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고작 5건..'불법' 알고도 임금명세서 안 주는 사장들

조해람 기자 2022. 8. 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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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7개월간 위반 854건..22%는 근로계약서도 못 받아
시정하면 그뿐 처벌 안 해.."정부가 법 안 지켜도 된다 홍보"

병원에서 일하는 A씨는 아직 자신이 받는 월급의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 4대 보험료를 공제하고 받기로 했는데, 월급명세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떤 항목에서 얼마만큼 공제됐는지, 추가 수당은 얼마인지 등을 알고 싶어 명세서를 달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회사는 몇 달째 묵묵부답이다.

직원에게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사용자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법은 명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장님’들은 직원에게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는다. 실제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경우가 한 손에 꼽힐 만큼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5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된 2021년 11월19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노동부에 신고된 ‘임금명세서 작성·지급 의무 위반’ 사건은 854건이었다. 이 중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것은 5건(0.6%)에 그쳤다. 가장 비중이 높은 처리 결과는 ‘기타 종결’(44.6%)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졌거나 신고인의 연락 두절 등으로 종결된 경우다. ‘개선지도’가 378건(44.2%)으로 뒤를 이었다.

정부가 엄연한 불법 처벌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노동자의 파업에서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사장님들의 불법은 방치하고 용인하고 있다. 불법을 한 사용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조차 하지 않고 ‘타이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 10명 중 2명 가까이는 임금명세서를 못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6월10~16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임금명세서를 ‘교부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17.4%였다.

노동조건이 열악할수록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비중이 높았다. ‘교부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비상용직(30.8%)이 상용직(8.5%)보다, 5인 미만 사업장(48.1%)이 대기업(6.5%)보다, 월 150만원 미만(35.1%)을 받는 노동자들이 월 500만원 이상(5.5%)을 받는 노동자보다 높았다.

기본 중의 기본인 ‘근로계약서’ 문제는 더 심각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받았다’는 응답은 77.4%, ‘작성했지만, 교부받지는 않았다’는 11.7%, ‘작성하지도 않았다’는 10.9%로 나타났다. 22.6%는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한 것이다.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으면 최대 벌금 500만원까지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법과 원칙’은 여기서도 눈을 감았다. 윤 의원실이 노동부에서 받은 ‘근로계약서 위반사건 처리 현황’을 보면, 2019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3년6개월 동안 근로계약서 미교부로 신고된 5만1481건 중 1만7734건(34.4%)만 재판에 넘겨졌다. ‘기타종결’이 2만6729건(51.9%)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갑질119 박성우 노무사는 “노동자가 어렵게 사용자의 노동법 위반행위를 신고해도, 사용자가 그때 시정만 하면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법 집행의 실태”라며 “임금명세서 교부 위반 과태료 부과가 고작 5건이라는 건 노동법은 안 지켜도 되는 법이라고 정부가 앞장서 홍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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