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시 '20년 내 반지하 없앤다' 집착부터 버려야

조선일보 2022. 8. 16.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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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창문 앞에 폭우로 침수된 물품들이 널브러져 있다./연합뉴스

서울시가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 주민들을 위한 지원·이주 대책을 발표했다. 10~20년 유예 기간을 주고 서울 시내 반지하 주택 20여 만호를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한 뒤 실효성 논란이 일자 닷새 만에 추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 20년간 노후한 공공임대주택 258개 단지(약 12만 가구)를 재건축할 때 용적률을 높여 23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고, 그중 일부를 반지하 주민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지하 주민이 민간 주택 지상층으로 옮길 때 월세를 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지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지하 주택은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폭우 시 물에 잠길 위험도 커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시가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을 준다. 서울시 대책은 지난 8일 밤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급조한 대책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며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정책 실효성도 여전히 논란이다. 당장 지하·반지하에 사는 20여 만 가구 모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임대는 수요에 비해 늘 공급 물량이 부족하다. 서울시 계획대로 20년간 지금보다 11만 가구가량을 늘린다 해도 반지하 가구를 모두 이주시킬 수 없다. 더구나 공공임대에는 반지하 가구만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공공임대에 들어가려는 기존 저소득층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더 비싼 임차료를 감당 못 해 지상층 이주를 원하지 않는 반지하 주민들도 있을 것이다. 반지하를 떠난 이들이 고시원이나 쪽방 등으로 이동하는 상황도 우려된다. 정교한 대책 없이 반지하 폐지를 추진하면 오히려 취약 계층의 주거 안정성만 흔들 수 있다.

반지하 주택이라고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고지대 반지하 주택도 있고, 침수 방지턱을 설치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이주 필요 여부 등을 가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제부터 ‘반지하 전수 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선후가 뒤집혔다. 서울시는 시한을 정해 반지하 주택을 전부 없애겠다는 목표에 집착하는 것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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