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 '실제 상황' 물난리, 윤석열 정부는 없었다

김민아 논설실장 2022. 8. 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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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신림동 반지하주택을 찾아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강윤중 기자

꼭 1주일이 지났다. 8월8일 저녁. 대통령은 물에 잠긴 서울을 보며 집으로 향했다. 신림동에선 40대 발달장애인 언니와 그 동생, 동생의 10대 딸이 반지하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상도동의 반지하에서도 50대 여성이 숨졌다. 60대 공무원은 쓰러진 가로수를 정리하다 감전사했다. 50대 누나와 40대 남동생은 맨홀에 빨려들어가 참변을 당했다. 중국인 노동자는 컨테이너에서 잠자다 산사태로 매몰돼 사망했다. 대통령은 9일 아침까지 고층 아파트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도권 물난리라는 ‘실제 상황’은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 난맥을 드러냈다.

무책임

김민아 논설실장

기상청은 8일 낮 12시50분 서울 동남·서남권에, 오후 4시40분 서울 동북·서북권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 퇴근했다. 용산 대통령실을 떠난 시간은 오후 8시 전후로 추정된다. 이튿날 윤 대통령은 말했다.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되더라고요.” 후보 시절 울진 산불 이재민보호소를 찾은 윤 대통령은 “산불 나면 헬기라도 타고 와야죠”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차를 돌리지 않았다. 폭우와 관련한 대통령의 첫 메시지는 자정 직전에 나왔다.

무지

재택근무가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은 9일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반지하주택을 찾았다. “아, 주무시다 그랬구나.” 사고 발생 시각을 들은 윤 대통령 반응이다. 피해자들은 자고 있지 않았다. 사망한 자매 중 동생은 지인에게 침수 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해 밤 9시 전후해 신고가 접수됐다. 이런 내용은 9일 오전 수많은 매체에서 보도됐다. 윤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40분 즈음이다. 대통령은 포털사이트만 검색해도 나오는 ‘기초적 팩트’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신림동 방문 후 그는 하천 모니터링 시스템 개발을 환경부에 지시했다. 신림동 사고의 원인이 된 도림천에는 수위계 등 모니터링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공감

윤 대통령이 신림동에서 말했다. “근데 어떻게 …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찾기가 어렵습니까?”라고 했다. 기시감을 지우기 어렵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 계신 곳이 상황실”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역시 “대통령 계신 곳이 집무실”이라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발언을 연상케 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반지하 창문 앞에 앉은 사진을 카드뉴스로 제작했다가 뒤늦게 삭제했다. 고위공직자들에게 공감능력은 ‘디폴트값’이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은 공직 말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

무논리

대통령실에선 8일 밤 상황을 두고 “대통령이 고립된 게 아니다. 이동 시 보고·의전으로 인한 대처역량 약화를 우려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대통령에게 차량이 떠다니는 강남역이나 천장 무너진 이수역을 찾으라 했나. 240여개 지자체와 화상회의가 가능한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가면 대처역량이 강화되지, 약화될 리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 자택이 지하벙커 수준”이라 했으나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사저의 제한된 통신회선을 이용해 보고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을 것이다. ‘어록 제조기’ 강승규 수석은 “비가 온다고 퇴근 안 하느냐”는 말로 분노를 돋웠다. 그날 내린 비가 가랑비였나.

‘4무’가 야기한 결과는 ‘무정부’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9일 블로그·뉴스·트위터에서 ‘무정부’가 언급된 횟수는 2만3251건에 달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인 7일 언급량(304건)의 76배를 넘는다. ‘무정부’에 대한 긍정·부정 인식을 보면 부정적 인식이 91%로 압도적이었고, 긍정·부정 인식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어이없다’였다.

취임 100일을 맞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홍보라인을 보강할 것이라고 한다. 위기의 원인을 홍보에서 찾는 모양이다. 잘못 짚었다. 물난리를 겪으며 대통령의 언행은 날것 그대로 시민에게 전달됐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한 세계 최고의 스핀닥터를 모셔와도 달라질 건 없다. 윤 대통령은 자료 숙지하기, 입을 다물고 귀를 열기, 말하기 전에 생각하기부터 학습해야 한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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