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Yes, But" 금지

2022. 8. 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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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그래, 알겠어. 그런데…" 회의실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이 같은 'Yes, But' 뒤에는 어김없이 "내가 해봤는데 별로야" "그게 되겠어?" "위에서 싫어하잖아" "하려면 한 세월 걸리겠다" "예산 초과야" 등 부정적인 말들이 이어진다. 아이디어의 싹을 잘라내는 'Yes, But'이 난무하면 결국 회의 시간에 입을 닫거나 안전한 이야기만 하게 된다.

아이디어 컨설팅회사 크리베이트는 'Yes, But' 금지 스티커를 만들어 "그래, 알겠어. 그런데"가 나오면 얼굴에 붙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런데 그거 이미 경쟁사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라고 이야기했을 사람들이 이 스티커를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표현을 바꿨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업체 에스코토스컨설팅 산하 명성전략연구소(RSI)의 '사내커뮤니케이션과 기업 경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내부 소통을 강조함에도 직원들은 의견을 말할 문화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 강민정 인디애나대 교수와 문빛 미시시피대 초빙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기업 경청 역량'을 진단하고, 6개 산업군 정규직 1000명을 대상으로 기업에 대한 신뢰와 몰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연구한 내용이다.

국내 기업 경청 역량은 65점이었다. 직원들은 '기업이 내 의견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68.4점)'를 가장 중시했다. 반면 '의견 제시 기회가 충분한가(60.6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는가(64점)' 측면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기업이 직원 의견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셈이다.

소속 회사의 경청 역량에 대해 대략 40대인 X세대 차·부장급은 평균(65점)보다 높은 68.8점으로 평가했으나 MZ세대인 사원·대리급은 61.1점으로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줬다. 특히 '기업이 직원의 의견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묻는 '상호존중성' 항목에서 X세대와 MZ세대는 각각 72.9점과 63.3점을 매겨 가장 큰 인식 차이를 보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5월 신기업가정신을 선포하며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이미지가 꼰대가 아닌 좀더 긍정적으로 바뀌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꼰대의 공통점은 남 얘길 듣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고 국민들은 기업에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는데 '나 때'만 얘기하면 꼰대로 낙인찍힌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1년간 국민이 바라는 기업가 모습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는 '갑질'과 '불통'이었다"며 "사회 요구에 부응해 기업이 변화하고 새로운 문제나 기회를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신기업가정신에 동참하자"고 독려했다.

최 회장은 꼰대 유형인 '조용한 암살자' '종잡을 수 없는 조커' '옹졸한 평화주의자' '투머치토커 훈장님' 등을 나열하며 "'따스한 동반자' '합리적인 해결사' '유연한 트렌드세터' '경청하는 혁신가'로 변모하면 사람들이 변화를 인정해주고 우리사회에 자리 잡은 반기업 정서가 사라지고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가 증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만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의 얘기에 조직 안에서 10여년을 일해온 X세대로서 충격과 위안을 동시에 받은 기억이 있다.

송 부사장은 "아직 애사심이나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분들은 과거에 그렇게 교육받고 일해 와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며 "인류를 위해 필요한 건 산업과 정책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줄다리기가 명확히 개인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경제성장기엔 조직이 더 중요했지만 이제 개인으로 챙길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안의 개개인의 마인드와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조직이 개선되기 어렵다. 과거의 방식으로 성공해 그것이 맞다고 고집하는 이들에겐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과거 방식을 배운 적 없는 MZ세대들은 오히려 시대를 읽고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 없이 본능적으로 현재를 읽는다. 분명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들의 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듣고 때론 내 의견도 검증받으면서 끊임없이 소통하다보면 개인도 기업도 성장해있지 않을까. 존중과 공존, 그리고 공정의 시대다.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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