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비핵화' 원칙만 되풀이..대북 군사·정치 구상 안 밝혀[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비핵화 논의 착수 전제로
식량 등 6개 분야 지원
필요 땐 유엔 제제 면제도
대통령실, 실효성 의문에
“군사·정치 로드맵도 준비”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6개 항으로 구성된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공식적으로 북한에 제안했다.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경제협력 외에 북한의 안전보장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북한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담대한 구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담대한 구상은 남북이 비핵화 논의 착수와 동시에 가동될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면서 “북한과 공동 경제발전 계획을 구체화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유도할 것이고, 북한의 호응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정치 부문 구상도 같이 마련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비핵화에 관한 포괄적 합의가 도출되고 실질적인 비핵화가 진행되는 프로세스에 맞춰 경제 분야 협력 방안을 포함해 정치·군사 부문 협력 로드맵도 준비해두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유엔 대북 제재의 단계적 완화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8년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 지도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질문했던 것은 유엔 제재의 완화 방안이었다”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지금 이행되고 있는 유엔 제재 결의안에 대한 부분적인 면제도 국제사회와 함께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업무보고에서 “담대한 구상은 경제뿐 아니라 북한이 제기한 안보 우려와 요구사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경축사에는 안전보장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마련해두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안전보장 문제는 주로 미국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아직 담대한 구상에 대한 한·미 간 협의가 완료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실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경제협력 방안을 예시했지만, 담대한 구상은 여전히 북한의 ‘선(先) 비핵화’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이 취해야 할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무엇인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임 정부의 한 관료 출신 전문가는 “안보 우려 해소 방안이 없고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하면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실제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고 마련한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담대한 구상 안에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계획이 있다는 점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1990년대 이라크에 적용된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원용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라크 석유·식량 계획은 이라크가 미국과의 걸프전 패배 이후 석유 판매 대금을 유엔의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하고 전쟁 배상금을 미국 등이 우선적으로 가져가고 이라크는 그 나머지로 식량과 의약품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패전국에 적용한 제도’라는 점에서 북한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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