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영화 같은 재난, 더 이상 기후변화를 의심하지 말라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22. 8. 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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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물폭탄은
우리가 배출한 탄소 때문에
치르고 있는 대가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탄소기반 산업구조 의존 땐
앞으로 매해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다
비가 당신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전에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에
진심으로 동참해야 한다

2022년 8월8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졌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여기저기 하늘에서 하염없이 물폭탄이 떨어졌다. 서울은 시간당 강수량 136.5㎜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였던 1942년 8월5일 118.6㎜의 기록을 80년 만에 갈아치웠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평균키가 122㎝ 정도라고 하니 136.5㎜의 비가 대략 9시간 내리면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남학생의 키 높이 정도의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9시간 동안 비가 온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양이 내린 것은 확실하다. 결국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물은 하염없이 차올라 도로의 모든 차들을 집어 삼켰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화한 것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폭우! 이것 자체가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도대체 이 많은 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물은 지구상에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바닷물, 호수, 강, 지하수, 토양 수분, 비, 공기 중 수증기 등 다양한 형태로. 지구상 물의 총량은 약 13억㎦로, 형태만 바뀔 뿐 항상 일정 양을 유지한다. 즉 바다에서 증발하여 비가 되기도 하고, 빙하가 녹아 바닷물로 바뀌기도 하며, 호수의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이 물은 절대 지구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난화로 인해 북극에서는 빙하가 녹고,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다. 이렇게 녹아내린 물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액체(바다, 강, 호수) 상태로 저장되어 있거나 기체(수증기)가 되어 지구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지금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많은 지역은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국 서부지역 또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콜로라도강 후버댐 미드호의 현재 수위가 1937년 물을 채우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일 정도로 물이 말라가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액체상의 물이 기체의 형태로 변하여 어딘가로 가버린 것이다.

결국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얼어있던 만년설이 단 일 년 만에 녹아서 생긴 물, 댐 위 호수에서 사라진 물은 지구를 돌고 돌아 어딘가에 집중호우가 되어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게 지구 물순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고 강력한 변화는 기후변화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오늘 한반도에 들이닥친 물폭탄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에 내린 비는 기상학적으로 볼 때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과 티베트 고기압의 충돌로 인한 정체전선으로 인해 내린 강수로 두 기단 충돌의 강도가 다소 강하기는 했지만, 보통 여름철 장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패턴이기 때문이다. 비를 내리는 정체전선의 메커니즘 자체는 여느 여름과 다른 아주 특별한 패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기후변화로 인해 빠르게 변하는 물순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강수량 더 널뛰는 쪽으로 기후변화

아직도 많은 분들이 기후변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온난화를 떠올리곤 한다. 보통 이렇게 장기간 평균적인 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성’을 대변하는 온난화를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알고 있기에 특별한 경향이 없는 강수량 변화 같은 경우 기후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이렇게 경향성을 가진 현상뿐만 아니라 ‘변동성’의 변화 또한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평균의 변화와 변동성의 변화에 대해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 5년 동안 여름철 강수량이 300㎜, 400㎜, 200㎜, 600㎜, 500㎜를 기록했다면(이 숫자는 100% 가정이다) 5년 평균 강수량은 400㎜이다. 그리고 여기서 매년 강수량의 편차는 평균과 매해 내린 양의 차이로 설명이 되어 -100㎜(300-400), 0㎜(400-400), -200㎜(200-400), 200㎜(600-400), 100㎜(500-400)이다. 여기서 변동성이란 5년 동안 매해 다른 양의 편차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해는 평균(평년이라고도 함)보다 비가 많이(+) 올 때도 있고 어느 해는 평균보다 적게(-) 올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시간이 흘러 2010년 초 5년에 강수량이 400㎜, 500㎜, 300㎜, 700㎜, 600㎜를 기록했다면, 평균 강수량은 5개 연도의 평균인 500㎜로 강수량이 증가해 누가 봐도 기후가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5년 동안의 강수량에 대한 편차는 -100㎜, 0㎜, -200㎜, 200㎜, 100㎜로 거의 동일한 분포를 보이기 때문에 변동성의 변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왔을 때를 비교해봐도 평균보다 200㎜ 이상 많은 해는 2010년대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비가 200㎜, 500㎜, 100㎜, 800㎜, 400㎜ 이렇게 내렸다면 5년간 평균이 400㎜이기 때문에 1990년대 초와 비교해 차이가 없으므로 자칫하면 이건 기후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매해 편차를 보면 -200㎜, 100㎜, -300㎜, 400㎜, 0㎜로 확실히 평균값에 대한 차이가 커지는, 즉 매해 변동 폭이 커진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변동성의 변화이며 이것 또한 분명히 기후변화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변동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면 1990년대에는 비가 많이 와도 평년에 비해 50% 정도 많았지만, 2010년대에는 평년에 비해 100% 더 내린 해가 나타난 것이다. 강수량이 늘어나 홍수 같은 호우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과거에는 적게 올 때 평년의 50%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 평년의 75% 이상 줄어든 해가 나타났다. 즉 강수량이 부족하여 가뭄이 발생할 확률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기온과 달리 강수는 뚜렷하게 평균값이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경향성이 없더라도 변동성이 뚜렷하게 커지면 가뭄과 홍수라는 양극단의 재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로 든 사례의 숫자들은 모두 편의상 사용한 것이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강수량의 변동성이 실제로 커지고 있다. 강수량의 널뛰기가 강해지는 방향으로 기후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불규칙한 변동성 완벽 예측 어려워

특별한 경향성이 없다는 것은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실제 강수량의 경년변화(연별 차이)는 예를 들어 설명한 가상의 강수량처럼 매해 규칙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경우가 드물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강수를 구성하는 물은 지구 물순환이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어 단순히 비를 내리는 구름과 여러 기상조건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 물순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의 변화를 함께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의 물순환은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바뀌고 있다. 변화하는 지구 물순환의 영향을 받는 강수를 과거 물순환의 변화가 없던 시절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물순환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불규칙한 강수량의 변동성을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격한 이 물폭탄은 기후변화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 맞다. 더 확실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고작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린 비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도로는 마비되고, 주택가의 나무들은 뽑혀 나가고, 지하철역이 침수되는 등 재난영화 같은 일들이 최첨단 디지털 과학문명 시대를 살고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배출한 그 많은 탄소로 인해 치르고 있는 대가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그대로 탄소 기반의 산업 및 경제 구조에 의존한다면, 앞으로 매해 오늘날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 많은 비가 당신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전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진심으로 동참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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