가 일부 공개한 강 하사의 다이어리에는 부대 내 괴롭힘 정황이 담겨 있었다.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한테 다 뒤집어씌운다.” “교육사 체검(체력검정) 담당 중사, 니가 뭔데. 앞뒤 안 따지고 만만해 보이는 하사 하나 붙잡아서 분풀이하는 찌질이 ××.”

〈시사IN〉이 추가로 입수한 다이어리에서는 강 하사가 사망을 염두에 두고 지난 몇 달간 신변 정리를 해온 정황이 파악됐다.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 이외의 또 다른 괴롭힘이 있었을 가능성도 확인됐다. “힘들고 외롭고 괴롭고 죽고 싶을 때마다 이 노트에 하소연하다가 뜯어내 버리기를 수십 번 반복한 지 꽤 된 거 같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종이도 내가 뜯을지 다른 사람이 읽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한탄하며 써 내려가네. 부디 극복해내서 쓰레기봉투에 담겨 쓸쓸히 있기를 바란다.”

강 하사의 아버지는 강 하사가 그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 강 하사는 가족에게 부대에서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았다. 강 하사의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들었다면 즉시 끌고라도 집에 데리고 왔을 거다. 자기 의지로 그 자리까지 힘들게 갔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말하기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고, 말해봐야 가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단정 지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강 하사는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예전에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스펀지처럼 통통 잘 튕겨냈는데 요즘은 다 굳어버렸는지 뭐가 날아들면 다 깨져버린다.” 강 하사의 관사에는 강 하사가 버리지 않고 모아둔 편지가 쌓여 있다. 이제는 각각 다른 부대로 흩어진 항과고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주고받은 편지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강 하사는 항과고 시절 우수한 학교생활을 했다. 선후배와 돈독했고, 입대 전 심리 검사 등에서 우울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군인권센터는 “망인이 입대 과정과 군 생활 중 무슨 일을 겪고 군 입대를 후회하며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인지 다면적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요구했다.

강 하사 사망사건이 발생한 충남 서산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정문. ⓒ연합뉴스

초동수사는 여전히 군이 주도해

‘강 하사 사망사건’ 수사는 지난해 8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진행된다. 20비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당시, 군사경찰과 군검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2개월 가까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군사법원법이 개정돼 올해 7월1일부터는 성범죄, 군인 사망사건, 입대 전 발생한 사건은 민간으로 수사권이 넘어갔다.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에도 초동수사는 여전히 군 수사기관이 주도한다. 대신 민간 수사기관이 현장 감식 등 초동수사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다양한 수사기관이 검증해 죽음에 의혹을 남기지 말자는 취지다. 이번 사건에서도 7월19일 오후에 시작된 현장 감식과 검시 절차에 공군수사단 외에 대전지검 서산지청, 충남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 유가족 2인, 군인권센터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초동 단계에서 경찰관이나 검사의 역할은 범죄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지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군 수사기관이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가 없다’고 판단하면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군사법원법 개정 뒤, 초동수사 과정에서 당장 ‘수사기록 공유’를 두고 민간 수사기관과 군 수사기관 사이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경찰관이나 검사가 변사 사건 수사에 의견을 내기 위해선 단순히 현장 감식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포렌식 결과, 주변인 진술 등을 참고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사기록이 필요하다.

7월27일 군인권센터가 사망한 강 하사의 유서에 부대 내 괴롭힘 정황이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대검찰청은 국방부에 ‘검사가 사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조사 자료 공유에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대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국방부에 공문을 보낸 이유를 “검사가 의견을 제시하려면 자료가 필요한데 (군 수사기관의) 제출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 군사법원법이 시행된 7월1일 이후 각 지방검찰청이 관할하는 군부대 내 변사 사건의 수사기록을 요청했지만 한 건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군이 수사기록을 감추면 외부에서는 사망한 군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 유가족이 수사기록을 확인한 뒤에야 공군이 뒤늦게 관련 혐의를 적용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공군은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ㄱ 하사(27·여)의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의 강제추행 사실을 확인하고도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를 문제 삼지 않았다. 공군본부 보통검찰부가 가해자를 뒤늦게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추가 기소한 건 유가족이 수사기록을 받아 가해자의 강제추행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시사IN〉 제749호 ‘공군 하사의 죽음 그 후 8개월, 진실을 찾아나선 부모’ 기사 참조).

국방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수사기록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은) 우리가 협조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공문을 받은 게 없었다. 말로 (수사기록을) 달라고 하는 건 오해가 있을 수도 있고 공신력이 없다. 공문이 정식으로 왔을 때 ‘기관 대 기관’으로 협조할 수 있다. 공문을 받고 나서 그다음 날 (수사 자료를) 다 보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8월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군이 민간에 자료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자 “제공해도 되는 거라면 최대한 제공하겠다”라고 답했다.

결국 공군은 최근 20비 강 하사 사망사건과 관련한 수사기록을 관할인 대전지검 서산지청에 보냈다. 대전지검 서산지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수사기록 ‘일부’만 받았다고 답했다. “수사 중인 사건이라 전부 말하기는 어렵다. 공문을 통해 (자료를) 요청 중이고 필요한 기록은 온 것도 있다.”

수사 과정에서 군이 유가족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7월19일 오후 현장 감식에 참여한 유가족은 이상한 일을 겪었다. 군이 유서로 추정되는 다이어리를 발견했지만, 유가족이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을 보기도 전에 ‘수사 자료’라며 봉인해버린 것이다. 유가족은 군에 항의한 뒤에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이어리엔 강 하사가 겪은 부대 내 괴롭힘 정황이 담겨 있었다.

유가족이 군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은 현장 감식 이후에도 이어졌다. 7월21일 유가족은 강 하사의 관사를 다시 찾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딸의 관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군은 관사 도어록을 수사 자료로 수거해간다는 명목으로 철거한 뒤 임의로 새 도어록을 설치했다. 유가족에게 바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강 하사의 유가족은 딸의 관사에 들어가기 위해 군에 항의하며 3시간가량을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유가족은 유품 하나하나 목록을 작성한 뒤에야 관사에서 강 하사의 유품을 가져올 수 있었다. ⓒ유가족 제공

감추는 곳에서 불신이 시작된다

관사에 들어간 이후 군과 유가족이 다시 충돌했다. 유가족이 수사 자료로 수거되지 않은 유품을 챙기자, 군이 막아섰다. 강 하사의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군은 유품을 유가족에게 넘길지 말지, 어떻게 넘길지 상부에 연락하며 오락가락 시간을 끌었다. 결국 하나하나 목록을 작성한 뒤에야 유품을 가져올 수 있었다. 감추는 곳에서 불신이 시작된다. 유가족은 군이 유가족을 ‘방해’한다고 느끼게 됐다.

유가족이 유품을 수거하는 과정에서야 강 하사의 관사가 1년 전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장소라는 걸 알게 됐다. 군이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이다. 해당 관사에 이예람 중사 남편 앞으로 날아온 군사법원 우편물 고지서를 유가족이 발견했다. 지난해 5월21일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해당 관사는 쭉 공실이었다. 유가족은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관사를 부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초임 하사에게 배정한, 부대 내 복지 대대에 책임을 묻는다.

강 하사의 시신은 처음 국군대전병원에 안치되어 있었다. 국군대전병원엔 냉동고가 없다.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선 냉동 보관이 가능한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야 했지만 난관이 있었다. 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검 부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시신을 옮길 수 없다며 가로막았다. 7월19일 현장 감식에 참여한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걸 입증하는 건 수사기관 몫이지 유가족이 확인하고 서명해야 하는 부분은 아니다. 외부에 책잡힐까 봐 유가족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데 부검 부동의서 서명이 시신 인도의 조건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군이 근거로 든 건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56조다. “군사법경찰관은 변사체를 검시한 결과 사망의 원인이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히 인정되었을 때 군검사의 지휘를 받아 소지품 등과 같이 시체를 유가족 등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김정민 변호사는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56조가 강제수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상위법인 ‘군사법원법’ 제231조와 제264조에 따르면 압수 영장 없이 유가족에게 강제로 시신을 빼앗아 부검을 강행하거나 유가족 동의 없이 소지품을 압수할 수 없다.

유가족은 군의 주장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부검 부동의서’에 서명한 뒤 시신을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겼다. 김정민 변호사는 당시 군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지침이 명확히 법규화돼 있지 않다 보니 혼선이 빚어졌다. 그런데 유가족 처지에서 귀한 딸이 사망했고, 냉장고에 있는 시신이 빠르게 부패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부검 부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시신을 이송하지 못하게 할 거라는 건 반인륜적인 행동이 아닌가. 유가족이야 마음이 상하든 말든, 군은 자기 할 일 한다는 태도다.”

강 하사의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군의 수사를 지켜보며 장례 일정을 정하려고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공군이라는 간판에 티끌 하나 묻지 않도록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군 가해자를 보호하는 거다. 어렵게 군사법원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법 개정 취지와 다르게) 여전히 은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강 하사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급격하게 청력이 약해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유가족은 군에게 강 하사를 힘들게 한 부대 환경을 면밀히 조사하고, 사망 원인에 대해 명백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경황이 없고 무척 혼란스럽지만, 군의 태도에 의심이 가는 부분은 “변호사와 철저히 파헤쳐나가야” 하는 일이 유가족 앞에 남게 됐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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