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담대한 구상' 솔깃하지만..北 '비핵화'는 난공불락

정준기 2022. 8. 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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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합의 전 제재 해제 논의" 당근에도
北 응할지 미지수.. 美 협조도 불투명
'진정성' '비핵화' 개념 모호한 것도 문제
'안보 분야' 구체 내용 없인 '반쪽'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공개한 '담대한 구상'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온갖 유인책으로 가득 차 있다. 언뜻 북한이 솔깃할 법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의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의문으로 남는다.


모호한 비핵화… 하노이 노딜의 실패

담대한 구상의 첫 단계는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장에 나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이다. '단계별 행동원칙'에 따라 북한이 무엇을 이행했는지 따지고 주고받기에 치중해온 과거 비핵화 해법에 비해 전향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문제는 북한의 '진정성'을 어떻게 평가할지다. 심지어 북한이 핵협상에 응할지조차 미지수인 상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아닌 한국과 비핵화 논의를 하자는 것이지만 북한은 30년간 핵협상을 오로지 미국과 해왔다"며 "북한이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미국도 관심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비핵화 개념이 모호한 것도 문제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적시했지만 이듬해 2월 '하노이 노딜'로 협상이 틀어지면서 빛이 바랬다. 비핵화를 구체적 절차가 아닌 정치적 의지와 자세의 문제로 다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월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특히 김 위원장은 핵을 ‘절대 병기’로 강조해왔다. 남측을 향해서는 "핵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 불안감"이라고 깎아내리며 핵 우위를 과시했다. 비핵화는 허구라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경제의 대남 종속을 가져올 대규모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질 비핵화' 초점 맞춰 응수… 합의 전 제재 해제 논의도

정부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먼저 비핵화 단계를 나눴다. ‘실질적’ 비핵화는 포괄적 합의 이후 핵 동결 선언 등 이행 조치를, ‘완전한’ 비핵화는 동결→신고→사찰→폐기로 이어지는 기존 비핵화 로드맵을 의미한다. 이 중 실질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포괄적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면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설립하고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인프라 구축·민생개선·경제발전 분야에서 지원 사업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북한이 원하는 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다. 이에 북한을 향해 당근을 쏟아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핵합의 전에도 필요하면 유엔 제재의 부분적 해제를 논의하겠다"며 "북한의 광물자원이 거의 제재 대상에 포함돼 있는데, 식량과 자원을 교환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들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과 구분되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비핵·개방·3000은 비핵화 합의를 전제로 하는 반면, 지금은 합의 도출을 위해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경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美 움직일지 미지수… '안보 우려' 구체적 언급도 없어

결국 포괄적 합의 단계를 넘어야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포괄적 합의를 거절하고 '점진적 합의'를 주장하면서 틀어진 전례가 있다. 우리 정부가 포괄적 합의를 내세워 대북 제재 완화를 유도하며 미국의 협조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정은 체제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안보 우려'를 불식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는다면 대담한 구상은 '반쪽짜리'에 그칠 수도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인프라 구축·민생개선·경제발전'을 망라하는 경제 지원을 제안하면서도 안보 우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군사와 정치 분야에 대한 계획들은 전부 마련해뒀다"면서도 "군사·정치 조치는 협상 과정에서 논의해야 서로 진정성이 확인되기 때문에 오늘은 경제 지원 방안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적대적일 경우 대담한 구상이 첫 단추부터 헝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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