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담대한 구상'..경협에 제재면제까지·안보는 '미공개'(종합)
대북 안전보장 방안은 '베일 속'..한미 연합연습 앞두고 북 호응할지 불투명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북 비핵화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의 큰 틀을 공개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맞물려 식량·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에 정치·군사적 상응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경협은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혔지만 대북 안전보장 방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치·군사 부문의 협력 로드맵도 준비했다는 점에서 '포괄적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비핵화 합의 이전에라도 대북 경협이 가능하고 이를 위한 제재면제까지 추진하겠다는 대목은 문재인 정부 못지않게 전향적이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경제 보따리'만 먼저 공개…"비핵화 합의 전이라도 경협·제재면제 가능"
윤석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겠다"며 구체적 방안을 나열했다.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을 비롯해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이 중 식량 공급 프로그램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면 합의 전이라도 가능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광물자원을 받고 식량과 생활필수품 등을 지원하는 '한반도 자원식량교환 프로그램'(R-FEP)은 비핵화 협상 초기단계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경협사업은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굴러가 '동결→신고→사찰→폐기'의 단계로 나아가는데 따라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가동해 제공된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대북제재 면제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북한의 광물 수출만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금지돼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제대로 비핵화 협의 과정이 이뤄질 수 있다면 유엔을 포함해서 미국 행정부도 현재 엄격하게 이행되고 있는 유엔 안보리 조치에 대해 당사국과 마음을 열고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 경제제재 속에서 무엇을 부분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지 필요하면 미리 논의하겠다는 것"이라며 "실질적 비핵화가 진행되면 그다음에 적극적으로 경제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때 또 유엔 제재 문제를 짚어내고 필요한 (제재 면제) 항목과 아이템에 대해 유엔과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윤석열 정부가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태도가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이는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선 북한의 관심사항인 '제재 완화' 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연한 제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북 안전보장 방안은 '베일 속'…북 호응여부 주목
대통령실은 비핵화에 따라 제공될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도 마련했다면서도 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군사분야에서는 긴장완화 조치들이 신뢰구축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정치 분야에서는 평화구축 조치들이 평화정착 단계로 마무리돼야 한다"는 정도로 얼개만 설명했을 뿐이다.
생각해놓은 것이 있지만 대북 안전보장이 핵심이 될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는 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 등의 '적대시 정책'으로 안보를 위협받고 있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명분을 내세워왔다.
따라서 비핵화를 위해선 북미관계 정상화나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통제 등 북한의 이른바 '안보 우려'를 해소할 정치·군사적 상응조처가 필요한데, 이날은 일단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면 '자원식량교환 프로그램'이 가동돼 식량난이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의 인도적 식량지원도 마다하며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어 큰 유인책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또한 경협보다 정치·군사적 상응조치에 관심이 많은데 구체적 내용이 없다. 특히 북한은 그간 미국의 '조건없는 대화' 촉구에 "군사적 위협을 그만두고 대조선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해야 할 것"(지난 2월 외무성)이라고 주장해왔다. 선(先) 적대시정책 철회, 후(後) 비핵화 협상 기조다.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정전협정 체결 69주년 기념행사 연설에서 윤 대통령의 실명을 직함 없이 거론하며 '전멸'을 위협하고, 김여정 당 부부장도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발병 원인을 남측에 전가하며 '보복성 대응'을 거론하는 등 북한의 대남 강경 기조는 한층 거세진 상태다.
이처럼 최고지도자와 그의 여동생이 직접 나서 노골적으로 대남 적개심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리라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정책의 하나로 지목하는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가 곧 시작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당장은 '담대한 구상'에 호응보다는 반발, 더 나아가 도발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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