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84> 영화 '엘비스'(감독 바즈 루어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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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난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골반을 봉인하여 춤을 끊은 지 오래지만, 어느 동생이 지난 기억을 굳이 헤집어 "형의 춤사위는 너무 문란했어요"라고 지적했다.
기성세대는 엘비스를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젠틀한 이미지의 백인 가수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의 소신에 따라 끝내 그의 골반을 봉인해제하고 기성세대 앞에서 보란 듯 골반이 부서져라 흔들었고, 그 결과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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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난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골반을 봉인하여 춤을 끊은 지 오래지만, 어느 동생이 지난 기억을 굳이 헤집어 “형의 춤사위는 너무 문란했어요”라고 지적했다. 억울했다. 나는 다만 춤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영화 ‘엘비스’는 어쩐지 바즈 루어만 감독의 1992년 할리우드 입성작 ‘댄싱 히어로’를 연상시켰다. 둘 다 춤추는 영웅 이야기다. 무려, 앨비스 프레슬리의 전기 영화라서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당시 퀸의 노래만큼, 앨비스의 노래가 거리 곳곳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길 바랐는데, 조용히 상영이 끝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이클 잭슨의 별명이 ‘킹 오브 팝(king of pop)’이었다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별명은 ‘더 킹(the king)’이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 빈민가에서 자라 흑인 친구들과 뛰어놀던 백인 소년 엘비스는 뒷날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사랑받는 이유와 지적받는 이유는 같았다. 엘비스는 흑인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는 백인 가수였다.
지금이야 ‘그게 뭐 어쨌다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는 1950년대. 그의 존재는 이전에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이를테면 송사리 올챙이가 헤엄치는 평화로운 작은 냇가에 갑자기 나타난 황소개구리. 생태교란종의 등장처럼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다. 방송출연 정지는 기본이고, 감옥에 갇힐 위기까지 닥치자 입대를 선택한다.
기성세대는 엘비스를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젠틀한 이미지의 백인 가수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의 소신에 따라 끝내 그의 골반을 봉인해제하고 기성세대 앞에서 보란 듯 골반이 부서져라 흔들었고, 그 결과 전설이 되었다. 특히 몰려드는 수많은 여성 팬에게 무차별 키스를 난사하는 퍼포먼스는 아무래도 개인방역 차원에서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도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무대다.
무대에서 한 몸 불사르고 42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엘비스의 삶을 지켜보며 끊었던 춤을 다시 이어가 볼까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골반은 잘못이 없다. 그것을 문란하다 지적하는 여전히 좁고 딱딱한 시선들이 오히려 문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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