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바닥 드러낸 라인강

라인강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독일·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을 가로지른다. 본류 길이 1320㎞로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중 절반쯤이 독일에 속해 있어 독일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로마인에 의해 시작된 2000년 역사와 더불어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서려 있는 라인강은 ‘신성하고, 두려운 곳’으로 여겨졌다. 중세부터 내려온 고성과 포도밭이 어우러진 풍경을 빚어내며 작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로렐라이’ 시를 쓴 하인리히 하이네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도 1840년 라인강을 여행하며 풍경화를 남겼다.
라인강은 ‘유럽의 젖줄’로도 불린다. 강이 흐르는 지역에 식수와 농·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륙 수운의 대동맥 역할을 한다. 이 물길을 따라 유럽의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이동했다. 석탄·석유·철강·곡물 등 물동량이 큰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내륙 수운은 연간 800억달러(약 104조원)의 비용 감소 효과를 낸다고 한다. 라인강은 내륙 국가들을 북해의 유럽 최대 항구인 로테르담까지 연결하는 숨통이자 무역로인 것이다.
이런 라인강이 메말라가고 있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서쪽 수로의 핵심 거점인 카우프 지역의 수위가 한 달 전의 절반 이하인 40㎝ 미만으로 측정됐고, 며칠 안에 30㎝ 아래로 낮아지리라고 예상된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강바닥이 드러나기도 했다. 40㎝는 바지선이 운항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 때문에 운송사들이 바지선 운항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운송 요금은 5배나 치솟았다. 라인강의 물류 위기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서유럽 국가들의 인플레이션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인강이 매마르고 바닥을 보인 것은 유럽에서 수개월째 계속되는 폭염과 500년 만의 극심한 가뭄 탓이다. 물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는 시민들에게 매일 머리 감기를 자제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100년 만의 폭우로 범람해 막대한 피해를 냈던 라인강이 1년 후에는 극한의 가뭄을 겪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렇게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닥쳐오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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