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동물, 돌봄이 필요한 약자이기에 닮았죠[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어린이 친구로 그려지는 동물의 순수성 앞세우던 아동문학
동물권 등 사회적 인식 달라진 요즘, 길고양이나 유기견 이야기 부쩍 늘어
어른에 억압당하는 어린이, 인간에 착취당하는 동물…‘소수자성’에서 유사성 발견
서로 돌보며 연대하는 두 존재의 삶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 탐색
어른이 독자인 문학에 비해 지금껏 아동문학에서는 동물을 자주, 친숙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판타지 작품에서는 물론이고 어린이의 실제 현실을 그리는 작품에서도 동물이 종종 등장했다. 어린이는 대개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과 쉽게 친해지니 그랬던 것 같다. 아동문학에서 동물은, 어린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천진한 존재이자 어린이의 둘도 없는 친구로 그려졌다.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돌보는 일
요즈음에는 반려동물이나 ‘동물권’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지면서 아동문학이 이야기하는 동물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길고양이나 유기견 이야기가 부쩍 늘어났다. 그중 <고양이 조문객>(선안나, 봄봄, 2017)은 길고양이를 거두는 할머니의 생애를 비추며 생명을 돌보는 일의 장엄함에 대해 말한다.
이 책에는 1부 ‘막내 이야기’, 2부 ‘에옹이 이야기’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1부에서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온 막내아들과 길고양이들의 만남을, 2부에서는 길고양이들을 거둔 할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시간 순으로 보자면 2부가 먼저이고 1부가 나중인데 역순으로 서술된다. 그러니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때를 담은 2부를 다 읽어도 책을 덮고 끝내지 않고 1부로 되돌아가 생각하게 된다. 2부의 끝이 1부의 시작과 맞물려 순환하는 구성이다.
이러한 구성은 할머니의 죽음을 삶과 연결시키는 동시에 할머니와 길고양이 사이에 생명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할머니 일생은 결코 누추하지 않았다. 젊은 날 홀로 성심껏 자녀를 키우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생명을 돌보아 온 할머니의 일생은 누구보다 장엄했다. 할머니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 고양이 에옹이는 평소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함박꽃 봉오리를 영정 앞에 바치며 조문한다.
“할머니, 안녕히 가시라냥.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 고맙고 고맙다냥. 내가 못 갚은 은공은 고양이 하느님이 털 하나까지 헤아려 갚아 주실 거라옹. 꽃길로 가시라냥. 꽃구름 타고 가시라냥…….”
-<고양이 조문객> 75쪽
약한 생명을 돌보아 온 할머니의 삶에 바쳐지는 한 송이 헌화와 헌사가 장례식장에 늘어선 화환보다 더욱 값지다. 고양이 조문객의 행렬이 시공간의 틈새로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2부 마지막 장면은 할머니의 지극한 삶이 불러일으킨 기적을 환상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전한다.
<꽃섬 고양이>(김중미, 창비, 2018)에 실린 4편의 동화도 모두 길고양이와 유기견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에서 사람과 동물은 서로 보살피고 돌본다. 수록작 ‘꽃섬 고양이’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노숙자가 된 최씨가 술에 취해 한겨울 무료 급식소 앞에서 잠들었을 때 길고양이 노랑이는 최씨를 깨워 얼어붙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실의를 차츰 극복한 최씨는 무료 급식소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노랑이 밥을 챙겨주다가 급식소 앞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든다.
최씨는 당부한다. “노랑아, 앞으로도 내게 힘이 돼 줄 거지? 내가 흔들릴 때마다 잡아 줘. 나도 널 도와줄게. 우리 같이 도우며 살자꾸나.”(<꽃섬 고양이> 43쪽) 최씨의 간절한 바람은 고작 길고양이 한 마리에 삶을 의탁하는 연약함이 아니다. 최씨가 만들어 준 길고양이 급식소와 보금자리 덕분에 노랑이는 새끼 고양이 순복이와, 순복이의 새끼들까지 키워낸다. 노랑이는 차에 치일 뻔한 순복이를 구하느라 다리 하나를 잃으면서도 꿋꿋하게 다른 생명을 돌본다. 그러니 최씨와 노랑이가 서로 돌보는 행위는 가장 약한 존재끼리 연대해 삶을 지키는 일이다.
첫 작품인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창비, 2001)에서부터 가장 낮고 외진 자리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이야기 해 온 작가의 목소리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길고양이와 유기견 또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이 만들어 낸 흉악하고 헐벗은 거리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약한 존재들이다. 거리의 동물들은 인간에게 버림받고 핍박받는 약자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약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약자성이나 피해자성에 마냥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힘으로 혐오와 폭력을 헤치며 새 삶을 꾸려 나간다.
어린이와 동물, 그리고 돌봄
<오늘의 햇살>(윤슬, 문학과 지성사, 2022)에 실린 세 편의 단편동화 ‘안녕 고라니’ ‘작별인사’ ‘냥이와 오리’는 어린이의 삶을 동물과 연관된 사건에 포개어 보여주며 돌봄의 의미를 깊고 넓게 비춘다. ‘안녕 고라니’는 수로에 빠진 아기 고라니를 구조해 돌보는 이야기다. 엄마와 떨어져 산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기 고라니 이야기는 동화나 동시에서 가끔 만나왔지만 이 동화는 어린이 인물들의 삶과 연결시켜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미유는 언니인 소유, 한 동네에 사는 은하 언니와 함께 엄마가 마당 창고에서 보살피는 아기 고라니를 구경하러 간다. 고라니에게 우유를 먹이는 걸 지켜보던 은하는 비가 그친 후 고라니를 뒷산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하는데 이때 미유와 소유 자매가 지나치게 반박하는 모양새가 의아해 보인다. 고라니를 잘 돌볼 테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미유가 엄마를 조르는 것까지는 당연한 마음으로 이해되지만 아래 장면에서 독자의 해석은 멈칫거린다.
“우리가 가족이 돼 주면 되잖아.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 좋은 거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맞아. 엄마 고라니보다 우리가 훨씬 더 잘 돌봐 줄 수 있어. 진짜야.”
소유 언니랑 내가 억지로 우기며 고집을 부리자 은하 언니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진짜 엄마가 키워야지.”
은하 언니가 무심히 뱉은 그 말에 소유 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야! 진짜 엄마 아니어도 잘 키울 수 있거든? 새끼가 없어졌으면 찾아야지.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찾아야지!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지금까지 안 오면 버린 거 아니야?”
-<오늘의 햇살> 22쪽
아기 고라니는 엄마 고라니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은하에게는 병원에서 오래 투병 중인 엄마가 있다. 한편 미유가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사실 미유의 고모이고, 소유는 미유의 사촌 언니다. 이 사실이 위의 장면 이후에 정확히 서술된 다음에서야 독자는 고라니를 계속 키울지에 대한 어린이들의 서로 다른 생각이 각자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안다. 입원 중인 엄마와 하루빨리 함께 살고 싶은 은하와, 새 가족의 안정적인 돌봄을 받는 미유의 각기 다른 마음을. 또 동화가 일부러 해석을 지연시켰기 때문에 독자는 찬찬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된다. 아기 고라니와 어린이의 두 존재가 ‘돌봄’이라는 하나의 의미에 이어져 있는 걸 말이다. 엄마와 아이, 어미와 새끼의 관계가 돌봄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 묶이면서 돌봄은 모든 존재의 일이 된다. 특히,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어린이와 아기 동물에게 돌봄이 어떤 의미인지를 간절하고 애틋하게 돌아보게 한다.
‘작별인사’ ‘냥이와 오리’ 또한 어린이와 동물의 삶을 겹쳐 보이며 돌봄을 말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은하는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다가 열대어를 분양받으러 시외까지 가야 하는 소유와 동행해주려고 첫 외출에 나선다. 미유의 수컷 열대어 한 마리와 짝지을 암컷 한 마리를 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분양받았지만 버리듯 두고 간 열대어는 병들어 아픈 상태였다. 열대어를 두고 은하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살아 있는 건 다 무게가 있단다. 작든 크든 말이야. 그러니까 살아 있는 걸 키울 땐 항상 신중해야 해.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니까.”(<오늘의 햇살> 54쪽) 은하는 병든 열대어를 돌보기로 다짐하며 스스로를 돌볼 힘을 찾는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상호 돌봄이 있기에 가능했다. ‘냥이와 오리’는 고양이에게 각인되어 고양이를 어미처럼 따르는 아기 오리를 통해 진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와 사는 진호는 자기가 할머니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을 오리에게 투사해 늙은 고양이 곁에 붙어 있는 오리를 나무라고 미워한다. 그러던 중 진호는 할머니의 입원으로 혼자 지내게 되고, 자기의 끼니를 챙기는 이웃들의 돌봄 속에서 죄책감으로부터 놓여난다. “진호는 밥 많이 먹고 뒷밭에 거름 푸는 것 좀 도와주고 가라. 엉?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어”(<오늘의 햇살> 88쪽)라고 말하는 은하 아빠의 당부는 상호 돌봄의 연쇄를 상상하게 한다. 나를 돌봐준 이에게 돌봄을 되돌려 갚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돌봄은 어른이 어린이를, 어린이가 어른을, 어린이가 어린이를, 인간이 동물을, 동물이 인간을 돌보는 여러 개의 고리가 겹치며 비로소 모든 존재가 넉넉하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의 구조이다. 동물이라는 존재가 오늘날 아동문학의 가장 앞선 자리에서 가리키는 방향이겠다.
어린이와 동물은 닮은 데가 있다. 예전 아동문학은 귀엽고 천진한 특징을 가장 닮은 점으로 본 것 같다. 현실의 때가 묻은 어른과 대비되는 순전한 어린이, 해악을 동반한 문명과 대비되는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동물. 이에 비해 오늘날 아동문학은 어린이와 동물의 유사성을 소수자성에서 찾는다. 어른에게 억압받는 어린이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은 소수자라는 지위에서 동일하다.
<나는 마음대로 나지>(강인송, 주니어김영사, 2022)에는 교장 선생님 앞에서도 눈치 보거나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어린이 ‘나지’가 등장한다. 그런데 ‘나지’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실행한 건 희한하게도 학교 토끼장을 어른들 몰래 넓히는 일이었다. 왜 하필 토끼장인지에 대한 이유를 바로 어린이와 동물의 소수자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 입장에서가 아니라 토끼 입장에서 정말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는 일은 어른이 정한 규칙을 넘어서는 일과 맞물린다. <아테나와 아레스>(신현, 문학과 지성사, 2021)에서도 경주마가 되지 못하면 도살장에 가야 하는 말의 운명을 벗어나는 일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어린이 주인공의 내일과 겹친다.
어린이와 동물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두 존재의 유사성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소수자성에 바탕을 두고 이를 궁리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대의 화두인 돌봄은 어린이와 동물을 하나로 이어보며 사회적 약자들을 지탱할 돌봄의 방식을 탐색해 나갈 것이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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