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파트와 테러’

김광일 논설위원 2022. 8. 1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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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가 뉴욕에서 흉기에 찔렸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올해 일흔다섯인 그는 1988년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 때문에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렸다. 그게 34년 전이다. 그는 인도 뭄바이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열네 살에 영국으로 유학하면서 종교관이 바뀐 것 같다. 국내에도 번역된 ‘악마의 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 둘을 매춘부 이름으로 부르는 등 “불경한 묘사”가 섞여 있다.

▶그가 2008년 본지와 국내 첫 인터뷰를 했다. 대면(對面)은 어려웠고, 뉴욕 자택으로 연결된 전화 통화였다. 당시에도 이미 책을 불태우는 시위로 열여덟 명이 숨졌고, 작가와 번역자를 겨냥한 테러로 서른일곱 명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문제의 소설을 내놓았던 첫해 무려 아홉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한 친구가 그에게 “너는 신문 1면 속으로 사라진 인간”이라고 했다니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그에겐 사형선고 비슷한 ‘파트와’가 내려져 있었다. ‘파트와’는 원래 이슬람 학자들이 율법에 따라 발표하는 칙명일 뿐이다. 지금까지 50개 가까이 된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탄산 음료를 마셔도 좋다’ ‘자살 테러에 반대한다’ ‘여성 록 밴드는 안 된다’ ‘담배 피우지 말라’ ‘여성은 취업할 수 없다’ 같은, 뭘 금지한다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이란에서 나온 파트와가 핵무기의 반입과 개발을 금지한 적도 있다. 가장 최근 파트와는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돼지 세포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MMR 홍역 백신을 금지했다.

▶7년 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비꼬는 만평을 자주 싣다가 편집진을 포함한 12명이 총기 난사 테러로 숨졌다. 30년 전 이집트에선 신성모독의 죄를 뒤집어쓰고 202명이 피살됐는데, 유명 작가 파라그 포다 역시 희생됐다. 세월이 흘러 방심한 탓에 경호가 느슨했던 것일까. 이번엔 루슈디였다. 그는 뉴욕 강연장에서 무대로 뛰어오른 스물네 살 시아파 극단주의 범인에게 목과 배를 열 차례 넘게 찔렸다.

▶이쯤 되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말이 오히려 한갓지게 들린다. 루슈디에게 내려진 파트와는 10년 뒤 공식 해제됐다지만, 근본주의 테러범에게는 평생 ‘스탠딩 오더’였던 셈이다. 이런 작가들은 때로 체포·구금·추방·테러의 위험 속에 목숨을 내놓은 채 글을 쓴다. 14년 전 본지 인터뷰 때 루슈디는 이렇게 말했다. “싫은 것을 싫다고 쓰는 것이야말로 작가에겐 유일한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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