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 서방 국가인가 아닌가"

파리/정철환 특파원 입력 2022. 8.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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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며칠 전 “한국이 어째서 서방 국가인가”라는 독자의 질문을 받고 이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지난 9개월간 유럽의 국제정치 분석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면서 “한국은 스스로 서방 국가라고 생각하는 게 맞느냐’는 비슷한 질문을 받던 터였다.

오늘날 서방(西方)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서구의 가치관과 이익을 공유하고 그 체제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엔 공산국가들이, 지금은 권위주의 독재국들이 그 대척점에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확실한 서방 국가다. 20세기 이후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서방 세계의 틀 안에서 성장했다. 국체(國體)는 시장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삼권분립 등 서구적 가치에 바탕한다. 미국과 서방국들이 70여 년 전 자국민 15만명을 희생해 지켜낸 나라고, 이들과 교류·협력을 통해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서방을 대표하는 주요 8개국(G8)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국민은 물론 정치인들도 “한국은 서방 국가”라는 명제 앞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지어 이러한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국익’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처럼 회색지대에서 실리를 취하겠다는 얄팍한 논리가 현명한 지혜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퍼져있으니 동맹국의 의회 대표를 문전 박대 해놓고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궤변이 나온다. 줏대 없이 신뢰만 깎아 먹는 행태를 국익으로 분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한국의 대외정책이 다른 서방 국가나 동맹국을 추종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입장이 명확해야 자주적(自主的) 외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주를 핑계로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반복하면 국제사회의 신뢰만 잃는다. 그런 나라의 국익 판단은 국가 권력을 장악한 특정 세력의 이익일 뿐이란 인식을 준다. 많은 유럽의 대외정책 당국자들이 한국의 대 북한·중국·일본 정책을 놓고 그런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국의 진짜 속내가 뭐냐”고 대놓고 묻는 사람도 봤다.

안타깝게도 중국이 이를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 정체성이 약하고 심지도 굳지 못한 나라라 어르고 달래가며 조련(操鍊)하면 얼마든지 ‘중화 세계’에 종속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사드 문제를 놓고 내정 간섭이나 다름없는 행태로 한국을 계속 몰아붙이는 것도 그런 ‘가스라이팅’의 과정일 수 있다.

정체성 부족은 미성숙한 사람의 특성이다. 한국도 이제 그런 단계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세계가 신냉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어떤 전략을 세우든 ‘서방의 일원’이라는 자기 인식은 확실해야 한다. 박쥐의 우화처럼 모호한 자기 정체성에 빠져 오락가락하다간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게 된다. 국제 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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