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41] 톰 삭스의 로켓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8.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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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가 톰 삭스(Tom Sachs·1966년생)는 온라인 플랫폼 ‘로켓 팩토리’를 운영한다. 회원이 되면 각각 30종의 탄두, 기체, 꼬리 중 하나씩 선택해서 3단 로켓을 조합해 구매할 수 있다. 30종의 부품은 모두 맥도널드, 샤넬, 나이키, 헬로키티 등 삭스가 즐겨 먹고, 쓰고, 보는 30개 브랜드의 로고를 하나씩 달고 있다. 그렇게 조립된 로켓의 이미지는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 NFT로 판매된다. 삭스는 완성된 로켓 중 몇몇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리사 심슨과 미 항공우주국(NASA),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 아타리사(社) 로고로 이뤄진 이 로켓이 그중 하나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술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 유일무이한 원본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장난기 가득한 삭스의 손글씨와 물감을 자유롭게 덧칠한 작가의 몸놀림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캔버스는 가상의 세계에서 먼저 만들어진 로켓의 이미지를 베껴 그린 복사본인 셈이다. 삭스는 이렇게 디지털 이미지가 유일무이한 원작이고 작가가 그린 그림이 복사본이 되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현재 삭스의 로켓 NFT 중 최고가는 2억원을 웃돈다.

제목 ‘퍼스 블랙보로’는 1914년 남극 항해에 나섰다 영웅이 된 소년의 이름이다. 삭스는 남극 횡단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던 달 탐사에 진지하게 몰두한 상태다. 그가 괜히 로켓을 만드는 게 아니다. 삭스는 무엇이든 믿음과 헌신이 있으면 가능해진다고 했다. 예컨대 1달러 화폐에 1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모두가 믿으면 교환이 가능해진다는 것. 그건 가상 화폐도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우주 여행도 그렇다. 우리 모두가 가능성을 믿고 헌신한 결과 다누리가 ‘나사’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달을 향해 날아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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